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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주장한다는것, 실천한다는것.
게시물ID : freeboard_4104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늘지기
추천 : 3
조회수 : 3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3/23 15:08:57
포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물을 먹은지 올해로 3년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왜이리 사람이 많은지, 또 사람이 많은 만큼 묘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지..
3년간 겪은 경험담 중 기억나는 일 몇가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지하철이 연장운영될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저씨 한분이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져서 입에서 뻘건 물을 콸콸 토해냈다.
선명한 붉은색이 마치 피처럼 보여 모두가 경악했지만,
조금 뒤 모두 그게 와인이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걱정하는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 제가 토한 와인이 호수를 이루어도 의식 없이 쓰러져 있는 아저씨에게 누구 하나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롱하듯 히히덕거리며 핸드폰 카메라로 그 광경을 찍는 아이들.
웬지 잊혀지지 않는 광경이다.

#2
미국에서 자력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기특하게 여기는 사촌동생이 방학이라고 놀러왔길래
먹고싶다는 떢볶이를 사주러 집을 나섰다.
떢볶이를 파는 가게가 슬슬 보일무렵, 횡단보도 근처에 사람들이 40~50명 정도 둘러서서 웅성거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일인가 다가서보니, 빨간색 스포츠카가 차선하나를 막고 서있고 그 앞에는 피자헛 배달 오토바이가 쓰러져있었으며, 스포츠카에서 내린걸로 보이는 20전후의 남자애 둘이 피자헛배달부를 에워싸고 때리고 있었다. 그것도 손으로 머리를 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헬멧을 쓰고 있다지만 무릎으로 안면을 가격하는 등 위험해보이는 상황이었다.
화가 나는 것은 그 장소를 에워싼 수십명의 사람들 모두 일언반구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점이고,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스포츠카의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그 애들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내렸으나 아이들의 폭력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서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구타하고 있던 두 남자애들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키는 작아도 해병대에서 힘좋기로 인정받았던 나이기에 두 녀석 모두 몇걸음씩 뒤로 밀려났다. 개중 한명은 한풀 꺾인듯 상황을 지켜보고 서 있었으나, 한 녀석은 바로 대상을 나로 바뀌어 '넌 뭔데 끼어드냐. XX 넌 내가 거기가면 죽었어.. 꼼짝말고 서있어 XX아' 하고 외치면서 나한테 덤빌 기세였다. 그 때 나도 정신이 번쩍 들어 사촌동생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아 내가 뭐하고있지..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얼굴에 기스나거나 경찰서에라도 가게되면 어쩌지..' 고민하던 와중에 아저씨 한분이 끼어들면서 "경찰 불렀으니 관계자가 아니시라면 이쯤에서 빠지시라"고 해서 사촌동생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안 나서는 건가 보구나... 하는 씁쓸한 뒷맛.

#3
친하게 지내는 학교 선배의 호출로, 종로에 도착해 술집을 찾아 요리조리 둘러보던 와중이었다.
선배에게 설명을 들은 대로 사람이 뜸하게 다니는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었는데,
50중후반은 족히 되어보이는 얼굴이 다부지고 깊게 주름진 아저씨 한명이 예쁘장한 20대 중반뻘의 여자 한명의 손목을 잡고 반쯤 끌다시피 오는 광경이 보였다.
드물다고 해도 행인이 한두명씩 다니는 길이었는데도, 흘깃 돌아보며 지나갈 뿐 멈춰서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지만, 나는 잉여력 충만한 솔로이므로 상황을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척 하면서 곁눈질하며 들어보니 남자는 어느 중소기업의 사장.. 여자는 그 업체의 직원으로 보였고 여자는 "내일 회사 출근 어떻게 해요... " "회장님이 아시면 어떻해요".. 등등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잡힌 손목을 빼려고 소극적인 반항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달래는 한편 손목을 잡고 조금씩 여자를 끌고 갔으며 마침내 여관 앞까지 다다랐을때, 남자는 여자 손목을 놓고 어깨에 손을 올린 뒤 마지막으로 달래기 시작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남자의 정면(여자의 뒤)쪽으로 슬슬 이동한 뒤 친한친구 몇 놈에게 전화를 걸어 큰 목소리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면 나는 씩 웃으며 꾸벅 인사까지 해 드렸다. 마침내 영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돌아서서 큰 길쪽으로 나갔으며 나의 방해공작은 결실을 맺었다.

그런데 가끔 뒤돌아보던 여자애도 나를 변태를 보는 듯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도통 내가 잘 한 일인지 아닌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술자리에 늦었다는 이유로 벌주를 한 컵 가득 마셨지만 이미 입맛은 소주맛보다 더 씁쓸했다.

---

이런 재미도 없는 뻘글을 써 보고 있는 것은
양심을 부르짖기는 쉬우나 이런 주변의 자그마한 부조리에 대해서조차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점
오히려 타협을 잘 하는 것이 현명해보이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세상의 파도에 시달리면서 양심이 단련되어 단단해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파도를 맞지 않도록 양심의 모난 부분을 쳐내며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지.

고 노무현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당시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그토록 고집있게 제 가슴에 품은 이상과 양심과 같은 것들을
그 나이까지.. 그 위치에 이르러서도 품고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바보같은 꼴통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견딜수가 없었다.

돈과 권력. 학벌과 지연. 오로지 정해진 방법으로만 사람을 줄세우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매장되기 일쑤인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가치있기에 가치없어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평생을 누군가의 등만 보고 살아가는 게 우리들 인생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잃었었다...
업무중에 무리해서 노제를 다녀온 것도
분향소를 찾아 지어 써간 시 한수를 불태우고 온 것도
그런 상실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건
얼마 전 올라온 낙태 관련 글을 읽고 나서.. 거기에 달린 훈계조의 말이나 비난의 글들에 마음이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건 오유인들이, 
아직 무뎌지지 않은 도덕적인 잣대나 양심의 칼날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일게다.
위로하는 글만 달린다면 그건 또 얼마나 바보같은 모습일까.. 옳은 말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저마다의 잣대를 적나라하게 스스로를 까발려버린 글쓴이에게 모질게 들이대어
상처를 주는 광경은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좀더, 이럴 때만큼은 좀더 너그러워질수 없는 것일까.
낙태의 정당성에 대한 시시비비를 꼭 여기서 가려 내야만 하는 것일까....

양심을 주장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양심이란 놈은 한번 주장하고 나면, 평생을 통해 증명해 보여야 하는 그런 녀석이라서
사실은 주장하기보다 먼저 실천해 보는 게 나을 때가 많은 그런 녀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서없는 글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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