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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구부러진 상처에게 듣다
삼성시장 골목 끝 지하도
너는 웅크리고 누워 있었지
장도리로 빼낸 못처럼
구부러진 등에
녹이 슬어도 가시지 않는
통증을 소주와 섞어 마시며
중얼거리던 누더기 사내
네가 박혀 있던 벽은
꽃무늬가 퍽 아름다웠다고 했지
뽑히면서 흠집을 냈지만
시들지 않던 꽃
거기 향기를 심어주는 게
너의 평생 꿈이었다고
깨진 시멘트벽처럼 웃을 때
머리카락 사이로 선명하게
찍혀 있던 망치 자국
지하도는 네가 뽑힌 구멍처럼
시큼한 녹 냄새가 났지
오봉옥, 아비
연탄장수 울 아비
국화빵 한 무더기 가슴에 품고
행여 식을까봐
월산동 까치고개 숨차게 넘었나니
어린 자식 생각나 걷고 뛰고 넘었나니
오늘은 내가 삼십 년 전 울 아비 되어
햄버거 하나 달랑 들고도
마음부터 급하구나
허이 그 녀석 잠이 안 들었는지
김수복, 중천(中天)
네가, 네가 새가 되어
내 가슴에까지 와서
죽을 줄을 몰랐다
그러나
너를 묻어줄
무덤이 없다
나혜경, 본색 생각
동백꽃물 곱던 손수건이 볕에 바래니
그제야 수건답다
빛바랜 세월의 얼굴이
오히려 사람 냄새 짙다
닳고 닳아야 선명해지는 본디 빛깔
얼룩덜룩한 나는
한참을 더 바래야 할 파랑과 너울 사이
손월언, 별
한밤에 깨어
하늘 아래 서니
지나온 날들도, 살아갈 날들도
모두 다 지워지고
나도 머나먼 별들처럼 아득하다
별은 무엇이 두려워 사철 떨며
밤하늘에 매달려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