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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했으나 몰락의 길을 걸었던 나라들... 그럼 우리는????
게시물ID : economy_94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레리
추천 : 12
조회수 : 1508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4/12/18 00:45:08


1.로마
2.베네치아
3.스페인
4.베네수엘라





1.그리스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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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몬테 테스타치오...
이 산은 도자기로 쌓인
인공 도자기 산이다.
(나뭇잎처럼 보이자만 사실 도자기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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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한 지방에서 생산된 올리브유는 로마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올리브유는 항아리에 담겨서 운반되었고
올리브유를 팔고 남은 항아리가 쌓여... 도자기 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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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올리브유를 싣고 가는 배들이 풍랑이나 해적을 만나
침몰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90년대에 발견한 난파선의 수가 1200~1300척 정도...

지금까지도 해마다 50척의 배가 발견이 되며
그래서 현재 발견된 난파선의 수는 약 2000척...

당시의 교역량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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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흥미로은 점은
난파선의 수가 계속 증가하다가
갑자기 정점에서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 시기는 로마의 정치제도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바뀔 때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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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연구결과는 그린란드의 빙핵연구에서도 확인된다.
2007년 학자들은 수천미터를 파고 들어가 빙핵을 채취...하여 과거의 대기 성분을 분석...

대기 중의 성분이 눈과 함께 내리면서 마치 지층처럼 빙핵처럼 쌓이는데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대기 중의 납성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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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번영했던 시기
공기 중에는 유난히 많은 납성분이 발견이 되었는데...
이것은 로마의 활발했던 화폐유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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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핵분석 결과...

대기의 납성분은 난파선의 수와 마찬가지로
꾸준하게 증가하다가 황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감소한다.
그러다가 산업혁명 때... 다시 같은 수준으로 올라온다.

그렇다면 왜
로마 경제는 황제정으로 넘어가면서 위축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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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경
가난을 참지 못한 가난한 시민과 군인들이 이곳에 모여서 집단 농성을 시작하였다.

오랜 대치 끝에 귀족들은 결국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귀족들이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제국확장을 위해 병사와 노동력이 절실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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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산사건 이후 변화의 핵심은
호민관의 신설이었다.

로마 공화정의 상징이 된 호민관은
매년 평민들이 직접 선출했고

호민관은 평민들의 요구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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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관의 힘은 강력한 것이었다.
평민들을 대면하고
평민들의 권익에 위배되는 정책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귀족들을 대변하는 원로원과 호민관이 서로 소통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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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개의 문자는 원로원과 민중이 상생할 때 비로서  로마도 존재한다는 로마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분과 계급은 있었지만
평민들의 재능과 열정은
경제 발전으로 연결시키는 제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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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사람이 등장하면서 부터....

전쟁 영웅 카이사르는 원로원과 호민관이 서로 견제하는 공화정을
1인 독재 체재로 중앙집권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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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1대 황제에 오르면서 공화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호민관의 권리를 황제에게 귀속시켰고
황제를 견제했던 원로원의 영향력도 점점 약해졌다.

로마 정치의 미덕이었던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은 증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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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전쟁과 사치로 로마엔 돈 줄이 말라갔다.

결국 은 함유량이 낮은 화폐를 유통시켰고
시장에 강제 유통시켰다.
심지어는 은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은화도 유통시켰다.

결국 로마의 화폐 경제는 몰락으로 치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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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부는 모두 황제에게 집중되었고
로마의 경제는 모두 노예들에게 의존하는 허약한 경제로 전락한다.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혁신적인 기술도 절대 나올 수 없었다.

티베리우스 시절
한 장인이 잘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개발했으나
황제는 오히려 장인을 살해하고 신기술을 묻어버렸다.
이유는 황제가 보유하고 있던 은과 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

이런 창의력과 신기술은 권력자의 탐욕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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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로마에선
연일 검투와 전차경기가 지속되었다.

황제는 끊임없이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시민들의 비판정신을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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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시민들은 한 때 세상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었으나
황제정 시대에는 비판정신을 잃은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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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학자들은
로마의 멸망원인은 공화정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로마 번영의 열쇠였던 포용적인 제도는
황제들에게 집중되면서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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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타까운 역사는 1000년 뒤 반복된다.
바로 베네치아에서...







2.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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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이민족의 침입을 피해온 피난민들이 갯벌을 간척해 만든 도시이다.
규모는 작았지만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주요 활동은 주로 상업이었고
장사하는 사람들이었다.

( 마르코 폴로 역시 베네치아의 상인 가문 출신이다.)

자원이라고는 소금과 생선 뿐이었기에
동방에서 도자기와 향신료를 들여와 비싼 값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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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번영은
정치와 사회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최고 통치자인 도제(Doge)는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었고
권력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도제의 의사결정은 언제나 대평의회가 견제했다.
대평의회는 베네치아 정치의 핵심적인 조직이었다.

400명이 넘는 의회는 매년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구성원 100명을 교체했다.

비록 귀족 중심이었지만
의원직의 세습은 불가능했고,
상인출신의 평민들도 의원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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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상위 계층으로의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세바스티아노 지아니는
평범한 상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인 도제(Doge)자리에 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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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 가면 가면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도제나 의원,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모두

가면을 쓰고 축제나 카지노에 갔으며

사회적 계층이나 신분은 중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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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 달라도 계층간의 차이는 없었고, 다른 계층과 함께 즐기고 소통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포용적 정치와 자유로운 분위기는 경제제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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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는 이른바
'코맨다'라는 독특한 계약 제도가 존재했다.


상인들은 부유층이나 귀족들에게 투자를 이끌어내
원거리 무역을 할 수 있었으며,
귀족들은 리스크를 지는 대신 일정한 수익금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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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맨다를 통해 무역은 활발해졌고
귀족과 상인이 동시에 부를 쌓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번영해 나갔다.


그러나
귀족들이 의외의 선택을 하면서
베네치아는 막다른 운명을 맡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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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년 대평의회는 의원 선출방식을 전격적으로 개정하는데

매년 새로운 의원을 영입하던 것에서

4년간 의원을 지내면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보장받게 하고
신입의원 지명은 귀족의원들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게 된다.


무엇보다 세습 금지 원칙을 깨고
아들과 손자에게 의원직을 대물림하면서
평민들의 대평의회 진입을 봉쇄하였다.

신흥세력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귀족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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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의회에 진입한 귀족들은
급기야 '황금의 책'이라는 귀족 명부를 작성하게 되었고

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가문은
더이상 대평의회에 참가할 수 없음을 공식화 한 것이었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있었던 베네치아는
결국 폐쇄적인 사회로 역행하였다.

 결국 코맨다 제도까지 철폐되면서
베네치아의 시계는 중세 시대에 멈춰 버리게 되었다.

기득권의 탐욕이
포용적인 시스템을 폐쇄했던 순간
번영했던 국가는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베네치아가 준 교훈...



3.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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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부국이 될 수 있었다.

멕시코왕 볼리비아의 광산에서 예상치 못했던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왔다.
(스페인으로 유입된 은만 3000여 톤...)

식민지 무역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스페인 왕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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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영토확장 전쟁을 벌여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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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금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는 왕실이 자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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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역에 거점도시였던 세비아...
1503년
이 곳에 상무청이 설립되었다.

식민지를 오가는 무역선은
상무청에서 상거래신고와 화물등록을 해야했고
상인들과의 분쟁도 상무청이 처리했다.

식민지 무역을 효과적으로 관장하겠다는 뜻이었지만
실상은 왕실이 모든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높은 세금을 물리고
왕실이 무역을 철저히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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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실은 막대한 부를 독점했지만
재정상태는 좋지 못했다.

( 심지어는 방목하는 가축들에게도 통행세를 받을 정도.... )

그 이유는 끊임없는 전쟁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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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싶은 왕실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러한 재정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은 은행가들에게 돈을 빌려 궁을 지었고
모자란 돈은 채권(후로)을 발행해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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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채권은 투자 가치가 놓았으나
왕실이 채권 발행을 남발하면서
왕실 수입의 65%가 후로 이자로 지출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방 도지의 의회들은
왕실의 방만한 경영에 견디다 못해
1521년에는 지방 의회들이 왕실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킨다.

신대륙 개척에 대한 과실은 왕과 일부 계층에게 돌아갔고

지방도시들은 세금을 걷어 구멍난 재정을 메워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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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왕실은 반란군을 제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업도시 하나를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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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은 날이 갈수록 점점 악화되었고
결국
펠리페 2세는 무려 4번이나 파산선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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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이 어려워지게 되었고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찬란했던 스페인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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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네델란드는
신대륙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꿔가는 사이
스페인은 왕실의 탐욕과 허영으로
모든 기회를 놓치게 된다.



4.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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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세 개의 정당이 모여
'푼토피호'라는 새로운 협약을 체결한다.

장기적인 정치 휴전과 폭력행사를 자제하고
석유개발의 이익을
사회 전체 균등하게 배분하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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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당이 권력을 배분하고
서로 견제한다는 원칙아래

민주행동당(AD)의 베탄쿠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58년)

모처럼 정치적인 안정이 찾아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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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푼토피호 협약은 점차 정치 카르텔의 성격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결과 석유에서 나오는 이익도
푼토피호 정당과 가까운 기업이나 세력에게 편중되기 시작했다.

협약에 참여하지 않는 정당에게는
발언권은 차단되었다.

60년대 들어 민주공화연합이 대쿠바 정책에 대이견을 보이며
푼토피호를 탈퇴하자
남은 두 정당과의 담합은 더욱 강화되었고

국가의 요직을 철저히 나누어 가졌으며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일정한 권력이 보장되자
정당간의 정책 경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출처: 부국의 조건


정치적 카르텔은 결국 경제권력의 독점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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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토피호의 양당은 석유공사를 세우고
석유산업을 직접 관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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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석유 수입은
보조금의 형태로
양 정당에 지급되었고
정경유착은 심각해졌다.

농업과 기관산업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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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당이 법관 지명권을 나눠 가졌고
사법부도 푼토피호에 종속되었고 비판기능은 마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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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기관조차도 푼토피호 정당의 하위기구로 편입되어
노조의 간부들은 모두 당원이 되었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에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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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토피호는 정당 민주주의의 외피를 걸친
독재권력과 다름없었다.

국민들은 모두 관객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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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최고 수준이었던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70년대부터 급격히 떨어졌고
국가의 무분별한 지출로
국가 부채는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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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유가하락이 왔고
최고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가지고도
부채를 갚지 못해 쩔쩔맸다.

결국
볼리바르화의 평가절화를 단행...

국민들의 화폐가치가 7분의 1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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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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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하룻밤만에 2배로 인상된  대중교통 요금과 석유값 인상으로 인해
누적된 민심이 폭발하여 전국적으로 민중봉기가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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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토피호에 치를 떨었던 국민들은

국민들은 푼토피호를 비판했던 차베스를 선택...

차베스의 복지정책으로
차베스가 집권하는 동안 빈곤률은 20%이상 낮아졌다.

그러나 차베스는
부의 빠른 재분배를 위해
생필품 가격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민감사업자들이 생필품 생산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차베스는 카르텔 정당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차베스 역시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결론은...

부와 권력의 독점으로..
시민이 모두 관객(노예)으로 전락한 나라는
모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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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민중들의 의지가 권력안에 들어가 있을 때
나라는 흥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급의 차이를 넘는 수평적인 소통이 필요하며


부와 정치의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제도들이 있어야 한다.
(세습이나 기득권 지키기 등)





출처: kbs 부국의 조건2 - 탐욕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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