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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삶, 지켜보는 이로서 한 자 남깁니다(스압)
게시물ID : freeboard_7946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영일만호랑이
추천 : 0
조회수 : 3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3 14:14:42

병원에서의 삶

그것은 별 것이 아닌 것 같지만, 별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병원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

병원에서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살아가야 하는 건 퍽 차이가 난다.

아픈 사람은 말할 나위가 없고, 멀쩡한 사람도 '고통'에 길들여진다.
그렇게 해야만 견딜 수 있는 게 병동 생활이고, 병실에서의 하루 하루다.

대학교 종합 병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TV 드라마에서 보던 분주한 모습이 다였다.

가끔 유명한 교수에게 외래 진료를 받으려면 힘들었다라는 느낌 정도다.
가장 큰 건 역시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고, 이곳에는 올 일 자체가 별로 없겠다란 막연한 생각 정도다.

병원에서의  삶, 즉 생사가 불분명하고, 하루를 투쟁하듯 살아야 하는 삶을 지켜야 하면 전혀 달라진다.
낯설던 대학 병원이 우리 집처럼 느껴진다.

넓은 공간 구석구석의 길이 손바닥처럼 훤하고, 그 장소에 나만의 영역을 찜해둔다.

자투리 시간이 나면 즐길 것들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 작지만 귀한 편안함을 추구한다.
뭔가 모르게 위압적이던 의사, 간호사들은 입은 옷으로 직급을 파악할 만큼 '익숙한 존재'가 된다.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눈으로 보아왔던 그들은, 친절하지만 그 친절함 안에 진위는 없음도 알게 된다.

병실도 마찬가지다.
수술이 급할 땐 2인실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6인실을 쓰게 된다.
보험 처리도 처리지만, 병원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2인실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과하디 과하다.

그렇다고 6인실이 마냥 좋지는 않다. 몸이 아픈 것도 천양지차인 이들이 뒤섞여 아픔을 토해낸다.
이들을 지키는 가족 또는 간병인 역시 천양지차다. 불협화음은 한층 더 심해진다.
아픈 사람, 아픈 사람이 있어야 돈을 버는 사람, 그것을 대신하는 가족이 뒤섞인 병실은 아수라장이다.

물론 때로는 이 사람들이 병원생활을 버티는데 도움이 되곤 한다.
병실 생활 고참은, 병실 생활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는 요령을 알려주곤 한다.

고달픈 환자를 잔인하게 몰아치는 간병인도 있지만, 프로 간병인은 병실 환자를 도맡아 치우기도 한다.
모두가 '정도'는 다르지만 아픔이 주는 무게, 그 무게가 전염되는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부 심정은 홀아비만 알듯, 병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은 이들이 아니면 결코 알지 못한다.

병원에서 주는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 익숙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먹먹한 일이다.
병원 이름이 수놓인 환자복, 이질적일 만큼 하얀 베게, 편하다고 말하기 힘든 병원 침대가 낯설지 않다.

그곳에서 불편한 몸을 일으켜, 천편일률적인 식사를, 간이 테이블에서 의무감으로 해치워야만 한다.
몸을 가눌 수 있는 이들이라면 병원 안이라도 돌아다니면서 지루함을 떨치려 노력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말마따나 밖에서 보내는 10시간보다, 병원에서의 1시간은 더디게 느껴진다.
그만큼 병원 생활은 지리멸렬하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하루 하루가 참 고역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이의 마음 역시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육신이 고되질수록 '고통'은 무뎌진다.
무뎌진 마음 씀씀이는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날카롭게 박히고,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더한다.

그러다 '서로' 가 이 힘겨운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음을 환기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사랑해 마지 않는 이의 힘겨운 삶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눈물은 쏟아지고, 억장은 무너진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다.
병원에서의 삶은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애틋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을 찢어놓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병원 밖의 삶이 낯설어지고, 병원 밖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허상처럼 느껴진다.

먹고 사는 문제로 병원 밖에서 지낼 수밖에 없을 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스믈스물 올라온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 나도 살아야지, 내 삶이 있어야 그 사람도 기뻐할 거야. 그래 오늘 하루는 잊자.

악마는 속삭이고, 지쳐버린 영육은 그 속삭임에 기꺼이 응하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한다.
때론 그 유혹에 굴복해, 잠시의 달콤함을 취해보려 하지만 헛되었음을 자각하는 걸로 끝난다.
세상이 모르는 내 부덕함을 온전히 품어준 사람을, '자의'로 외면한 시간이 편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부딪힐 수 있음이 행복했음을 알 순간은 오게 된다.
언제일 지 모른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것은 바뀔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일순간의 평온, 아니 평온이 아닌 값싼 회피를 다잡아야 하는 잔인한 이유다.
병원에서의 삶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전력을 다하더라도, 이 여정이 끝날 즈음에는 후회로 점철된 막막한 심정이 지배하는 게 당연지사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언제간 돌아올 후회라는 부메랑의 개수를 하나라도 적게 만드는 일이다.

후회할 일을 줄이자. 줄이자. 줄이자.
유일한 주문이자, 버틸 수 있는 생의 동력이다.

오늘도 이제는 집보다 더 익숙해진 병원을 찾는다.
병실의 하루가 어색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고참처럼 익숙해진 내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함께 입원했던 이들은 이미 퇴원한 지 오래고, 다른 이들의 입원 및 퇴원도 일상이 되었다.
그냥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서 즐기듯 썼던 시간은 이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립다. 아니 애틋하다. 그때 철없이 지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 감정만 떠오른다.
병원, 휠체어, 간병, 등등은 고려할 필요도 없던 시절이었다.

돌아갈 순 없다. 온전히 버텨야만 한다.

내 삶의 통과의례이고, 내가 이땅에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이를 위해 의당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어디에 있든 내 삶이라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아니면 화가 나는지 도통 모르겠다.
분명한 건 녹록하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고, 이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뭐, 까짓 거 그동안 버티듯 또 버티면 된다.
그 분도 나를 위해 그렇게 살아왔고, 사랑을 주었다.

못할 일은 아니다.
그냥, 그냥, 조금 힘든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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