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 관련된 글들이 자주 올라와서, 저도 제 경험담 한번 올려봅니다.
직장생활 멀쩡히 하고 있다가.. 29살에 더이상 늦춰지면 제 인생에 외국 경험이 없을듯 하여
모든걸 정리하고 집에 1년간 부재를 대비해 부모님께 돈 조금 드리고..
3개월 학비 400만원 정도 냈고, 항공료 1년 오픈으로 130만원 정도 내고 호주로 갔습니다.
더 나이먹고 어쩌려고 그러냐, 하시면서 주변의 반대가 심했었지만..
한번쯤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갔습니다.
영어는 중학교때 잘했던 실력정도...ㅎㅎ
막상 도착하고 학원 다니며 느꼈던것은 멘붕.. 한국은 그래머를 우선적으로 가르치죠. 물론 도움도 됩니다만..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사람들이다보니 발음이 워낙 달라요.
또한 우리가 익숙한 어메리칸 잉글리시가 아닌 브리티시죠.. 발음이 처음 적응이 안됩니다.
아는 문장도 알아들을수가 없다는거.. 이 부분에서 멘붕이 왔고.. 적응 하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듯..
학원이 끝나갈때쯤 세차장 일을 시작합니다.
웃겼던건, 그 먼 나라에서 군대 동생을 만났다는거.. 그 세차장에서.. 신기 +_+
세차장엔 온통 한국인들 천지였고 (한국인들이 8282 일잘하고 군소리없다, 이런 인식이 많더군요)
매니저와 몇명 간부급 제외하곤 모두 한국인. 오래 일한 팀장급도 모두 한국인.
이사람들이 더 악랄했죠. 그것도 권력이라고 거만함에, 우쭐대기는...
이미 뭐 그 지역에선 악랄함으로 유명했구요. 그정도 각오는 하고 갔으니 뭐..
일하다 발목 다쳐서 못나갔고.. 그 와중에 투잡으로 일했던 한국식당 (호프집) 일 계속 했습니다.
한국사장이 주는 시급은 10불, 여건 좋은곳이 12불 정도 됩니다. 밤낮 바꿔가며 (밤에 문여는 술집은 한국식당뿐) 이라..
한국식당에서 일하니, 손님도 대부분 한국사람. 영어가 늘리 없구요.
저도 영어가 안되니, 거기서 오래 있었던듯. (가장 후회한 일입니다.)
안되면, 부딪혀보면서 늘렸어야 했는데.. 두려움이 컸던거죠.. 호주 가시려는분 계시다면, 무조건 부딪혀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그러다 워홀 1년 비자 기간이 몇달 남지안아, 농장으로 갑니다. 북부 가장 더운 지역.. 비행기 타고 4시간 이상을 가는 먼 지역으로 이동..
왠걸, 호주 원주민들과 섞여사는 이 지역에 한국인들이 이미 점령.
호주 회사의 용역회사 같은 계약으로.. 호주회사로 입사하면 좋은 대우에 편하게 일하지만..
한국 회사로 들어가면 일하는 시간동안 정해진 시간외에 쉬는시간 1분도 없이 일합니다. 담배도 못피구요.
이때 살이 엄청 빠짐.. 역시 악랄한 똑같은 놈들.. 제가 재수가 없나보다 했죠..
그렇게 워홀비자 1년 연장하여, 처음 몇개월을 다시 살던 지역으로 돌아와 또 한국식당에 먼저 들어갑니다.
정말 멍청했죠.. 당시 여사장님이 수완이 없어서 너무 안돼보였음.. (내 코가 석잔데 -_-)
몇개월 일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소개로 호주사람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갑니다.
한국식당은 어차피 야간일이라 시간타임 조절해주신다길래, 오케이 하며 투잡을 했죠..
근데 호주식당에서 돈 많이 받는게 질투가 나셨나? 디스를 자꾸 하시더군요. 마지막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피시길래
모두 정리. 잠깐 일하고 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누가 나갈때마다 곱게 보낸적이 없어서 예상은 했지만
1년을 넘게 함께 일하고 열심히 해준 사람에게, 매니저였던 사람에게 뒷담화라니.. 나이값 못하시는 양반들.. (뭐 지금은 망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제 호주 생활이 반전이 됩니다.
특유의 한국인의 근면함 이랄까.. 호주 사장이 마인드가 참 좋았어요. 이름은 모리스 ㅎㅎ 할아버지 연세인데
츤데레 같은 사람? ㅎㅎ 8시부터 11시까지 점심장사할꺼 준비하고, 점심장사하고 정리하고 3시면 문을 닫아요.
중간에 오전 준비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이 생겨 그만두게 되고, 사람이 없어 곤란할때
제가 7시에 나가서 모든 준비를 해놨어요. 잘해주니, 저도 잘해드리고 싶고.. 해주는 기쁨이랄까? ㅎㅎ
주말이면 모리스 집에서 같이 저녁도 먹고, 대화도 하고.. 같이 일하면서 쓰는 영어가 정말 최고더군요. 가장 많이 늘었던 시기인듯..
처음엔 못알아들어서 답답할때도 많았고, 눈치로 알아들을때도 많았는데.. 그 억센 발음이 익숙해지더군요..
그렇게 반년정도 일하고 나니, 슬슬 비자 만료일이 다가왔고.
모리스는 스폰서 비자를 제안했습니다. 이 스폰서 비자에 목숨거시는 분들 많다는 것도 알구요. 별따기처럼 얻기 힘든 기회인것도 압니다만..
당시 향수병에 젖어있던 저에게는 큰 의미는 아니더군요. 늦은 나이에 워킹을 갔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것 같다고 하니, 한국가서 사업할 생각이면 함께 하고 본인이 투자처럼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어떤 일을 하던 믿을수 있다고... 이 말이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고 감동이었는지...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난 1년 반을 고생하며 허비했구나.. 란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도 3일째 집에 못가고 회사에서 야근중입니다. 뭐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고..
제가 해야할 일이기에 남아서 하고 있습니다만...
호주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께.. 제가 만났던 모리스 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정말 많은 다민족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영어, 기술 없는 사람은 그냥 레스토랑 서빙, 주방 설거지, 청소만 해야하는 곳이구요.
아시아 무시하는데는 선수인 나라구요 (주로 젊은 층이 문제죠, 길가다 계란 던지고 그럽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릅니다. 가시려는 분은 큰 기대없이, 고생도 사서 해본다는 생각으로.. 경험으로 다녀오시면 좋을듯 싶어요.
물론 제가 경험한건 워홀이고, 유학비자나 이민은 다른 얘기겠지만요.
옛생각에 한번 적어봣구요.. 어떤 길을 택하시던,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