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단편] 섹스를 찾아 떠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지침서
“섹스으으으!”
그것은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69번가에 위치한 AV광장은 인류 최초의 시간 여행을 목도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엔 연신 낯 뜨거운 영상이 여과 없이 전해지고 Maxim이라 쓰인 살구색 그득한 전단이 나부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오직 광장 중앙의 연단만을 향했다.
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인류 최초의 타임머신 발명가
인류 최초의 시간여행자
그리고...
과학을 통한 인류의 자기주도적인 진화로 말미암아 도태돼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미지의 존재 섹스를 찾아 과거로 떠날 것을 천명한 모험가이자 마지막 로맨티스트!
잭 블랙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진화라는 미명하에 섹스를 버린 지난 천년, 완벽한 양성평등의 토대아래 인류는 전에 없던 평화와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남녀의 화해와 발전만이 인류가 꿈꿔온 모든 것은 아니었다. 다툼과 분쟁은 사라졌지만 삶이란 그저 앙꼬 없는 찐빵처럼 어딘가 무미건조하고 또한 따분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을 바라보던 고대 로마 시민들의 그것처럼, 진일보한 서기 3천 년대의 인류가 환호하고 있었다. 지우고 거세했지만 자극적인 충동을 갈구하는 욕망은 여전히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열렬한 환호를 쏘아냈다.
“우리 인류에겐 다툼이 없습니다. 남녀로 나뉘어 반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에겐 아픔이 없습니다. 모든 신체적 질병을 극복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학과 과학의 융-복합을 통한 인류의 획기적 진화와 자기 개선으로 말미암아 얻은 성과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우주는 또 어떻습니까! 지금도 매일 함선을 보내 더 먼 우주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실상 정복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여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 한 곳으로 떠나려는 모험가가 있습니다. 오직 신에게만 허락되었다 믿었던 미지의 영역! 바로 과거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잊혀졌던 미지의 행위를 다시 찾겠다! 섹스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또 한 번 번성할 것이다!. 자! 소개합니다! 최초의 시간 여행자이자! 섹스의 화신! 잭 블랙!”
연단에 선 사회자가 잭을 소개하자 군중들은 한껏 들떠 외쳤다.
“섹스!”
“섹스!‘
“섹스!”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성원이었다.
그러자 이에 감격한 잭이 연단으로 걸어와 두 팔을 한껏 펼치며 외쳤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섹스으으으!”
“와아! 섹스! 섹스! 섹스!”
한 때는 인류 번식의 중추적 소임을 도맡았지만, 과학을 통한 인류의 자기주도적 진화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장(死藏)되어버린 고어(古語)의 부활이 현실로 다가오자 잭도 사람들도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잭이 말했다.
“지난 천년, 우리는 분명 번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요?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랑을 잃었습니다. 사랑은 곧 섹스입니다. Love & Sex! 이에 선언합니다. 오늘 저는 일천 오백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시간여행을 통해 우리가 잃었던 과거의 환희, 섹스를 경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섹스으!”
잭은 그와 같은 말을 남긴 후 곧 바로 연단 중앙에 설치된 캡슐 위에 올라탔다. 구체의 투명한 캡슐은 햇살을 받아 유독 더 반짝였고, 그 반짝임은 강렬한 회전과 함께 더 큰 빛으로 변해 광장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그때였다. 온통 빛으로 둘러싸인 잭과 그의 타임머신을 향해 누군가 급히 뛰어들었다. 신원은 알 수 없지만 그가 입은 옷 위에 크게 쓰인 ‘Love & Sex’의 문구로 보아 필시 잭의 열렬한 추종자임에 분명했다.
“잭 나를 데려가주세요! 나도 궁금합니다! 섹스가 무엇인지! 섹스의 희열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빛은 점점 더 강해졌고 캡슐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잭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당신의 호기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건 1인승이에요! 실망하지는 말아요. 타임머신의 설계도가 곧 모두에게 전송 될 겁니다! 모험, 사랑 그리고 섹스! 우리는 모두 원합니다. 타임머신을 만들어요. 그리고 저를 따라오세요. 당신이 진심으로 섹스를 원한다면 말이죠! 러브 앤 섹쓰으으!”
잭의 마지막 함성과 함께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빛은 이내 강렬한 굉음과 함께 맹렬히 수축해 하나의 점으로 사라졌다.
“잭이 떠났습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행사를 마칩니다. 부디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섹스와 만나기를!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곧 떠나던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 둘 멈추어 섰다. 각자의 계정을 통해 송신된 ‘Love & Sex’라는 제목의 메일 때문이었다. 메일엔 당연히 잭이 모두를 위해 남기고 간 타임머신의 설계도가 첨부되어 있었다.
“우리도 하고 싶어요 잭... 섹스가, 섹스가 너무 하고 싶어요.”
*
복잡한 궤적의 빛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둡고 또한 밝은 빛이 형이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내며 교차됐고, 얼마 안가 곧 광활한 시공간의 영역이 펼쳐졌다. 비로소 과거로 가는 웜 홀에 안착했음을 깨달은 잭은 자신이 직접 설계한 시간 여행 가이드 프로그램 ‘섹스를 찾아 떠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를 로딩 시켰다.
[웜홀 중심부에 도달했습니다. 원하는 날짜를 입력해주십시오.]
[2017. 5. 24]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중력의 뒤틀림으로 인해 약간의 진동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십시오]
프로그램의 경고대로 강렬한 진동이 캡슐을 뒤흔들었지만, 잭은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2017년으로 돌아가 만나게 될 섹스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고, 맹렬한 고통조차 희열로 바꾸어낼 의지도 있었다.
[쿵!]
엄청난 굉음과 함께 캡슐이 기류에 휩싸였다.
[웜홀 탈출 성공, 안전하게 대기권 밖에 도착하여 지금 착륙을 준비 중입니다.]
완벽한 도착이었다. 캡슐은 타오르는 유성처럼 미려한 곡선을 그리며 대지에 안착했다.
[대기 농도 이상 없음, 독극물 등 외부 위험요소 없음]
“좋아 완벽해! 여자는! 여자들은 어디에 있지?”
[300m전방 풀숲에서 여성으로 확인되는 두 명의 생명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오! 드디어 하게 되는 건가? 섹스!”
마치 포효하는 성난 야수처럼, 잭은 캡슐 밖으로 뛰쳐나갔다. 섹스를 향한 그의 열망은 그 어떤 장애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크고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안내 프로그램의 설명처럼 풀숲 저편에서 누군가 바스락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유성이 이 쪽으로 떨어졌단 말이지 리사?”
“그렇다니까! 분명히 이 쪽이었어! 전에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유성의 잔해는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값에 팔린데!”
“좋아! 꼭 찾고 만다! 어어... 근데 저거 뭐지?”
“뭐 말야?”
“저거 말야... 저거... 사... 산짐승인가?”
“짐승? 두 발로 걷는... 아니 뛰는데? 사람인가? 우리처럼 유성을 찾으러 온? 젠장! 어서 뛰어! 우리가 먼저 찾아야만 해!”
“기다려 같이가!”
그것이 바로 최초의 조우였다.
섹스를 찾아 떠나온 미래의 시간여행자 잭과, 유성의 잔해를 찾기 위해 그 곳을 찾은 두 명의 과거 여성...
하지만 이 운명과도 같은 조우엔 불행히도 한 가지,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바로 옷이었다. 의복이란 거추장스런 개념은 잭이 떠나온 미래에선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개념이 없으니 잭에겐 창피할 것도 없었다.
온통 헐벗은 벌거숭이 상태로 제 앞에 나타난 섹스를 움켜쥐기 위해 힘차게 손을 흔들며 달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시간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미시건의 숲은 어둡고 캄캄했다. 만약 조금만 더 이른 시간이었다면, 아마 그 두 여성은 잭을 처음 본 그 순간, 이미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잭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 했다.
잭이 코앞까지 달려오자 두 여성은 온통 벌거벗은 잭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곧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좀비다!”
밤하늘 높이, 세상 곳곳... 전례 없는 유성의 비가 쏟아지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섹스으으으!”
끝.
전에 써두었던 글인데, 유성이 쏟아지는 밤에 올리면 좋을 것 같아 묵혀 두었다가...
아끼면 똥된다는 말이 떠올라 올립니다.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