오늘 이야기는 전북 완주군의 어느 슈퍼에서 일어난 강도치사 사건 입니다.
올해 초 이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던 민주당 밤범계 의원이
사건 패해자들을 국회로 초청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
주목 받기도 한 사건입니다.
시작합니다...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면에 위치한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슈퍼의 주인이었던 김할머니(가명 당시 76세)를 흉기로 위협하고 금품을 챙겨서 달아나는데
당시 침입한 강도들이 김할머니를 제압하기 위해 테이프로 결박을 했는데 발견당시 사망한채 발견됩니다.
사인은 질식사 입에 붙인 테이프로 인해 질식사 한것이지요.
살인사건이라 경찰도 발빠르게 움여고 주변의 탐문수사로 9일만에 사건의 용의자들이 잡히게 됩니다
잡힌 용의자들의 근처 마을의 청년들이었고 나이는 당시 19살과 20살이었고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이들은 경찰에서 범행일체를 자백하게되고 그들의 자백이 증거로 채택되어 재판에 회부되게 됩니다.
나쁜놈은 죗값을 치루고 사건은 해결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같은해 11월 부산지검에 익명의 투서가 접수됩니다.
나라슈퍼 강도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내용의 투서였습니다.
부산지검에서는 익명의 투서에 적힌 3명의 용의자들을 검거해 범행사실 일체를 자백받고
용의자들의 자백을 토대로 전주지검에 넘겨지지만 사건을 넘겨받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전주지검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용의자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이때 지역언론에서는 부실수사라는 말이 많았지만
늘 그랬듯이 사람들의에게서 금새 잊혀저 버립니다.
처음 용의자들로 지목된 인근마을의 청년들 3명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경찰의 주장에 따르면 3명의 청년들이 검찰에 기소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자백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의 주장으로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족들의 주장에 의하면
3명의 청년은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폭행과 강압적인 수사로인해 어쩔 수 없이 자백했을 뿐이고
자신들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언론에서도 다뤄주지 않았고 경찰과 검찰에서는 가족들의 주장은 묵살 되었으며
익명의 투서로 범행일체를 자백한 용의자들도 풀어주고....뭐하자는 건지....
처음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의 청년들은 결국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6년의 혐을 받고 복역 후 출소하게 됩니다.
히지만 이들 3명은 출소후에도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2015년 그들은 사건을 재심청구 하게 됩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법조계란 곳이 엄청나게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곳이라 재심청구라는 자체가 자신들의
판결의 절대성과 권위에 반하는 것이기에 결정적인 증인이나 증거 없이는 재심청구가 대부분 기각됩니다만
피해자(사망한 김할머니)의 사위가 촬영한 현장검증 동영상이 결정적인 역활을 합니다.
(여기에는 용의자 3명에게 당시 사건수사를 담당한 경찰이 범행내용을 지시하고 강요하는 장면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전해집니다.)
재심결정 이후 조사에 들어가게 된 이듬해인 2016년 자신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3명 중의 1명이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무고한 옥살이를 하게된 3명의 피해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피해자들에게 무죄입증을 위해 도울일이 있으면 도우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사건재조사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이듬해인 2016년 6월 에는 "kbs스페셜"에서는 이들 3명의 억울하고 기구한 사연을 전하는데
여기에서도 경찰의 석연치않은 점들이 몇몇 발견되는데 심지어 조작이 의심되는 것들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사실 몇가지가 나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3명중 1명은 언어의 구사나 논리능력이 낮아 과거에도 지금도 긴문장의 대화가 불가능하고
긴문장의 글을 쓰는 건 더더구나 힘들다는 의사의 소견서가 첨부되면서 긴문장의 대화가 불가능 한 사람이
당시 진술서에 적힌 진술 내용의 내용은 매우 긴 문장으로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을 들어
정황상 진술서가 조작되거나 혹은 대필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의심을 사게 됩니다.
그렇게 2016년 10월 28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재심판결에서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한 3명은 무죄 선고를 받게되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게 되면서 같은 해 11월 4일 최종 무죄확정 판결이 받으면서
그들의 길고긴 17년의 싸움이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던 박범계의원이 3달 뒤인 2017년 2월에 이들을 국회로 초청해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를 보호할 법안을 만들것을 약속했습니다...
사족으로 무혐의 처리된 3명중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1명을 제외한 나머지 2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015년 사건의 재심이 받아들여 진것이 알려지면서 2명중 1명은 2015년 말 자살을 하게 되고
나머지 한명은 현재까지도 범행일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심에서 밝혀진 내용이지만
1999년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사건은 검사가 자신의 치부를 덮기위해 검사가 직접 사건을 조작한것이 밝혀집니다.
결국 검사놈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되는거죠....
재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진범의 진술이 없었더라면...
이 또한 뭍혔을 내용이겠지요....
진범이라고 밝히고 무죄를 입증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한 사람 또한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덮어준다는 말에 좋은것도 잠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대로된 직업조자 가지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시달려왔는데
이사건의 재심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건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 뿐이라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알려진게 이정도인데 힘없고 돈없고 빽없어서 억울하게 당한 뭍혀버린 사건이 얼마나 될지....
지나간 청춘과 시간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분들에게 제대로된 보상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끗....
조사 잘못 사용한것 맞춤법 틀린것 띄워쓰기 틀린거 찾는게 저에게는 숨은 그림 찾기네요
오타 검사를 몇번을 하느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몇개나 나올련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