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땅콩 항공이 정윤회 사건을 완전히 묻어버렸다. 음모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절한 타이밍에 벌어진 이 사태에 정부는 검찰 조사, 구속 가능 등의 떡밥으로 화답하고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을 끄는 것도 있지만 사건 자체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더 끄는 성격의 것임도 분명하다. 정윤횐지 문고리 권력인지 박지만인지 이런 건 어차피 다른 세상 얘기처럼 들리지만 조현아한테 당한 사무장, 승무원은 을로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내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다시 한번 명확하게 일깨워 줬고, 난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기사를 보면서 언론의 집중 포화에 아주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의 계급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무력감과 약간의 분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 사건 발생하자마자 승무원 잘못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사과문

- 부사장직은 유지한 시늉만 사퇴

- 일등석 승객에게 모형 항공기로 무마 시도

- 피해자인 사무장 압박

- 국토부 대상 수사 비협조

- 조현아 공주 출두 시 정부 기관 화장실 청소 요청 (그 때 화장실 담당 하시는 분이 뻐큐 한번 날려 주셨음 좋았을텐데)

- 공주 조사 받는 동안 4시간 공회전 대기

- 내리라고는 했지만 비행기 돌리라고는 하지 않았다 발언 등등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건 이상 사고를 치고 있는데, 난 이게 그동안 일가에게 학대 당해 왔던 측근들이 고도의 안티 캠페인을 벌이는 건 아닌지 의심이 좀 든다 

3. 거기에 조현아 아버지가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떤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발언이 있었는데

'임원들은 오우너 일가에게도 no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니들이 no라고 제대로 얘기를 안 해줘서 내딸이 이렇게 곤경에 처해 있다, 

즉 자기들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니 - 한진이 몇 대 계열사인지 모르겠는데, 20대 계열사안에만 든다고 해도 총수 일가 10명 잡았을 때 한국에서 200명 안에 드는 특수 계층이니 자신들은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걸 최소한 인지는 하고 있다는 걸로 봐야 할지 - 니들이 앞으로 똑바로 해라 라는 건데, 월급쟁이 입장에서 쓴소리 했다간 바로 짤리기 쉽상이고 공주 대접 해 주면 중간은 갈텐데 이런 지시가 제대로 먹히겠냐고.

하여간 끝까지 남탓은...

4. 문희상이 2004년에 땅콩항공에 압력 넣어서 땅콩항공이 처남에게 8년 동안 8억원을 일도 안 한 사람한테 지급한게 밝혀졌다는 기사가 한겨레 시문에 났다. 이 일가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보인 행태가 좀 더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 당시 문희상은 여당, 새누리도 찾아보면 누구 또 있겠지-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푼돈 좀 던져주면 정치, 언론 쪽은 다 관리 가능하니 그렇게 구축한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뜻을 거스르지 못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게 재벌 일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포함 우리 사회가 다 얽혀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5. 그래서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도 다가 오지만, 안 그래도 당장 조현아보다 가깝게 있는 내 일상 생활에서 당하고 있는 갑질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든데 이런 기사들로 조금 더 우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탈에 땅콩항공 기사 뜨면 제일 먼저 클릭하게 된다. 땅콩항공의 나와 같은 또다른 을들은 오늘은 또 무슨 닭짓을 저질렀는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궁금해 하면서..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선 '나이도 먹어 가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걱정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