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이 사상 처음 귀화선수를 앞세워 2016 리우올림픽 메달을 향한 프로젝트의 첫발을 뗐다.한국의 국제 대회에서 4차례 우승한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가 국내 실업팀 충남체육회와 계약했다. 에루페의 대리인인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8일 “어제 충남체육회와 계약했으며 곧바로 예술흥행비자(E6)를 천안의 출입국관리소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에루페는 지난달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6분11초로 우승한 뒤 “한국에 귀화해서 리우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경기 후 그와 심층 면담을 통해 귀화 의지를 확인했다. 연맹은 내부 검토 끝에 침체된 국내 마라톤 활성화와 내년 올림픽 입상을 위해 한국 육상 사상 처음으로 귀화를 추진키로 했다.에루페의 국내 실업팀 입단은 귀화를 위한 첫 걸음이다. 비자가 나와서 외국인 등록 번호가 발부되면 육상경기연맹은 대한체육회를 통해 에루페의 귀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법무부의 국적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귀화가 완료된다.케냐 국가대표로 뽑힌 적이 없는 그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1년 후부터 한국 대표로 올림픽 등 국제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절차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8월에 열리는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 올림픽 마라톤에는 국가별로 출전 쿼터가 정해져 있는 데다 특급 선수들이 잘 나서지 않는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우승한 스티븐 키프로티치(우간다)의 기록이 2시간8분1초임을 감안하면 에루페가 출전할 경우 금메달 획득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에루페는 2011년 10월 생애 두 번째 풀코스이자 처음 출전한 국제 대회인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9분23초로 정상에 올랐다. 이어 2012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역대 국내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5분37초로 우승하며 단번에 세계적인 선수로 떠올랐다. 그해 가을에 열린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도 우승, 그는 한국에서 출전한 3개의 국제 대회에서 모조리 금메달을 따냈다.그러다 2012년 말에 말라리아 예방 접종 주사를 맞았는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불시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IAAF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13년 초부터 올 초까지 2년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징계가 풀리자마자 출전한 지난 3월 서울 마라톤에서 에루페는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하며 정상에 올랐다. 그는 한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4번 출전, 4번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에루페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이후 많은 에이전시에서 돈다발을 들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자신을 지도한 스승과 한국과의 인연을 생각해 국내팀 입단과 귀화를 결정했다. 에루페는 충남체육회와 별도의 계약금을 받지 않고 국내 선수 수준의 연봉만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육상계에서는 에루페의 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침체에 빠진 마라톤계에 새로운 바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 남자 마라톤은 간판 이봉주가 2009년 10월 은퇴한 이후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2012년 이후에는 2시간10분 이내의 기록을 내는 선수가 전무한 상황이다. 뚜렷한 유망주도 보이지 않고 선수들의 기량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최경열 육상연맹 전무는 “에루페의 귀화를 통해 국내 선수들이 자극을 받고 기량을 키우면 윈윈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 육상의 자존심인 마라톤에서 국내 선수 발굴과 양성을 포기하고 귀화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에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육상인은 “페이스메이커는 몰라도 한국으로 귀화까지 시킬 필요가 있냐”면서 “에루페가 올림픽에서 우승할 경우 손기정·황영조 등 한국인의 투혼으로 일군 과거의 우승까지 퇴색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 사상 첫 귀화선수네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으로 2년 간 정지 됐던 선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