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blog.naver.com/dbghd122
1주일에 한편씩 쓰려 했는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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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터샤이는 곧장 동물 병원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마친 동물들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치료를 받고 먹을걸 먹어서인지 동물들이 다시 기운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동물들을 하나하나씩 껴안아 주었다.
소파에 앉아 핑키가 줬던 돈을 꺼냈다. 세어보니 정확하게 4천비츠가 들어있었다. 때 마침 그곳에서 핑키를 만난게 다행이었다. 마치 그녀에게 줄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필요한 돈을 빌려주었다. 다른 친구들 이었다면 빌려주길 망설이거나 대쉬처럼 사정을 알려고 했을것이다. 아마 이번이 누군가에게 대가없이 빌릴 수 있는 마지막 돈이겠지.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지폐 다발을 쥐곤 생각에 잠겼다. 역시 그곳에 가야겠다.
그녀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책상에서 서류를 읽던 파우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러터샤이, 어디 갔다 오신건가요?"
파우나가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플러터샤이의 몰골이 아까보다 더 처참해져 있었다.
"잠시 돈을 찾으러 왔어요. 엔젤은 좀 괜찮아 졌나요?"
"지금 약을 먹고 자고 있어요. 내일이 되면 수술을 할거고요."
"수술하면 괜찮아 지겠죠?"
그녀가 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파우나는 대답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장담할 순 없어요. 꽤 큰 수술이 필요하고 여러 번 필요하니까."
설마했던 사실이 그녀의 뒤에서 심장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엔젤을 이곳에 데려왔을때도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다. 수술을 해야 된다는 말에도 수술을 하면 괜찮아 질거라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구태여 그걸 확인하려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녀가 믿고 있는 사실과 다를까 두려워 그녀는 그저 맹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두 눈을 가리고 하늘을 가렸다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래도 수술은 해야 했다. 이미 후회라면 이가 갈리도록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수술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엔젤이 낫고 난 뒤 돌아갈 집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다짐했다.
"저, 수술비는 여기 있어요."
플러터샤이는 파우나에게 지폐 다발을 건냈다.
"벌써 주시게요? 천천히 주셔도 되는데."
파우나는 돈을 받고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게 있는데요."
플러터샤이가 망설이며 말했다. 파우나는 뭐든지 말해보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동물들을 하루만이라도 맡겨주실 수 있나요. 제가 급하게 가볼 때가 있어서."
그녀의 동물들은 일반적인 병원에서 돌볼 수준의 규모가 아니었다. 그녀의 동물을 맡길만한 곳은 동물원 밖에 없었다. 하루를 돌보는데도 엄청난 수고가 필요하다. 파우나는 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에 갈 때가 어딨냐고 행동으로 따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요?"
"죄송해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부탁이에요."
그녀는 상대가 곤란한 부탁을 할 때면 거절을 잘 못하지만 자신의 부탁에 상대가 곤란해 하는 의사를 보이면 바로 걷어들인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그녀가 양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상대 기분에 맞춰줄 수는 없었다. 줄곧 당하고만 살아오니 이 지경에 이른것이다.
파우나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진것이 보였다. 동물들 주인이란 포니가 다친 동물들을 잔뜩 데려오고 설명도 없이 또 다시 동물들을 내버려둔채 나간다는 사실이 파우나에겐 납득이 되지 않은듯 했다. 플러터샤이는 주춤 했지만 물러서지 않으려 파우나의 눈을 응시했다. 파우나는 한숨인지 신음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알았어요, 플러터샤이. 대신 저도 이 동물들을 다 돌보는건 조금 어려워요. 비용이 필요할거 같아요."
결국 또 돈인건가. 수술비는 지금 내야 했지만 남은 돈은 가급적 아끼고 싶었다.
"청구해 주시면 나중에 드릴게요."
"알았어요. 플러터샤이."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하게 밀고 나왔지만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 너무 뻔뻔한 자세로 밀고 들어온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아마 파우나도 화가 났겠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원장실에 나온 이후 그녀는 바로 엔젤이 입원한 병실로 들어갔다. 입원한 동물은 엔젤 혼자 뿐이었다. 넓은 병실에 토끼용으로 제작된 조그마한 침대가 어두컴컴한 방 구석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엔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슴과 귀 부분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몸에는 가느다란 호스가 꽂혀져 있었다. 약 때문인지 그녀가 온지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까보다 숨소리가 힘겨워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차마 엔젤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죄책감이 무겁게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엔젤이 깨어나면 그녀에게 뭐라고 할까. 왜 중요한 때 집을 비웠냐고 화를 낼까. 차라리 그러면 그녀의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녀가 견디지 못하는것은 그녀의 잘못을 동물들이 책임지려 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그녀에게 화를 내는것 보다 집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하는것이 오히려 그녀에겐 더 괴로웠다. 만약 동물들이 진실을 알게되고 그녀에게 느낄 배신감을 상상하면 그녀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엔젤. 수술 받으면 다 나을거야. 걱정하지마. 다 나으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거야."
그녀는 흐느끼듯 말했다.
"집은 내가 되찾아줄게. 반드시..."
그녀는 병실에서 나와 동물들에게 하룻밤만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다시 혼자 어디로 가야 된다고 할 때 동물들은 납득 하지 못했다. 동물들은 왜 집에 가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곧 돌아갈 수 있을거라 돌려말했다. 동물들은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불안한듯 눈을 떨었다. 플러터샤이는 애써 그런 동물들을 무시했다.
"금방 돌아올거야, 얘들아.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지?"
동물들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플러터샤이는 동물들의 이마에 뽀뽀를 해준 뒤 병원을 나섰다. 그녀는 서두르며 병원을 빠져나가 달려갔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품안에 남은 지폐 뭉치를 꼭 쥐었다.
포니빌 역에 도착한 그녀는 라스페가수스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8시에 출발하는 표가 남아있었다. 도착은 11시 쯤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창구에 돈을 건내는 그녀의 발굽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었다. 역무원이 유리를 통해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차가 오고 기차에 타서 앉는 순간까지도 떠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품 안에 쥔 돈을 내려보았다. 표를 제외하고 원래 있던 돈을 합하면 2200비츠 정도였다. 2200비츠와 100만비츠. 약 450배 정도 차이가 나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깨달았다. 남은 돈을 몽땅 들고가서 도박을 해서 빚을 갚겠다? 제정신으로 할 생각이 아니었다. 2천비츠면 그녀에게 엄청난 돈이었다. 그나마 있던 돈을 잘 활용할 생각은 커녕 어제 레인보우 대쉬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제도 운이 좋았으니 어떻게든 될거란 생각에 기차에 몸을 맡긴 자신의 뇌를 의심했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에 들어와 조종한 것 만큼 낯설었다.
그러다가 잃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핑키가 줬던 돈이니 갚지 않아도 된다는거야? 아무 조건없이 돈을 빌려준 친구한테 도박을 해서 돈을 다 잃었으니 못갚겠다고 할 셈이야? 파우나에게 줄 동물 양육비는? 남은 동물들 먹이는? 그나마 2천비츠면 며칠은 견딜 수 있다. 해리의 집에서 돈을 아끼고 생활하면서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는것이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에 눈이 멀어 쫓아가기만 하는건 스스로 절벽으로 밀어넣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다음 역에서라도 내리는게 낫겠다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문득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그녀는 실소가 튀어나왔다. 창문에는 본 적 없는 낯선 포니가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 '미X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윤기나고 부드러웠던 갈기는 쥐어뜯겨 산발이 되어 있었고 눈은 붉은 핏기가 가시지 않고 탁 풀려있었고 눈 주위는 퉁퉁 부어있었다. 창에 비친 미X년도 따라 웃는걸 보니 그게 정말 자신의 모습이 맞긴 한가보다.
그녀가 왜 그런 정신나간 계획을 세웠는지 이해가 되긴 했다. 상황이 제정신이 아닌만큼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침 이후로 제정신 인적이 없긴 한거같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울고 자책하고 절망하고 화내고 감정선이 폭발하듯 날뛰었다. 그녀는 이미 벼랑 끝이었다. 눈 앞에선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있는 돈으로 버티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는것은 바위가 자신을 깔고 뭉개길 가만히 바라보는 행동이었다. 살아남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벽에 뛰어내리는 것 뿐이었다. 이미 끝장난 마생 더 잃는다고 사실상 다를게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어울리는 극단적인 방법 일 뿐이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결심을 내렸다. 뒤는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전진하기로. 열차가 중간역에서 내릴 때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바로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똑같은 기차에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랐다. 어제 라스페가수스로 가는 길은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트와일라잇이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친구들끼리 잔뜩 기대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플러터샤이 역시 핑키와 얘기를 하며 설레임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수다를 떨 친구들도, 가슴 뛰게 할 설레임도 없었다. 막장으로 치닫는 그녀의 마생에 대한 비참함만이 그녀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요동하는 심장 박동만이 그녀가 느낄 수 있는 소리였다. 이젠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한 일 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도 격려도 없이 오직 그녀만이 해결해야 했다.
라스 페가수스에 도착할 때 까지 그녀는 한숨도 자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만 봤는데도 시간은 금방 갔다. 몸은 어느 때보다 피곤했지만 잠이 온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어느정도 진정되었던 심장이 목적지에 오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몸도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쉼호흡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화려한 밤의 도시답게 거리에서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세계 유명 유적지나 명소들을 본 따 만든 건물들은 언제봐도 웅장하고 화려했다. 타고온 기차에선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자가 긴 기차 여행으로 피곤에 젖은 듯 했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상기된 얼굴을 하고있었다. 포니들은 각자 허리엔 짐을 이고 발굽엔 가이드북을 든 채로 기차역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플러터샤이만이 빈발굽으로 느릿하게 기차역을 나갔다.
그녀는 어제 묵었던 호텔의 카지노로 걸음을 옮겼다. 날개짓을 할 힘도 없어 터덜터덜 걸어갔다. 호텔은 새로 들어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기차역에서 보인 포니들이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 프론트를 바로 지나 카지노가 위치한 복도로 걸어갔다. 카지노 간판이 멀리서 보이자 시끌거리는 소리가 점점 들려왔다. 카지노는 어제처럼 모든게 넓고 화려했다. 어제 왔을 때만 해도 화려함에 눈이 멀었는데 지금은 경멸이 느껴졌다. 대체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길래 이렇게 까지 만들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의 말대로라면 카지노는 무조건 돈을 벌게 되있는 구조라고 했다. 이 호텔 전체가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셈이었다.
플러터샤이는 곧장 환전소로 갔다. 꼬깃꼬깃해진 돈다발을 전부 창구에 올려놓았다. 곧이어 1000비츠 짜리 칩 두 개, 100비츠 짜리 칩 두 개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발굽으로 품안에 쥐었다. 혹여라도 잃어버릴까봐 힘을 꽉 주었다.
그녀는 룰렛 테이블로 걸어갔다. 가장 단순한 게임이고 유일하게 아는 게임이 그것 뿐이었다. 테이블에는 다섯 포니 정도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 아깝다!"
"바보야! 그래서 내가 홀수에 걸라고 했잖아!"
테이블에 있는 포니들은 모두 일행인지 결과가 나오자 서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절망적인 그녀의 상황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였다. 그녀는 조용히 그들 틈에 가 빈자리에 앉았다.
"얼마를 걸어야 하지."
플러터샤이가 중얼거렸다. 갈길은 한참 멀다. 조금씩 걸어서 따려고 하면 하루종일해도 제자리 걸음일것이다. 그렇다고 한번에 많이 건다면 위험부담이 너무 클 것이다. 한 두번의 게임으로 돈이 전부 날아가는 수가 있었다.
그녀는 우선 100비츠 짜리 두개를 걸기로 했다. 처음이니 우선 낮은 돈으로 걸고 그 다음부터 베팅을 높힐 생각이었다. 또한 베팅은 무조건 반반 확률인 곳에 걸기로 마음먹었다. 단번에 큰 돈을 벌려면 확률이 적은 곳에 걸어야 하는게 맞지만 그녀는 그럴만한 담력이 없었다.
플러터샤이는 이전 게임이 끝나자 100비츠 짜리 두 개를 빨강색 공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에 앉은 포니들도 각자 칩들을 여러곳에 올려놓았다. 밝은 분위기 속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말이 없었다. 발굽을 씹으며 자신이 걸었던 칩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200비츠다. 한게임에 200비츠가 걸려있었다. 이건 정신나간 짓이야. 룰렛에 공이 돌아가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저히 볼 수 가 없었다. 어지럼증이 확 몰려왔다. 주위 소리가 멀어지나 싶더니 이명이 귀에서 울렸다.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것 같았다. 새삼 자신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24. 짝수. 검정."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딜러가 자신의 칩을 가져가고 있었다.
"안돼!"
플러터샤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딜러는 칩에서 발굽을 떼며 멈칫했다. 주위의 포니들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딜러는 불쾌감을 표하며 한쪽 눈썹을 들었다.
"무슨 문제 있나요, 손님?"
"안돼. 안돼. 안돼..."
그녀는 멀어져가는 칩을 보며 연거푸 중얼거렸다. 테이블이 정리되자 그녀는 넋이 나가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듯 했다. 그녀 주위에 앉은 포니들이 말없이 흘끗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음 게임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듯 분위기가 돌아왔다.
그녀는 차마 다음 게임에 베팅을 하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게임부터 1000비츠씩 걸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 200비츠는 지던 이기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판의 흐름을 볼 겸 잃어도 그나마 적은 돈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지고나니 전혀 아니었다. 그녀에겐 200비츠도 엄청난 돈이었다. 겨우 1분 남짓에 200비츠를 잃었다 생각하니 도저히 제정신으로 다음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 1000 비츠를 걸었는데 지기라도 한다면 단 두 게임만에 1200비츠를 잃은 것이다.
그녀는 결국 1000비츠 짜리를 100비츠 칩 10개로 바꾸었다. 일단 낮은 돈으로 상황을 계속 살피기로 했다. 그녀는 다시 200비츠를 빨강에 걸었다. 방금전 판도 검정이 나왔으니 빨강이 나올만 했다.
"15. 짝수. 검정."
그녀는 이번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갈기를 쥐어뜯었다.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룰렛에 들어간 작은 공이 원망스러웠다. 왜 또 거기서 검정이 나오는건데.
딜러가 테이블을 모두 치우고 다음 게임을 진행했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칩을 쥐었다.
"빨강이 나올 때가 됐어. 빨강이야."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발굽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갈기는 더욱 더 산발이 되어갔다. 주위 포니들이 그녀를 흘끗 쳐다보는 빈도가 잦아졌다. 테이블의 분위기가 전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29. 홀수. 검정."
그녀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쾅 하는 소리가 함께 칩들이 살짝 들썩였다. 주위 포니들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딜러 포니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손님. 난동 부리시면 퇴장입니다."
딜러가 칩들을 정리하며 소리쳤다.
"죄송해요."
그녀는 마지못해 사과했지만 불처럼 퍼져오는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소리까지 지르려는걸 간신히 참아냈다. 세번의 패배다. 세번의 패배가 그녀의 이성을 끊어버렸다. 이제는 어디에 걸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또 빨강에 걸어야 하나? 다섯 번이나 검정이 나올 일은 없겠지? 그렇다고 검정이 무조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계속해서 미련하게 빨강을 고집하는것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답답함에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생각할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보였다.
세번의 패배로 그녀의 베팅은 더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번엔 100비츠만 검정에 걸기로 했다.
"2. 짝수. 검정."
드디어 그녀가 처음으로 게임에서 이겼지만 전혀 기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조바심이 났다. 이겼다고 해도 결국 전체적으로 손해인 셈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더 많이 걸을걸 하는 의미없는 후회가 지나갔다.
"괜찮아. 그래도 이겼어. 슬슬 이길때가 된거야."
그녀가 중얼거리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다음엔 무조건 빨강이야. 연속으로 여섯번이나 빨강이 나올리는 없잖아.
근거없는 확신이 머리속을 채워나갔다. 그녀는 승리를 장담했다.
그녀는 남은 모든 돈을 빨강에 걸었다. 돈을 적게 걸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에 두려움 같은건 들지 않았다. 이번에 이긴다면 원금 회복은 물론이고 1000비츠는 더 딸 수 있었다.
"빨강. 빨강. 빨강. 빨강."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룰렛이 돌아가는걸 쳐다봤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은 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세상에 여섯번이나 연속으로 검정이 나오는게 말이 될까.
"35. 홀수. 검정."
딜러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의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녀가 걸었던 칩이 고스란히 딜러쪽으로 옮겨가는걸 망연자실하게 바라만 봤다. 현기증이 몰려와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안돼..."
그녀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오열과 함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닥이 무너지기라도 한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시간이라도 되돌리고 싶었다. 단 1분 전이라도 좋으니까 베팅하기 전으로 돌아가 다시 베팅을 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왜 멍청하게 한꺼번에 다 걸었을까. 이길거란 확신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평소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이럴 땐 쓸모도 없는 용기가 왜 나온걸까.
"안된다고..."
그녀를 중심으로 분위기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게임의 진행도 딜러가 칩을 정리하느라 잠시 멈췄다. 테이블에 앉은 포니들이 그녀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얼마나 잃었길래 그래?"
"몰라. 저 포니 한 1500비츠 정도 걸었나?"
"그게 저 지경까지 될 돈이야? 그리 큰 돈도 아닌데."
주위의 시끄러운 소리때문에 묻혔지만 플러터샤이는 똑똑히 들었다.
니들이 뭘 알아. 나한텐 그 돈이 전부였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지껄이지 말라고.
그녀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분노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절망의 그림자가 그녀를 잠식해버려 모든 감정들을 틀어막아 버린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소리친 그녀의 말이 그녀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 돈이 내 전부였는데...
테이블은 다시 게임을 시작하자 활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여전히 엎드려 있었지만 없는 포니 취급하며 게임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카지노를 나왔다.
그녀는 거리로 나와 정처없이 걸었다. 이젠 말그대로 갈데가 없었다. 기차는 이미 끊겼다. 아니, 애초에 돌아갈 차비도 없었다. 미련하게 도박에 돈을 다 써버려 빈털털이였다. 당연히 잘곳도 없는 셈이었다.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 관광도시에 아는 포니도 없었고 지낼 곳도 없이 그녀는 혼자가 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플러터샤이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 앞에 보이는 길이 어딜 향하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놓은채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여긴 어디지."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을 땐 어두컴컴한 골목길 뿐이었다. 화려한 조명도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리의 조명들도 가로등 뿐이라 길거리만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라스 페가수스라고 모든 길이 화려했던건 아니었다. 광광의 중심지인 호텔가는 개발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그곳을 제외한 주변의 상가나 주택가는 뒷전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낮에는 포니들로 붐볐지만 밤에는 포니들이 빠져나가고 치안은 일반적인 도시보다 형편없었다.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들이닥친건 공포였다. 거리에 포니라곤 보이지 않았고 즐비한 건물들에 비해 기분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대체 얼마나 걸어온 건지 가늠도 하지 못했다. 시간도 거의 새벽 쯤 된것 같았다. 돌아갈 차비도 없고 잠잘 곳도 없다지만 이런곳에서 밤을 지새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걸음을 재촉했다. 호텔 중심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걸어왔던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 때 누군가가 플러터샤이의 팔을 가로챘다. 어둠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것에 그녀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갑작스런 힘에 무력하게 끌려갔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며 한쪽 다리를 문지르며 아픔을 호소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커다란 형상이 그녀 앞을 가로 막았다.
그녀가 쓰러진 곳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녀를 끌어당긴 것은 한 포니였다. 앞 뒤로 건장한 수컷 어스포니가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유일한 통로인 앞 뒤가 모두 가로막혀 버린 셈이다.
그녀는 단박에 상황을 파악했다. 두 포니가 그녀를 으슥한 골목길로 끌고왔고 빠져나갈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길을 잃은 그녀를 위해 길안내를 하려 끌고 온 것 처럼 보이진 않았다. 희미한 조명 사이로 포니들의 얼굴이 비쳤다. 절대로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둘의 얼굴엔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고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아기고양이처럼 잔뜩 움츠리며 다가오는 포니들을 바라만 보았다.
"봐봐. 얘 눈빛 좀 봐봐."
앞에 있던 포니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플러터샤이는 소름이 쫙 돋았다.
"완전 맛이 갔어. 딱 봐도 도박 중독마야."
수컷 포니가 말하자 뒤에 있던 포니도 킬킬 웃었다.
플러터샤이는 당장 거울을 보고 싶었다. 도대체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길래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도박은 어제 처음으로 해봤는데 도박 중독마라니... 그게 정말 다른 포니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인가?
"이런 애들은 같이 온 포니도 없이 혼자야. 분명 돈을 다 꼴아박고 방황하고 있는거야."
그들은 그녀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쭈욱 지켜보며 쫓아온것 같았다.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았던가.
눈 앞의 수컷 포니는 바로 앞 까지 다가왔다. 플러터샤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수컷포니는 플러터샤이의 턱을 들고 얼굴을 보게 했다. 그녀는 수컷 포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게다가 지금 보니 꽤 귀엽게 생겼는데..."
그녀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도망을 가기엔 이미 늦었다. 수컷 포니는 바로 자신과 맞닿아 있었다. 날아서 도망가려해도 바로 붙잡힐것이다. 애초에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제대로 날 수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녀는 무력하게 몸을 떠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사, 살려주세요."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입술이 떨려 어눌한 발음이 나왔다.
두 포니는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한 골목길에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가 널 왜 죽여?"
"저... 도, 돈도 없어요. 제발 보내주세요."
플러터샤이는 그들의 목적이 차라리 돈이길 바랬다. 머릿속에 드는 불안한 예감이 제발 맞지 않길 빌었다.
"돈도 필요 없어. 우린 그냥 너랑 놀고 싶은거라고."
포니는 그렇게 말하곤 그녀의 뒷 다리 사이를 발굽으로 슥 문질렀다. 그녀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려 입을 벌렸다. 때 마침 그녀의 뒤에 있던 포니가 한쪽 다리로는 그녀의 입을 막고 다른 쪽 다리로는 그녀의 앞다리를 붙잡았다. 플러터샤이는 온 힘을 다해 뿌리치려 했지만 역부족 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보다 큰 수컷 포니의 힘에 한참을 못미쳤다. 포니의 몸만 잠깐 들썩일 뿐 꽉 조인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입을 벗어나지 못한 비명소리가 목에서 울렸다.
"가만히 있는게 좋아."
앞에 서던 포니가 천천히 다가왔다. 두 발로 서 있던 그녀의 허벅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털끝이 곤두섰다. 뱀이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는것 같았다. 그녀는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다가오는 포니를 향해 두 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악!"
그녀의 뒷 발굽이 포니의 코를 명중시켰다. 주춤하며 물러서는 포니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포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씨.발년이..."
포니가 중얼거리더니 플러터샤이의 복부를 걷어찼다. 플러터샤이는 뱃속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에 숨이 멎었다. 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힘 조절 따위는 없는 무자비한 한방이었다. 사정 봐주지 않겠다는 경고의 표시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플러터샤이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그녀의 머릿속이 폭탄처럼 터져버렸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길질을 했다.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온몸으로 저항했다. 뒤에서 그녀를 잡은 포니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속했고 앞에 있던 포니는 그녀의 몸을 마구잡이로 찼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폭력앞에 순종했을 것이다. 두려움에 발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그녀는 이성 따윈 잃은지 오래다. 폭력앞에 순종한다는 사고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물리적 폭력따윈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폭력에 비하면 이런 고통으로 그녀를 진정시킬 순 없었다.
"미X년이... 좀 가만히 있으라고!"
그녀의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비릿한 쇠맛이 그녀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켰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자 뒤통수가 뒤에 있는 포니의 주둥이를 강타했다. 포니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코를 부여잡았다. 그녀를 사로잡던 그물에 구멍이 난것이다.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온 힘을 짜내 두 날개를 펄럭였다. 네 다리를 힘차게 차 도약했다.
"야, 야! 잡아!"
포니가 당황해 소리쳤다. 두 수컷 포니는 그녀를 잡을 마법도 날개도 가지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플러터샤이의 다리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그들의 머리보다 높이 날아올랐다.
플러터샤이는 우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쫓아올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았다. 멀리서 호텔 중심가의 불빛이 보였다. 그녀는 무작정 그곳을 따라갔다. 중간에 몇번이나 중심을 잃고 떨어질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날아갔다.
결국 그녀는 카지노로 다시 돌아왔다. 길거리 보다는 훨씬 안전한 곳이었다. 카지노 영업은 아침까지 하니 밤을 지샐수도 있었다. 혹시라도 돈이 없다는걸 알고 그녀를 쫓아낼까 테이블 쪽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카지노 구석 휴식 공간처럼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눈 앞에선 형형색색의 조명과 소리가 그녀의 눈과 귀를 괴롭혔다. 새벽 시간인데도 포니들이 꽤 남아있었다. 발굽에 칩을 들며 게임을 즐기는 포니들의 모습을 그녀는 멍하니 지켜봤다.
아까는 몰랐던 몸의 부상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얼굴은 맞지 않았지만 복부, 허벅지, 다리 허리까지 안아픈곳이 없었다. 살을 비틀어 짜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졸음도 몰려왔다. 발굽 하나 까딱일 힘조차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따위도 없었다. 아침까지 여기 있는다고 뭐라도 되는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할 기운조차 없었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 정말 현실인지 실감이 가지 않았다. 바로 오늘 아침 친구들과 이 호텔을 나왔다는 사실이 한없이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녀라면 이미 한바가지는 흘렸어야 할 눈물샘이 말라버린듯 잠잠했다. 하루 사이에 몇번이나 눈물을 흘려 정말 말라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힘든일이 생기면 주저앉아 울고 의지 할 누군가를 떠올린다. 친구든 동물이든 가족이든 그들을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누구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생각이 들자 그들을 떠올리는게 무의미해졌다. 그저 죽고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와, 여기서 또 보네요."
누군가 플러터샤이를 향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움직일 힘도 없이 눈동자만 천천히 돌렸다.
"이런데 자주 오실 분은 아닌거 같았는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새하얀 유니콘이었다. 갈기부터 털까지 흰눈처럼 새하얬다. 털과 대비되는 검은 눈동자는 그녀를 보며 웃고있었다.
"어제는 그래도 깔끔했는데 오늘은 완전 거지꼴을 하고 계시네요."
포니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외모가 인상적이라 금방 떠올랐다. 어제 블랙잭 테이블에서 얘기를 하던 유니콘이었다. 어제처럼 한껏 꾸민 차림새로 카지노에 온 듯 했다. 어제와 다른 점은 묶었던 머리를 풀고 오른 발굽위에 담배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담배 냄새가 플러터샤이의 코를 찔렀다.
플러터샤이는 아는체 할 기운도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을 한쪽 귀로 흘렸다. 대화할 기분도 아니었고 굳이 귀찮게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 포니가 자신을 도와줄 것도 아니었다. 무시하다보면 지나갈 것이다.
문득 그녀의 머리에서 잊고 있던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저, 잠시만요."
플러터샤이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마주봤다. 유니콘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네요."
그녀가 키득 웃었다.
"어, 어제 제가 준 200비츠 있죠?"
유니콘은 어제 플러터샤이의 게임을 도와준 대가로 그녀가 딴 비츠를 전부 받았다. 이미 줘버린 사실은 변함 없었지만 어쩌면 돌려받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카지노에 자주 들리고 게임을 즐겨하는 포니에게 200비츠는 별로 크지 않을수도 있었다. 의외로 선뜻 줄지도 몰랐다. 플러터샤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끝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찾은 유일한 빛이었다. 절대 놓치면 안됐다.
"다시 주실 수 있나요? 부탁이에요."
"어제 그쪽이 주신거요?"
유니콘은 능청을 떨며 되물었다. 플러터샤이 입장에선 구원같은 돈이었다. 그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을 햝으라고 하면 네 발을 다 햝을 수 있었다.
"돈 필요하세요?"
유니콘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플러터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유니콘은 담배를 한번 빨아들이더니 뜸을 들였다. 그녀가 숨을 뱉자 자욱한 연기가 눈앞을 덮었다. 유니콘은 플러터샤이의 모습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랑 같이 돈 벌어볼래요?"
유니콘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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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하지 말라는 좋은 교훈을 남겨줌
글이 안올라진다 했는데 미1친이 필터링이네요; 미1친듯이 라는 말도 못쓰게 하면 어떡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