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0년, 한국바둑계에 국내 바둑팬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쓰다듬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해.
국내 프로대회 중 가장 전통있고 권위있는 바둑대회 국수전!!
올해로 57회째인데 역대 한국바둑의 1인자들은 다들 국수라는 호칭으로 불려. (이창호=이국수, 조훈현=조국수)
그런데 이 대회에서 여성 프로기사가 우승하는 경악스런 일이 벌어졌어.
이기고 올라온 상대들을 보면 입이 안다물어지지.
예선에서 유창혁 컷트후 본선 4강에서 이창호를 아웃시킴.
그리고 결승에서 전년도 챔피언 조훈현에게 2-1로 승리하면서 우승.
당시 한국은 물론 세계 최고수 3명을 처리한거지.
그녀가 바로 루이나이웨이 9단이야.
이 중국여인에게 한국의 바둑영웅들이 제대로 한방씩 먹으심 ㅋㅋ
그런데 당연 의문이 생길거야.
"아니 국내기전에 중국인이 왠말이지?"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루이누님의 기구한 스토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루이누님은 초등 4학년때 바둑을 첨 접했어.
부모님이 바이올린부터 여러가질 다 가르쳤었는데 잘하는게 하나도 없었다고 함. 근데 바둑에서 포텐이 터짐ㅋㅋ.
암튼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어렸을때부터 여러대회들을 많이 우승했었나봐.
아 그리고 당시에는 중국엔 프로입단제도같은게 없었던듯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니 패스;;
18살때 국가대표팀에 들어가게 됬다고 하는데 그리 자세한 기록이 있진 않네.
암튼 사회주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국가대표팀에 들어간다는건 큰 의미가 있는것 같아.
어쨌든 그렇게 루이의 앞날은 창창해보였어.
그런데 87년 그녀에게 일어난 일명 '싼쌰사건'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버림.
당시 한국바둑의 위치는 바닥을 기고있었지.
그래서 한국은 끼워주지도 않고 중일대항전을 몇년간 했다는거.
87년 중일대항전은 약간의 이벤트가 있었어.
머냐면 싼샤지방의 강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한다는 것이였지.
그때 당시 중국측에서 자국 여성기사들에게 일본기사들의 방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었나바.
머 사회주의국가로서 가능한 얘기라고바.
그런데 도중에 묵었던 호텔에서 일본 기사들이 중국기사들에게 대국을 청한거야.
처음엔 로비에서 하자고 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안되겠다고해서 결국은 일본기사 요다의 방에 루이 포함 다같이 모여서 바둑을 두게됨.
그럼 중국기사 방에서하면 될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측이 돈이 없어서 중국인들 방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함 ㅋㅋ
암튼 문도 활짝열어놓고 문제될게 하나 없는 분위기 였는데 이것이 상부에 보고되면서 문제가 되어 버린거야.
결국 이 일 때문에 후에 반성문을 몇장을 쓰고 보고서에 품행이 좋지 않다고 기록됨. 어이 상실 ㅡㅡ;
처녀로서 품행이 나쁘다는게 얼마나 치욕적이었겠어.
가장 참기힘든건 이 사건 때문에 바둑대회 참가에 방해를 받기 시작했지.
루이누님역시 바둑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인데 기회를 자체를 박탈당하니까 견디기 힘들었던거야.
이때 그녀가 만나게 된게 장주주9단이야.
당시 중일대항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하는 중국내 실력자였지.
원래 루이나이웨이랑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다는데 이 사건때는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서 힘썼다고 해.
그런데 사실 상부에서는 장주주도 좋지 않게 보고있었어.
왜냐면 장주주가 중국 천안문사태에 참가해서 선동질을 했다고 오해를 하고있었거든.
천안문사태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선 나도 자세히 모르고하니 설명은 패스할게 ㅋㅋ
이때 루이나이웨이의 바둑실력은 그럼 어느정도 였을까.
일화에 의하면 중일대항전에서 일본의 레전드들을 차례로 박살내며 슈퍼스타로 떠오른 중국 1인자 섭위평도 루이에게 진적이 있을정도야.
그런데 섭위평은 존내 거만하고 속이 좁았어.
지면 진거지 지가 새로운 수를 시험삼아 둬봤다고 구라를 쳤지.
섭위평의 그 발언을 못들었던 루이누님은 기자들이 신수에 대해 물어보자 "그런거 없었는데?;;" 이렇게 됨 ㅋㅋ
그래서 둘사이가 틀어짐.
중국바둑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섭위평에게 밉보였고 더군다나 여자라는 신분차이 때매 불이익도 마니 당하게 된거야.
루이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국가대표팀을 나오게 되지.
그렇게 상부와 관계가 악화될대로 악화된 후 탈퇴까지 하니까 더이상 루이는 중국에서 바둑을 두지 못할지경에 이름.
그때는 장주주도 비슷한 처지였던것 같아.
결국 장주주는 중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날아감.
장주주까지 떠나자 루이는 더이상 중국에 있을필요가 없었어.
그런데 그녀는 바둑 또한 너무나 사랑했어.
그래서 미국이 아닌 바둑선진국 일본으로 향하게 돼.
일본으로 유학가서 활동하던 선배 여성기사들이 몇몇 있기도 했던 시절이지.
이것이 바로 바둑집시라는 루이누님 유랑생활의 시작이야.
그러나 꿈을 쫒아 찾아간 일본은 루이를 받아주지 않았어.
일본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전편에서도 얘기한 바가 있는데 대회출전 자격등에서도 무지하게 폐쇄적이야.
자기네들 대회에서 남이 우승하는꼴을 보기가 싫은거지.
물론 오청원이나 임해봉, 조치훈 같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 경우에는 아주 어렸을때 일본으로 유학을와서 일본에서 프로가 된 케이스.
루이는 완전 이방인이니까 처지가 조금 다른거야.
처음에는 여성기전에 참가해보려고 시도해봤었는데 일본 여성기사들이 크게 반대했다고 함.
그래서 일본에서 6년동안 루이는 단한번도 대회에 참가하지 못함. 존나 불쌍 ㅡㅡ
하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였어.
일본에서 오청원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지.
오청원은 현대바둑의 기반을 세웠다는 바둑계의 원조 천재셔.
루이는 오청원 부부 앞에서 촛불을 키고 절을하는 의식을 했다고 하니 말그대로 정식 제자인 셈이지.
재밌는건 사제관계짤을 보면 조훈현 이창호와 같은 사문 이라는걸 알 수 있지 ㅋㅋ
암튼 루이가 대회는 못나갔지만 그나마 바둑공부는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었던것 같아.
일본바둑계의 정상급기사인 임해봉의 바둑연구회에도 나가고 했었다 하니.
그리고 이런 식으로 형성된 인맥이 루이에게 결정적인 힘이 돼.
오청원과 대만 바둑재벌인 응창기 사이에 큰 친분이 있었어.
일본에서 오청원이 한창 레전드 모드일때 응창기가 오청원을 대만으로 초빙해서 각별히 모셨지.
이때 대만의 유망주였던 임해봉이 오청원의 수제자가 되어 일본에 오청원과 함께 돌아가게 되는것도 응창기의 공이였어.
그리고 92년 제2회 응씨배에서 응창기는 루이나이웨이 부부를 출전시킴으로서 루이의 이름을 세계에 떨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함.
2회 응씨배는 도쿄에서 열렸는데 응창기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이 부부를 출전시키자 중국측이 단체로 불참을 선언한 대회지.
결과적으로 자기네들만 손해였지만 ㅋ
몇년의 공백 이후 대회에 처음 출전한 루이는 16강에서 당시 괴동이라 불리던 이창호에게 완승을 함.
이창호와 루이의 악연의 시작 ㅋㅋ
참고로 이후에도 이창호는 심심치 않게 루이누님에게 깨져.
이창호는 이시기에 세계최연소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세계정복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였지.
그런데 루이에게 패하고 너무 충격받은 나머지 다시는 바둑을 두고싶지 않았을 정도라고 ;;
이후 루이는 자신의 남편에게 승리한 한국의 양재호에게도 복수하며 여성으로서 4강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킴.
이때 보여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철녀'라는 별명도 얻게되지.
바둑계에 이런 은둔고수가 존재했을 줄이야! 것도 여자가!
아마 세계바둑팬들은 다들 '이 듣보잡 여편네가 대체 누구임?' 이랬을거야
루이는 이렇게 응씨배에서 자신의 한을 어느정도 풀지만 불쌍하게도 이후에도 일본에서 받아주지 않아 결국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되지.
루이부부는 지금도 결혼식 사진이 없는데 정식결혼식을 하지 않고 남편과 떨어져있던 시절 서류상으로만 결혼함.
응씨배 개최날 부부는 감격적으로 재회하게 되고 이때 사형인 임해봉앞에서 같이 케익을 자르며 간소한 의식을 했던게 전부래. ㅜㅜ
먼저 루이의 바둑 스타일은 한마디로 개싸움같다고 할 수 있을거 같아;;
달려가는 자동차의 타이어도 물어뜯는다는 아메리칸 핏불같은 느낌?
루이의 바둑은 절단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있어.
한마디로 끊을 수 있는건 일단 걍 닥치고 끊고 보는거임.
극단적인 공격바둑으로서 전투에는 일가견이 있는 조훈현도 한수 접어줘야 할 정도임.
이러니 이창호는 난생처음보는 스타일에 당황했던거지.
바둑계에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어. "대마는 죽지 않는다."
그만큼 대마를 잡기가 힘들다는 말이야.
하지만 이 루이나이웨이라는 도살자한테 걸리면 잘못하다 대마즉사가 되고말지.
루이가 뜨면 바둑판 위에 피바람이 불곤 했어.
그 대단한 이창호나 조훈현조차 루이에게 대마를 잡히곤 했으니까 ㅡㅡ;;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오늘날 실력있는 여류 프로기사들은 모두 전투바둑이라는 거야.
이상하게 계산에 밝은 치밀한 집바둑을 추구하는 여류고수는 찾기가 힘들어.
여기에는 과학적인 비밀이 숨어있다.
보통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뇌발달의 영역이 다르다고 하잔아.
여자는 언어학적으로 발달하고 남자는 수리영역 뭐 이런거...미안 정확히는 잘 몰라 ㅋㅋ
암튼 반집을 다투는 정상급 프로가 지녀야할 계산력이나 공간지각력을 여자에게서 기대하기는 무리라는거야.
이것은 유창혁9단이 해설 중 직접 했던 얘기임.
사실 바둑은 일반적인 스포츠에 비하면 여자가 불리할게 거의 없다고 생각되잔아.
그런데도 여자와 남자사이에는 실력에 큰 갭이 있어왔지.
더군다나 현대바둑은 이창호때문에 형세판단능력, 미세한 계산능력은 정상이 되는데 필수조건이 되어버렸지.
오늘날 이세돌 같은 전투바둑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때매 먹히는 거거등.
그래서 루이누님도 세계대회에서 우승까진 못하셨어.
그렇지만 여성이 세계최정상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사실만으로도 입이 닳도록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음.
다시 루이의 일생으로 돌아가서 6년의 일본생활동안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녀는 장주주와 함께 미국으로 가게됨.
서양권에서 바둑은 완전 척박한 환경이지.
중국과 일본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자 갈곳이 없어 어쩔수 없이 가게된 꼴인거야.
그런데 미국에는 당시 차민수프로가 이민가 있었어.
차민수는 촉망받는 젊은 프로기사일때 돌연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겜블러로 변신한 포커계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하신 분이라고 함.
근대 사실 난 잘 몰라;; 올인 때매 유명하지 ㅋㅋ 드라마와는 이미지가 좀 다를꺼얌.
예전에 내가 어디서 봤는데 미국 뒷세계에서 주먹이였다느니 동전을 던지면 철판을 뚫는다느니 하는 소리도 들은적이 있다;;
머 개오버인듯 ㅋㅋ
암튼 장주주와 차민수가 친해지고 차민수는 조훈현과 절친이였지.
더군다나 조훈현은 루이와 사숙관계였으니 당연히 도움을 주고싶었을거야.
루이의 바둑에 대한 열정은 그렇게 한국으로 향하게 됨.
차민수와 조훈현의 도움을 통해 드디어 유랑을 떠난지 약 10년만인 99년 한국에 객원기사로 터를 잡게 되는거지.
오늘날 울나라가 세계바둑의 정점에 오른건 이런 개방성을 보여줬기 때문이야.
일본의 경우 루이를 반대했지만 울나라는 젊은 여류프로들이 먼저 루이를 반겼어.
그리고 예상대로 루이는 한국 여류바둑대회를 싹쓸이함.
10년동안 응씨배외에 대회출전기록이 전무했던 루이였지만 역시나 명불허전이였어.
더군다나 한국에 온지 1년만에 조훈현을 격파하며 국수전을 우승한건 정말....
여성이 국수전에서 우승하는날이 또 올지도 나는 솔직히 의문스러움 ㅋ
위 사진은 역대 국수전 우승자들의 손모양을 본뜬 것 중 루이누님의 손이야.
2001년에 정식 한국기사로 등록되었고 2011년 12월 중국으로 다시 돌아간 루이나이웨이.
12년동안 여류기전 27회 우승, 국수전 우승 등 총 29회 우승.
,06년 여류기전 전관왕 (기성 명인 국수)등을 달성하며 한국바둑계에서 자신의 한을 맘껏 푸셨지.
그리고 루이의 활약속에서 가장 약했던 한국의 여류기사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해지며 세계여류바둑대회에서 10번을 우승함.
오늘날 박지은 조혜연등 루이나이웨이의 계보를 있는 선수들이 여류 세계최고반열의 기사들임.
나는 원래 중국식발음으로 중국이름을 말하는걸 조아하지 않아.
그렇게 읽으면 섭위평도 중국식으로는 녜웨이핑이고 마효춘은 마샤오춘, 임해봉은 린하이펑이라고 읽어야함.
그런데 루이나이웨이는 이렇게 읽는게 보편적이라서 걍 나도 그렇게 읽어.
원래 한국식으로 읽으면 예내위라고 하는데 걍 말해보아 ㅋㅋ
루이누님이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의 친절에 너무 고맙다고 했지.
하지만 오히려 한국바둑계가 루이 때문에 고마워해야 될껄.
그리고 우리는 중국에게 제일 고마워 해야함 ㅋㅋ 루이를 버려줬으니까.
루이 누님의 휘호부채야.
바둑계에서 휘호라는건 사인과 비슷한건데 자신의 좌우명이나 신념같은 글들을 한자로 적는 형식이지.
조훈현의 휘호는 '무심(無心)' 이창호는 '성의(誠意)' 서봉수는 '락(樂)'
루이의 휘호는 몽(꿈)이야.
바둑이라는 꿈을 쫒아 세계를 방랑했던 철녀 루이.
여기에 비하인드 스토리.
장주주와 루이부부가 영화 타이타닉을 본날 루이가 꿈을 꾸는데 침몰하는 타이타닉위에 부부가 있었다고 함.
꿈속에서 죽음을 앞두며 루이가 했던말.
"우리 바둑을 두어요. 바둑을 두면서 죽으면 다음 생에서 다시 바둑 기사가 될 수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