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81년도에 독일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에요. 제목대로 딸을 살해한 범인을 엄마가 직접 총으로 쏴서 죽인 내용입니다.
이 비운의 엄마는 마리안느 바흐마이어라는 독일인입니다. 보통은 범인을 죽인 아이의 어머니로 촛점이 되어있지만, 찾아서 읽어보니 이 분의 삶이 참 평탄하지만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고, 18세때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둘째까지 낳았으나, 양육할 형편이 되지 않아 아이 둘을 다 입양을 시킵니다. 그리고 23살의 나이에 딸인 안나를 낳게 되는데, 미혼모로 혼자 딸을 키우게 됩니다.
1980년 5월 딸이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집에 놀러간다고 나갔다가 당시 35세의 클라우스 그라봅스키라는 범인에게 납치됩니다. 그라봅스키는 이미 미성년자 성폭행 전과가 있었고, 1976년에 이미 화학적거세를 받은 전과자였습니다. 그라봅스키는 몇 시간동안 안나를 가두어놓은뒤 나중에는 스타킹으로 질식사시킵니다. 그리고는 시신을 박스에 넣어 수로입구의 웅덩이에 유기합니다. 결국은 체포되었는데, 그라봅스키는 안나에게 성폭행을 가하지 않았으며, 안나가 엄마에게 납치된 사실을 말해서 범인에게 돈을 받아낼 것이라는 말을 했기에 죽였다고 항변합니다.
1981년 3월 6일, 재판 3일째 되던 날 안나의 엄마인 마리안느 바흐마이어는 베레타 권총을 법정에 몰래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8발을 그라봅스키의 등에 쏘았는데, 그 중 7발을 맞고 그라봅스키는 즉사합니다. 원래는 현장에서 우발적으로 피고인을 살해했다고 하였는데, 마리안느는 사망 1년전인 1995년 언론의 인터뷰에서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딸에 대한 거짓증언을 하지 못하게 하기 하기 위해 오랜 심사숙고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사격연습까지하며 준비했다고 진술한 주변인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바흐마이어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는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판사들이 무죄판결하라는 협박성 편지도 받을 정도로 바흐마이어를 향한 사회적 동정이 이어졌었다고 합니다. 추후 살인죄는 기각되고, 배심원평결을 거쳐 법정내 우발적살인과 불법무기소지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습니다. 그러나 자살위험이 있다는 소견으로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하게 됩니다. 출소 후 독일어교사와 결혼하여 나이지리아로 이주하고, 5년 결혼생활을 하고 이혼합니다. 이혼후 1990년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로 가서 호스피스병동에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독일로 돌아와서 1996년 9월 17일 사망합니다. 뤼벡의 공동묘지에 딸 안나와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니 조금은 쓸쓸해 보여요.
다른 신문기사들을 찾아봤는데, 주변 지인들의 말로는 범인인 그라봅스키를 살해하기위해 사격연습을 하며 미리 준비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건 이후 독일의 저명 뉴스잡지인 슈테른에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판권을 25만 마르크에 팔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젊었을때 미인이라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는데, 반면 남자복은 없었는지 매번 잘 안풀렸고, 살해당한 딸 안나도 친구 부부에게 입양을 보내려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이 워낙 여행하는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사건이후 나이지리아나 시칠리아같은 먼 외지까지 가서 살았고, 죽고나면 시칠리아에 묻어달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니 어쩌면 인생의 큰 짐들을 놓아버리고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걸 떠나서 1970년대 당시 독일에 이미 성범죄자에 대해 화학적 거세가 집행되고 있었다는게 놀라웠고, 징역 6년이란 판결도 놀랍습니다. 얼마전 베오베에 오른 수원지검 황산테러사건과는 정반대의 케이스일지는 모르나, 문득 떠올라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