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why0302/30167179143
일간베스트 저장소등 싸이트를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자료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80년 봄 (서울의 봄 시기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80년 5월 17일까지) 최규하 대통령에게 하야 협박을 하는등 직선제 개헌을 반대했다구요.
하지만 이는 '역사학도' 라는 한 네티즌의 이상한 해석이 첨가한 말도 안 되는 거짓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김대중이 그렇게 했다라고 상당히 퍼졌습니다. 이를 바로 잡겠습니다.
이들의 (일간베스트 회원들) 주장은 이렇습니다. 김대중은 5월 22일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기 위해 내란을 일으킬거라는 협박을 했으며 직선제 개헌안에 반대하였다.
1. 김대중은 대통령 직선제안에 정말로 반대하였는가 ?
이 주장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2900209201010&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8019&publishType=00020 80년 4월 29일 동아일보 기사로 반박됩니다.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 직선제 채택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즉, 김대중이 서울의 봄 시기 대통령 직선제안을 반대했다는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그렇다면 김대중이 이 때 직선제를 찬성했다는 증거를 갖고와보라고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자료일 것으로 보입니다.
2. 어째서 김대중이 대통령 직선제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와전됐는가 ?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직선제 약속을 하였는데 최규하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했으니 직선제에 반대했다는 것이랍니다 이들의 논리를 적용시키면 김대중 뿐이 아닙니다. 김영삼 그리고 서울의 봄 시기 민주투쟁에 나선 모든 이들을 직선제 반대라는 굴레를 씌워버 겁니다. 근데 어째서 이들은 [김대중이 반대했다]라고만 말을 하고 김영삼과 그 외의 시민들도 직선제안에 반대하였다라는 말은 안 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3. 그렇다면 최규하 대통령은 직선제를 약속하였는가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101059
이날 오후 2시께 빈소를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정 앞에 애도를 표한뒤 “고인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당시 야당 총재로서 두차례 찾아가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권유했지만 고인은 우선 남미와 유럽의 선거제도를 시찰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고 말했다.
최규하 대통령 서거 이후 빈소를 찾은 김영삼 대통령이 몇몇 말을 하였는데 김영삼씨는 야당 총재로 재직하던 시절 최규하 대통령에 2차례 찾아가 직선제 실시를 권유하였지만 고인은 우선 남미와 유럽의 선거제도를 시찰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겁니다.
4. 최규하는 그렇다면 어떤 개헌안을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493705 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의 피살로 찾아온 `서울의 봄'을 맞아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김종필(金鍾泌) 등 이른바 `3김'은 국회에서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의 최규하(崔圭夏) 정부는 `이원집정제'를 골자로 하는 별도의 정부안을 제출, 파문을 일으켰다.
이원집정제는 최규하가 집권을 계속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말이 생깁니다. 이로 인해 신현확과 결탁해 친여 신당을 만들어 또 다시 정권을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퍼집니다. 그래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이원집정제 개헌 반대를 외치죠.
그런데 이원집정제 개헌 반대를 일부에선 [직선제 반대]로 만들어 버려 김대중이 직선제를 반대했다고 거짓말을 하고있습니다.
http://pdf.joinsmsn.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198712040194
당시 최대통령의 측근 보좌관의 한사람도 그런 점은 인정했다.
『그때 정부에 헌법 연구반을 구성한 것은 전적으로 최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그때만 해도 계엄당국이나 그런 쪽의 뜻이 작용한 것은 아닌 줄로 안다. 최대통령은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상황에서 대통령직선제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야 정당이 모두 대통령중심 직선제로 흐르자 분위기조정 내지는 주의환기를 위해 이와는 다른 방향의 문제제기를 담당할 헌법연구반을 만들도록 했다. 그 후 권력의 분산, 권력남용의 방지, 유사시 (대통령 유고)의 안정 유지등을 감안해 이원집정부제라고 불리게 된 개헌안을 구상했고 그것을 내가 받아썼다.
5. 5월 22일 내란 ?
5월 15일 서울역에서 10여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원집정부제 반대 직선제 찬성 민주화 요구 최규하 하야]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개헌에 촉진을 내지않자 김대중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빨리 민주적 요구에 대해 응답을 하지않는다면 5월 22일 정오를 기해 서울역 시위처럼 다시 한 번 서울에서는 장충공원, 지방에서는 시청 앞 광장에서 ‘ 민주화촉진선언 국민대회’를 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내란 · 폭동이라는 어휘를 사용하여 부정적으로 만드는 이유는 뭡니까 -_- ;
6. 84년 직선제 반대 ?
김대중이 1984년 주미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직선제 반대 기고문을 싣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5공화국 언론검열속이라는 특수 상황과 함께 민정당의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에 무작정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실제로 김대중이 84년 잡지에 직선제 반대 기고문을 담았다해도 80년 봄 (서울의 봄) 시기 김대중이 직선제를 반대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84년 직선제 반대에 관하여는 여기를 참조 http://todayhumor.com/?history_9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