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철의 버풀니즘 제 13화 : 지쳐 보이는 스털링, 빼지 못하는 리버풀의 안타까운 이유]
최근의 스털링은 과연 지난 시즌만큼의, 혹은 올 시즌 초반만큼의 임팩트를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내달리며 장기인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수들을 차례차례 벗겨내는 모습이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찬스 메이킹 능력 역시 이전보다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플레이 패턴도 매우 단조로워졌다. 공을 잡으면 스피드를 살려 측면 방향으로 드리블을 시도하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상대 수비수에게 패턴을 읽혀 따라잡히고 공을 뺏기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적어도 이런 장면이 최근에는 경기마다 3번 이상은 나왔다.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팀의 두 번째 골, 세 번째 골에 모두 관여했지만, 90분 동안 보여준 전체적인 경기력은 확실히 이전보다 크게 저하됐다.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를 한 가지만 특정해서 꼽을 수는 없다.
가장 눈에 띄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뛰던 포지션과 지금의 포지션이 다르다는 것이다. 본래 4-3-1-2 포메이션의 1의 역할(다이아몬드형으로 배치된 미드필더의 꼭짓점)을 맡으며 경기장을 넓게 누비고 다니던 스털링은, 최근에 측면으로 포지션이 변경되어 활동 범위도 측면에만 국한되었다. 360도로 자유롭게 방향을 잡으며 플레이를 펼치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180도의 범위 안에서만 플레이해야 하는 것이다. 중앙에서의 역할과 측면에서의 역할은 확실히 다르다. 그만큼 플레이의 자유도가 제한된 상태다.
거기에 스털링에게 따라붙는 수비수를 교란시켜 줄 동료 공격수도 바뀌었다. 이전까지 스털링과 호흡을 맞춰왔던 루이스 수아레즈나 다니엘 스터리지는 그라운드를 넓게 누비며 상대 선수들을 몰고 수비 대형을 엉망으로 무너뜨리는 유형의 선수였다. 무너진 수비대형을 통해 공간이 열리면 스털링이 빠른 스피드로 공간을 침투해 허를 찌르는 장면이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초반까지는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 스털링과 호흡을 맞추는 동료 공격수는 리키 램버트나 마리오 발로텔리다. 두 선수 중, 특히 최근 연이어 경기에 나서고 있는 램버트는 최전방에 고정되어 전방에서만 승부를 보는 유형의 선수인 만큼, 이전보다 스털링에게 상대 수비수들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거기에 최근 리버풀은 센터 서클에서 상대 진영까지 볼을 운반하는 빌드 업을 스털링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공격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날수록 상대 수비수들도 이를 간파하고 더욱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스털링에 대한 상대 수비수들의 견제는 최근 들어 더더욱 늘어났다.
(△ 잉글랜드 대표팀 경기까지 소화해야하는 라힘 스털링. 시즌 개막 이후, 일주일 넘게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스털링이 예전 임팩트를 살리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크게 꼽을 수 있는 것은 체력적인 문제다. 맨눈으로 봐도 최근 스털링은 지쳐 보인다. 전술적으로 포지션이 변하고 자신에게 수비수가 집중 견제를 하는 상황이라 해도 선수 개인의 폼 자체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체력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스털링처럼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대부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는 선수라면 더더욱 체력적인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스털링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은 리버풀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도 인정했다. “스털링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소속팀에서 적절하게 휴식을 주겠다.”는 것이 로저스 감독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로저스 감독과 리버풀이 스털링을 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스털링을 빼면 그 자리를 대신할만한 마땅한 대체자가 없는 것이다.
(△ 보자마자 암담했다면 당신은 리버풀 경기를 본 것이다. / 왼쪽 상단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쿠티뉴, 랄라나, 수소, 모레노. 그리고 중앙의 선수는 잊자.)
스털링의 자리에서 당장 대신 뛸 수 있는 선수는 쿠티뉴와 랄라나, 모레노, 수소, 마르코비치다. 하지만 이 선수들의 최근 폼을 보면 왜 측면 공격수로 스털링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지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쿠티뉴는 본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도 최근 리버풀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다. 쿠티뉴는 지공보다 속공에 특화되어있는 선수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의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들어 쿠티뉴가 보여준 인상적인 모습은 확실히 부족하다. 무언가를 자신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욕이 앞선 것인지 유난히도 볼을 끄는 장면이 많고, 패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미 없는 중거리 슛으로 허무하게 기회를 날린 적도 많았다.
랄라나도 마찬가지다. 사우스햄튼 시절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하다. 창의적인 움직임과 인상적인 턴 동작으로 좁은 공간에서도 찬스 메이킹에 능한 랄라나는 리버풀에 입단한 이후 준수한 활약은 보였지만, 아직 팀의 에이스라 평하기엔 아쉬운 모습이다. 스털링의 지분을 완벽히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풀백인 모레노는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오버래핑이 뛰어난 선수다. 모레노를 측면 윙어로 전진 배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최근 모레노의 폼도 눈에 띄게 떨어진 상태라 쉽사리 믿음을 주기엔 우려가 앞선다. 올 시즌 초반에는 모레노의 폭발적인 오버래핑이 상대 팀에 먹혀드는 모습이었지만, 그 이후 오버래핑이 위협적이던 모습은 크게 없었다.
수소는 분명 리그 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로저스 감독에게 기용을 받지 못하고 있고, 마르코비치는... 그냥 말을 말자.
물론 이 선수들이 스털링을 대신해 출전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다. 이 선수들은 안 된다고 틀에 가둬버리는 것만큼 가혹한 것도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털링을 대신해 활약을 펼쳐줄지에 대한 가능성의 문제다. 현재 리버풀은 6승 2무 6패로 리그 8위에 머물러있다. 길었던 시즌 초반의 부진 때문에, 앞으로는 승점을 빨리, 최대한 많이 쌓을 필요가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승리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뜻인데, 이런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인 스털링을 빼는 것에 위험부담이 있으면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스털링의 역할은 팀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중앙선에서 상대 진영까지 볼을 몰고 가는 빌드 업의 임무를 수행한다. 스털링이 없으면 사실상 리버풀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격 루트 하나가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최근 스털링이 드리블을 통해 상대 수비수를 벗겨내지 못하고 결국 방향을 읽혀 상대의 태클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해도, 귀신같이 반칙은 잘 얻어내고 있다. 스털링이 얻어낸 반칙은 리버풀의 좋은 세트피스 기회로 연결된다.
거기에 스털링은 지친 상황에서도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는 중간중간 한 방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팀의 두 번째 골, 세 번째 골에 직접 관여했다. 특히 조던 헨더슨이 기록한 세 번째 골 장면에서 스털링은 감각적인 백패스로 한 개의 도움을 추가했다.
스털링과 기존 선수들 간의 조직력은 오랫동안 발을 맞춰온 만큼 잘 맞을 수밖에 없고, 새로 이적해온 선수들끼리의 조직력은 맞지 않는 상황에서 팀에 많은 이바지를 해주고 있는 에이스 스털링을 아무리 지쳐도 쉽게 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스털링이 과연 이대로 혹사당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무리 스털링이 팀의 중심이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한 선수를 계속해서 혹사하면 선수의 성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기대했던 만큼의 성장 속도가 진행되지 않고 정체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상황에서 계속 혹사를 감행할 경우 장기적으로 선수에, 그리고 팀에 이득이 되는 것은 없다.
스털링을 대체할 자원을 찾지 못한 건 로저스 감독과 리버풀의 문제다. 특히 스쿼드의 두께를 늘린다는 목적으로 새로운 이적생들을 많이 영입했지만, 아직도 새 이적생들을 팀에 녹이질 못하는 것은 심각하다. 결국, 스털링이 지금처럼 혹사당하는 것은 로저스 감독과 리버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 시즌 내내 스털링을 혹사하는 것보다는, 선수와 팀 모두를 위해서 스털링의 역할과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대체자들의 분발을 독려하거나 추가 영입이 시급해 보인다.
다가오는 바젤과의 14/15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다. 바젤전을 앞두고 리버풀은 이번 주 주말, 리그 14위에 있는 선더랜드와 리그 경기를 치러야 한다. 지금 리버풀에는 챔피언스리그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 리그 경기에서 어떻게든 1승을 더 추가하는 것 모두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두 경기 모두 중요하다. 결국, 스털링을 빼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현실은 많은 이들이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스털링은 너무 지쳐 보인다. 선수 개인의 컨디션이 염려되는 정도다. 선수를 위해서라도, 팀을 위해서라도, 다가오는 바젤전을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만큼은 벤치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스털링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중요한 경기들을 앞둔 로저스 감독은 스털링의 선발 기용과 휴식에 대해 어떠한 선택을 내릴까? (버풀니즘 글 : 임형철 / facebook.com/gudcjf758)
※ 버풀니즘은 리버풀 FC만을 위한 칼럼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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