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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역사> 교과서 실험본 95쪽. |
ⓒ 역사정의실천연대 | |
검정으로 나온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이어, 국정으로 나온 초등 역사교과서인 <사회 5-2> 실험본 교과서(아래 초등 <역사>)가 무더기 오류 논란에 휘말렸다.
이런 상황은 '오류와 이념 편향성이 없는 역사 교과서'를 명분으로 내건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 정책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이 교과서는 이미 '박정희 독재를 감추기 위한 편향된 서술을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어 '교과서 폐기운동'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관련기사: 내년 초등 <사회> "박정희 독재 감추기 심각").
9일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학술단체협의회, 전교조 등 465개 단체가 모인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아래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성명을 내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 초등 <역사>를 회수하고,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이렇게 요구한 근거는 ▲ 350여 개에 이르는 오류 ▲ 박정희 정권에 대한 편향된 역사 서술 등이다.
이 단체는 최근 자체 분석 결과 "명백한 사실관계 잘못, 부정확한 표현 등 350여 개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오류가 있었다"면서 "한 페이지마다 평균 2개의 오류가 발견된 이 교과서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와 같은 검정 절차를 거쳤다면 절대 합격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 페이지 평균 2개 오류"이 교과서 95쪽에는 다음과 같은 '안중근 의사'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
"하얼빈 역은 일찍부터 조선 초대 통감에서 물러난 이토 히로부미를 환영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는…(하략). 안중근은 권총을 내던지고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의미하는 러시아 말)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이 짧은 내용에서 역사정의실천연대는 3가지의 오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우선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는…"은 일본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단체는 "강제로 맺은 조약을 '성공'이라 서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조선 초대 통감"이라 서술한 부분도 "초대 통감"이라고 해야 맞으며, "대한민국 만세!"란 표현도 "'대한제국 만세' 또는 '한국 만세'로 쓰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이 당시엔 조선과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 교과서는 "18년간의 유신체제가 끝나게 되었다"(146쪽), "1860년, 서양의 여러 나라는 일본과 손 잡고 청을 공격하였다"(60쪽)고 적었는데 이 또한 잘못 기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정권의 집권 기간이 18년이지 유신체제가 18년간은 아니며, 1860년에 베이징을 점령한 나라는 영·불 연합군이었다고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설명했다.
친일·독재 미화 교학사 <한국사>와 유사한 표현도 여러 곳 |
▲ 초등<역사> 교과서 실험본 94쪽. |
ⓒ 역사정의실천연대 | |
지난 해 친일·독재 미화 지적을 받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와 유사한 표현도 4가지가 지적됐다. "일제의 의병 대토벌"(93쪽), "일본은 의병을 소탕하고자"(94쪽),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96쪽) 등이 그것이다. 모두 일본 시각에서 서술됐다는 것이다.
특히 157쪽에 나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가 되었다"는 '20-50클럽' 서술은 <조선일보>가 2012년에 쓴 신조어인데 교학사 교과서에만 등장했던 표현이라고 역사정의실천연대는 밝혔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정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명분으로 '오류와 이념 편향성이 없는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강변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만든 초등 <역사> 교과서를 분석해 보니 이런 주장이 완전히 허구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초등 <역사> 교과서 문제가 물 위로 떠오르자 국회 도종환·김태년 의원 등 7명의 야당 의원들과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오는 11일 오후 2시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주제는 '초등 <역사> 실험본 교과서로 본 국정 제도의 문제점'이다.
교육부와 집필진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 실험본 교과서의 집필 기간은 2012년 10월부터 2014년 1월까지 모두 1년 3개월로 비용은 1억 원이 들었다.
실험본이라지만... 16개교 2000여 명, 오류 교과서로 이미 학습중교육부 교과서기획과 관계자는 "해당 교과서는 말 그대로 실험본 교과서"라며 "내년에 1년 동안 더 수정을 해야 하는데 완성되지 않은 교과서의 오류를 문제 삼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교과서 집필팀장을 맡은 한춘희 부산교대 교수도 "초등 수준에 맞는 용어를 선택한 것을 놓고 오류로 지목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집필 과정에서 교육부가 사실적인 오류 수정 말고는 간여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미 전국 16개 초등학교의 5학년 학생 2천여 명이 이 교과서로 수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들은 대부분 교육부가 건네 준 실험본 교과서를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까지 치렀다. 기존 교과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운영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학교로 지정된 한 초등학교의 교감은 "350여 개의 오류가 있는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시험까지 보게 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문제가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