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게시판엔 처음 글을 쓰는 터라 조심스럽네요.
전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처녀입니다.
제 나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오유 회원님들의 부모님께서 광주 출신이시라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잘 아시고 계실겁니다.
저희 부모님은 모두 광주출신이시고, 아버지는 전남대 어머니는 조선대 출신이십니다.
모 채널에서 [5.18 민주화 운동은 북괴군과 간첩이 모의한 것] 이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낼때
저의 어머니는 방송을 보시다가 가슴에 불이나는 것 같아 TV를 끄셨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몸으로 겪으신 분으로써 저에게 몇마디해주셨는데요.
북괴군과 간첩이 학생들과 모의했다는건 정말 말도 안된다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분위기를 저희 어머니가 말씀해주신대로 옮기자면,
민주화 운동 당시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갔고,
운동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이라해도 길에 다닐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군인들이 대학생이나 젊은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이면
길을 가는 사람이던 슈퍼에서 나오는 사람이건
무조건 끌고가거나 저항할 경우엔 무조건 폭력을 행사했다고합니다.
저희 어머니와 같은 미대동기셨던 여학우분은 집으로 귀가하던중
군인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땅을 기어서 귀가했다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갓난아이였던 제 이모를 안고 택시를 타고 귀가하시던중
군인의 검문에 걸리셨는데 아기엄마라고 말해서 다행히 집으로 오실수있었지만,
(어머니를 천천히 뜯어보던 군인의 눈빛이 정말 무서워서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아셨대요)
전대생이셨던 아버지는 군인들에게 끌려가 3일만에 풀려나오셨는데 다리를 약간 저는 장애를 얻게되셨죠.
저희 외삼촌 3분도 모두 군인들에게 도망쳐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옷에 피가 묻어있지 않은 분이 없으셨대요.
이렇게 무력으로 제압하는 군인들에게 저항하던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과도한 선동이나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학생들이나 시민을 발견할 경우
맹목적으로 그 사람을 따르기보단 신분을 먼저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분을 확인한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모두 재학중인 대학생이거나 시민이었대요.
어머니는 간첩이나 빨갱이라는 오명은 정말 억울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국민이 주체가 된 나라에서 살고싶다는 학생과 시민들이 폭도로 매도당한 그 날은
저희 부모님이 겪으신 인생의 모든 기억 중 가장 끔찍하다하십니다.
구 도청에서 버스로 4정류장 거리였던 저희 외가가 있던 골목은
피비린내와 최루탄 가스냄새로 뒤범벅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가슴이 이토록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운 이유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다, 홍어다, 보수꼴통이다.
왜 서로 물어뜯고 살아야하는지 너무 답답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되고,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면 되는
글로 정리하면 모두 쉬운 일인데, 실현하긴 참 어려운 것이 지금인 것 같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