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을 만나고 그동안 단절됐던 대북 채널을 가동하면 한반도에도 평화와 안정의 기운이 감돌 것이다. 청년과 노인, 비정규직과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도 볕이 들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권력 비판을 본업으로 하는 언론인으로서는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흔히 기자와 취재원은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정부 공식 명칭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지만 이른바 ‘기자실 대못질’로 알려진 사건이다. 정부 방안은 각 부처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공무원 개별 취재를 금지하는 것 등이 골자인데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다분했다. 노무현 정부에 사사건건 딴죽을 건 수구 족벌 언론의 폐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부 방안은 도가 지나쳤다. 모든 언론이 반대했고, 경향신문의 비판 논조는 더욱 강경했다. 노무현 정부는 진보 언론으로부터 받은 비판이 더 아팠던 것 같다. 기자 출신이었던 국정홍보처 관료가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경향과 한겨레마저 노무현 정부의 선한 의지를 외면하고 만날 비판만 한다”고 쏘아붙인 것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닫혔던 기자실은 이듬해 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열렸다.
새삼스럽게 10년 전 일이 떠오른 것은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렸던 유시민 작가가 얼마 전 한겨레 TV
에 나와서 한 발언 때문이다. 유 작가는 문재인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진보 언론과 지식인을 향해 당부했다. 요약하면 ‘한국 사회는 언론·재벌 등 여러 권력이 있다.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 하나만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문재인 후보를 편들어준 언론이나 지식인도 막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 권력으로 보고 공격을 해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지식인이 너무 없어서 힘들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토지정의연대 사무처장은 ‘유시민이 옳다’는 글을 통해 “거시적 안목과 전략적 인내심이 없는 진보, 사안의 경중과 완급과 선후를 모르는 진보, 한 사회가 걸어온 경로의 무서움과 사회세력 간의 힘의 우열이 가진 규정력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 한사코 흠과 한계를 찾아내 이를 폭로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진보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고 유 작가에 공감을 표시했다.
유시민 작가와 이태경 사무처장의 글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 중에 혹시 불거질 수 있는 갈등 상황에서 진보 언론이 정권 편을 들어야 한다고 벌써부터 다그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기자 입장에서는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처럼 ‘착한 정권’이 더 힘들다. 정권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슴을 졸이면서도 냉철한 관찰자 입장을 유지해야 하고, 비판 기사를 쓸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취재원들로부터 서운하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래도 기사를 써야 하니 일종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