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묘한 알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단 10시간,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는 실험 지원자를 모집합니다! 모두 무료! 일급 10만+@! 자세한 사항은 전화 주세요!”
일본에는 하룻밤 그냥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객실의 위생 상태나 직원들 서비스를 체험하고 거기에 대해 평가를 하는 고액의 꿀알바가 있다는 게시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일자도 주말이고, 마침 카드빚을 월급 가불로 받을지 아니면 2금융권에서 융통해야할지 막막하던 참이라 별 고민없이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매우 밝은 목소리의 여자였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실험 지원하려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단한 설문조사와 인적사항을 입력해 주시겠어요? 해당 정보는 절대로 연구 실험 목적으로만 사용됩니다.”
그러고는 안내 받은 주소대로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했다. 아무 장식도, 타이틀도 없는, 삭막하기까지한 설문조사 안내 페이지가 화면에 떴다.
본 실험은 사전에 지원자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지원자의 성향에 최적화 된 조건에서 진행이 됩니다. 실험 결과의 무결성을 위해 실험 내용과 목적은 사전에 고지할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모든 실험 내용은 실험 당일 전달드리게 됩니다. 이 점에 동의하시고, 계속 실험에 지원하시려면 ‘다음’을 눌러주세요.
설마하니 장기 떼어가는 일은 아니겠지. 수상하면 바로 그만두고 그만이다. ‘다음’을 누르자 다른 페이지 화면으로 넘어갔다.
본 실험에 지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요 시간은 약 15분 가량 예상됩니다.
그리고 아래 쪽으로 빼곡히 설문조사 내용이 펼쳐졌다.
검은머리가 좋으십니까 염색한 머리가 좋으십니까.
책을 읽는다면 지식 전달 목적의 책이 좋습니까 이야기가 있는 소설책이 좋습니까.
축구가 좋습니까 야구가 좋습니까.
연애 대상으로 연하가 좋습니까 연상이 좋습니까.
이게 무엇을 위한 정보 수집인가 싶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내용을 묻지도 않으니 순순히 응했다.
달콤한 맛, 쓴 맛 중 어떤 맛의 커피가 더 좋으십니까.
쓴 맛.
롱헤어와 숏컷 중 어느 쪽이 더 좋으십니까.
롱헤어.
건강한 미인이 좋으십니까 청순한 미인이 좋으십니까.
건강한 편이겠지.
바게뜨와 크로와상 중 어느 쪽이 좋으십니까.
크로와상이 먹기 편하지.
쌍꺼풀 있는 눈과 없는 눈 중 어느 쪽이 좋으십니까.
있는 쪽이 좋아.
…
..
.
대략 그렇게 10분 정도 설문을 마치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호텔 지도와, 객실 번호가 있었다. 정확하게 몇 시 몇 분까지 오라는 지시까지 있었다.
약속된 날짜, 정해진 호텔 앞에 도착하니,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지 신기하게도 딱 맞춰 전화가 왔다.
“몸 상태는 좋으신가요?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사항은 없으시죠?”
“방에 가서 뭘 하면 되죠.”
쓸데없이 대화 나누는 건 사양이다. 저쪽에서는 내 태도가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짧게 침묵했다. 하지만 곧, 예의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호텔 룸에 비치되어 있는 봉투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알려주지 않는건가요.”
“당연하지요! 본 실험의 목적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니까요.”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수화기 너머 사람이 말했다. 평균은 가는 화려한 로비를 지나, 프런트에서 키카드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해진 방 앞에 섰다. 별다른 거 없는 호텔의 별 다를 거 없는 방문이다. 키카드를 꽂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거기에 이미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내가 오기 전까지 앉아있었던 듯, 객실 안의 테이블 뒤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자도 내가 올 거란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듯,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방을 잘못 찾은 건 아닐까,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여자를 보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이 여자도 실험 지원자구나, 하는.
아뿔싸,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 실험에 나 혼자 참여하는 거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1인 1실, 나 혼자 참여하는 실험인 줄로만 착각했던 것이다.
여자도 내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원래 앉아있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눈가에는 불안의 심정만 가득 하고서.
테이블 위에는, 노란색 봉투와 그 안에서 꺼낸 듯, 접힌 자국이 선명한 흰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여자가 이미 읽었다는 얘기겠지. 나도 무슨 실험인지 내용을 알아야해서 뚜벅뚜벅 걸어가 종이를 집어들었다. 내내 나를 보는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종이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본 실험에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본 실험은 도덕성과 기회 비용, 그리고 공리주의에 관한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10시간 동안 외부 출입 없이 지정된 방 안에서 실험이 진행될 것입니다.
지원자 분들은 금일 오후 8시부터 익일 오전 6시까지 총 10시간 실험에 참여하게 되십니다.
그 시간 동안 지원자 분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것이나 해도 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정된 시간까지 방안에서 지낼 시, 보상금 10만원을 지급해 드립니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음 줄에는…
“지원자가 서로 성행위를 할 경우 1회에 100만원, 2회에 200만원, 그 횟수에 따른 금액을 지원자 중 여성 분에게만 지급합니다. 이 경우 남성 분에게는 일절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본 실험의 목적은 성행위가 아닙니다. 하지만 실험 종료 시간 전에 호텔 룸 밖을 나가면 자의로 실험 참여를 철회하시는 것으로 간주하고 실험이 종료됩니다. 사전에 지급되기로 한 보상금도 일체 지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 실험의 진행을 위해 대여한 시설의 숙박비는 청구하지 않습니다.
주의: 반드시 방 안에 비치된 피임도구를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용하신 피임도구는 역시 방 안에 비치되어 있는 회수통에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여자를 보았다. 나는 이런 내용의 알바가, 아니 실험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슨 성인비디오 설정에나 나올 법한 내용인가. 섹스를 하냐 안 하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지만, 섹스를 하면 남자는 한푼도 받지 못한다니. 게다가 마지막의 주의 항목은 섹스를 한다는 가정 하에 내놓은 내용이다. ‘좆됐다’는 생각만 들었다. 머리에 열이 가득 차는 기분이라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에는 콘돔과 뚜껑이 여러 개 달려있는 커다란 팔레트 같은 게 있었다. 쓰고 나서 여기다 버리라는 소리인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여기 호텔까지 오느라 피 같은 주말의 2시간을 버렸다. 선택을 해야 한다.
섹스를 한다: 난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대신 여자는 사정 한 번에 100만원을 받는다.
섹스를 하지 않는다: 둘 다 10만원을 받는다. 그걸로 끝.
지금와서 조금 생각할 여유가 있어서 말하는거지만, 여자는 사실 내 취향이다.
긴 검은색 생머리, 건강한 운동미녀, 피부는 살짝 태닝했고, 쌍꺼풀이 있는 눈. 스타일도 좋아보인다.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길에서 마주쳤다면 분명 계속 쳐다보고 있었을 타입이다.
그러자, 그제야, 아아, 하고 이해가 된다. 이걸 위한 설문조사 였었나.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쓰잘데 없는 질문 내용 중 이성에 관한 취향 질문이 꼭 하나씩 끼어있었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따지고 싶은 게 많았다. 애초에, 이런 실험이 우리나라에서 허용이 되기는 할까? 아니, 사실 따지면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약물을 가지고 실험하는 게 더 비윤리적이지 않은가? 이 실험은 섹스를 하거나 안 하거나 몸에 큰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지원자의 양심과 도덕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양심이나 도덕성, 그따위 게 뭐란 말인가. 무슨 19세기도 아니고 성인 남녀 2명이 서로 동의하에 관계를 가진다는 게 몰매 맞을 짓인가. 서로 배우자가 있다면 모르겠으나 나는 미혼이고 여자도 반지를 끼고 있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있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나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때까지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려는데, 선수치듯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지금, 돈이 필요해요.”
그래, 그건 돈이다.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지원한 실험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개 같이 굴러가고 있다.
공리주의니 죄수의 딜레마니 하는 철학적인 문제는 중요치 않다. 간단한 문제다.
여자와 섹스를 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여자는 돈을 받는다.그것도 엄청 받는다. 내가 개 같이 허리 굴려가며 고생하는 댓가로. 하지만 나는 한푼도 받지 못한다. 이 경우, 내가 얻게 되는 것은 이상형의 이성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 그 외에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실험에 참여한 것은 그런 하룻밤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비용적으로 따지자면 이런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려면 10만원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지도 모른다. 사실, 어디가서 내가 이런 멋진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을까. 내 생애 그런 기회가 지금말고 다시 오기나 할까? 그렇지만 그런 사항은 내가 얻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실험에 참여한 목적은 첫째가 돈이고, 오직 그것 뿐이다. 암만 여자가 내 취향이고 내가 여자에 조금 오래 굶주렸다지만 무임금 노동은 결코 사양이다.
나는 정중히, 여자에게 그쪽은 매력적이고 내 취향이긴 하지만 그래도 각자가 정해진 최소한의 보상만 받는 편이 서로에게 안전하지 않느냐고 제안을 할 생각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다.
“그쪽도 돈이 필요하죠?”
내 표정을 읽은 듯 여자가 말했다.
“서로에게 좋으려면 이런 방법이 있어요. 당신과 내가 섹스를 하고, 내가 그 횟수만큼 돈을 받은 다음에 그 10%를 내가 드릴게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래, 그렇게 한다면 각자에게 이득이 된다. 가령 3번 관계를 가지면 여자는 300만원을 받는다. 거기서 10%라고 하면 내가 당초 받기로 한 10만원보다 3배나 되는 금액이다. 여자는 받는 돈이 10% 줄지만 나는 300% 늘어난다. 여자가 300만원을 고스란히 받고 내가 한푼도 못받는 것보다는,어딜 봐도 이러는 것이 서로에게 윈윈이다.
한 가지 문제만 제외하면.
“내가 그쪽을 어떻게 믿고.”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밤이 지나고 헤어지면 그걸로 영 볼 일 없을 텐데, 어떻게 돈을 주고받는단 말인가. 애초에 나는 이 여자에게 내 계좌를 알려줄 생각도 없다.
“그럼 이렇게 하죠.”
여자가 자기 핸드백에서 장지갑을 꺼냈다.
“내가 지금 가진 돈을 모두 드릴테니 나와 섹스해요.”
여자가 빳빳한 5만원 권 10장을 꺼냈다.
“대신 드리는만큼 횟수를 다 채워줘야 해요.”
하룻밤, 10시간 동안 5번 섹스하자는 뜻이다. 빠른 두뇌 회전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이렇게나 돈을 밝히는 이 여자의 평소 행실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그건 그거고,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이 나에게 불리한 게 없는 조건이다. 내 취향의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고 오히려 화대를 받는 격 아닌가.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 날 밤은 잠을 자지 못했다. 아니, 당연한 거겠지. 여자는 돈 때문에 눈이 뒤집혀서는 열정적으로 덤벼들었고, 나도 오랫동안 참아왔던 걸 쏟아내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오전 6시가 되자마자, 여자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나는 침대에서 그대로 쉬다 아침에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나자, 연구소에서 전화가 왔다.
“즐거운 밤 되셨습니까?”
이전의 통화와 다르게, 음성에 음흉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회수된 피임도구를 분석하였더니, 분명히 성행위를 하신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험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웃음기가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나는 이들에게 받을 것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여자와 공모하고 꼼수를 부렸다는 게 이들의 실험 목적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져서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럼 지금부터 알려드리는 주소의 병원으로 가셔서 신체 검사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검사비용은 선불로 지불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 때에나 가시면 됩니다. 예약 번호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검사?”
“아무래도 그런 일을 하신 뒤이니만큼… 아, 이 검사결과는 저희에게 통보되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물론 검사를 받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병원 주소와 예약 번호를 요구하고, 정말로 전화를 끊으려는데,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하다니, 무슨?
“개인적인 사항이라던지, 연락처라던지.”
“아무 것도.”
“그래요, 알겠습니다.”
짧지만, 수화기 너머로 뭔가 체크하는 듯, 필기구가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은행에 들러 여자가 준 돈을 카드값이 이체되는 은행 계좌로 입금했다. 계좌의 잔고가 채워지자 그제야 내가 이런 일로 돈을 벌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욕구도 해결하고 돈도 버는 알바라니, 몇 번 더, 아니 앞으로도 실험이 있을 때마다 할 수는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10% 라니, 너무 박하지 않았나 뒤늦은 후회도 들었다. 50%, 아니 30%를 달라고 요구할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 여자도 그 정도 돈은 가지고 있을 터 없으니 10%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연구소에서 보내준 주소의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뒤, 결과지가 온 것은 한 달 뒤였다. 일반적인 건강검진 항목과 유사했다. 내가 관심이 갔던 항목은 당연하게도, 성병 테스트였다.
음성 반응이었다.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전장치를 사용했지만 그래도 서로 간에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그러다 돌연 깨달았다.
여자가 돈이 필요한 이유는
치료비 마련을 위해서이고
그 치료비는
자신의 성병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이 실험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자신이 성병 보유자임을 밝히느냐, 숨기느냐 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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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입니다. 실제로 저런 식으로 실험자 공고를 내지 않습니다. 실험 주체, 목적, 참여 인원과 실험 과정 등 피험자가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세세하게 고지를 하고 동의서까지 작성해야 합니다. 빠른 진행을 위해 과감히 생략하고 간략화한 내용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