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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자랑, 알려지지 않은 '인권변호사 문재인'의 한결같은 정의로움
게시물ID : sisa_9228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교이
추천 : 29
조회수 : 66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5/07 12:36:47
파도파도 미담만 나온다고 해서 별명이 붙은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문재인의 또 다른 별명은 바로 '파파미' 입니다. 그리고 그 별명은 알려지지 않은 '변호사 문재인'의 수많은 미담에서 출발합니다.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람들의 영역이 단지 '진보 정당' '노동자 정당'이라고만 생각하는 편협함을 벗어나, '인권변호사 문재인'이 이 땅의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한결같이 정의로운 궤적을 눈여결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노동사건분야 전국 최초 행정소송을 낸 변호사 문재인

문재인_노동조합0.jpg       문재인_노동조합.jpg
    

'변호사 문재인'은 전국 최초로 노동조합 '규약변경 보완시정명령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규약을 임의로 변경하려는 사측에 맞서 노조를 보호하기 위해 최초로 행정소송을 낸 것입니다. 

2. 고문경찰관 즉각 소환, 철저한 조사 촉구한 변호사 문재인 
 
스크린샷(1312).png      문재인_고문경찰관.jpg
   



부산에서 벌어진 유괴사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들을 변호한 문재인은, "아직도 남아있는 경찰의 고문수사 역시 하루 빨리 척결되어야할 문제지만, 이를 바로잡아야할 검찰마저도 공소유지에 급급해 진실규명에 나서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며 고문 경찰관들을 즉각 소환, 조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서는 검찰보다 먼저 변호인입회를 보장하게 되었고, 문재인의 이러한 소신행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한 공로가 되었습니다.

 
스크린샷(131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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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부산경남지역에서 '변호사 문재인'과 함께 20여년간 함께 일하며 지켜본 문재인에 대한 글입니다.

내가 만난 문재인, 노동상담소 소장 그리고 깽깽이풀 >                  
 
80년대 초 부산에서 변호사를 시작한 뒤로 2003년 참여정부에서 공직을 맡으실 때까지, 노동 분야에서 문재인 변호사님이 하신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산경남지역 노동운동의 말석에서 변호사님과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내며 속속들이 사정을 아는 필자가 여기서 밝히거니와, 문 변호사님이 80~90년대 부산경남지역의 노동운동에 헌신한 공로는 참으로 컸다. 특히 당시의 부울경 지역에서 발생한 주요한 노동관련 소송의 대부분을 도맡아 처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부산민주공원에서 정리한 권당 300P 전후 10권 분량의 부산지법, 부산고법 노동사건 판례모음집을 보면 집단적 노사관계 관련 소송이나 개별적 노사관계 사건 중 해고 관련 소송은 문 변호사님이 대부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렇게 80~90년대 부산경남지역 노동관련 소송을 혼자 도맡아 했으니 돈을 많이 벌었겠지, 라고 사람들은 오해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해고 관련 소송의 경우 당사자의 사정이 어렵다 보니 외상이 많았고 수임료도 거의 필요 경비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산업재해 관련 소송과는 달리 승소율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또한 노동쟁의 사건의 경우에는 소송당사자도 많고 검토해야 할 관련 기록도 엄청 많았으나 수임료는 염가였고 승소율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문 변호사님은 오직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과 책임으로 이 모든 소송을 맡은 것이었다.
 
문 변호사님은 소송기록이 아무리 많더라도 일일이 그것을 읽어보며 직접 검토하셨다. 그래서 항상 바쁘셨다. (중략) 문 변호사님은 가식과 과장을 싫어하셨다. (중략) 문 변호사님은 맺고 끊는 것이 아주 분명했다. 자신의 일이라고 판단되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지만 본인이 맡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냉정하게 거절했다.
경희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셨고 전두환 정권에 맞서 부산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으로 반독재투쟁 일선에서 싸웠으니 전국 조직 차원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많았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게다가 서울에 이런저런 인연도 많고 변호사란 직업 때문에 재정적 후원에 대한 요구도 많았을 것이고 실제로도 또 많이 하셨을 터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 변호사님은 민주변호사회 활동을 제외하고는 전국 차원의 활동을 자제하고 지역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하셨다. 특히 재정적 후원의 경우 지방의 열악한 재정 현실을 감안해 부산지역 후원에 집중 지원을 하겠다고 하시더니 (사)노동자를 위한 연대의 회비를 두 배로 올려주셨다. (당시 재정이 어렵던 우리로서는 난데없는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중략)
 
또한 변호사님은 원칙에 철저했고 본인 관리도 엄격했다. (중략) 변호사님그 흔한 노래방 한 번 가는 일 없이 반드시 1차에서 술자리를 끝냈다. 변호사님과 20년 가까이 노동단체 활동을 같이 하는 가운데 변호사님과 2차 술자리를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변호사님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너그러웠으며 깊이 배려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성품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속 깊은 정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분이다. 변호사님이 (사)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를 맡으면서 맨 먼저 추가한 일이 노동단체 실무자들과 함께 월 1회 등반을 정례화 하고 등반 안내역을 자임한 것이었다. 단체장이 됐으니 상근 실무자들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등반 안내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따뜻했다. 실무자들의 체력을 고려해서 가능한 한 평탄하게 산을 오를 수 있게 경로를 잡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려와서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맛집도 면밀하게 봐 두는 것이었다. 이런 등반 행사를 통해 단체 사업의 현황이나 실무자들의 의견이 두루 소통되었고 상호 친밀감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문 변호사님은 야생화 보기를 좋아 하셨는데 야생화 산행의 안내를 맡으시면 하루 전날 반드시 사전 답사를 하셨다. 이 사전 답사를 통해 코스는 적정한지, 어떤 꽃이 피었고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그리고 내려와서 쉴 만 한 곳은 마땅한지를 꼼꼼히 살피셨다. 다음날 온 가족과 함께 한 야생화 탐방자들이 대만족인 것은 물론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깽깽이풀이나 처녀치마는 남부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꽃이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부산의 금정산에서 우연히 깽깽이풀을 보셨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그 꽃을 나한테도 보여주기 위해 바로 다음날 또 다시 산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배려 깊은 성품은 노동자들과의 상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문 변호사님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아주 푸근하게 상담하셨다. 무척 바쁜 일정에도 중간에 말을 가로 막지 않고 끝까지 다 들어 주셨다. 억울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경우 그렇게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나큰 위로를 받곤 했다. 또 변호사님은 산업재해 소송의 경우, 재해 현장에 대한 현장검증을 재판부에 자주 요청하셨다. 판사들이 그 위험한 작업 현장을 방문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으신 것이었다. 험한 지역에 대한 현장검증을 감안하여 4륜구동의 SUV 차량을 선택했다고도 하셨다. 문 변호사님의 이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와 애정은 곁에서 일하는 나를 언제나 부끄럽게 만들고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문 변호사님이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응해 본인에게 주어진 운명적 역할을 다하시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크게 환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온 국민의 축복이라고 확신한다. 

설민석 (부산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출처 : 민주종편 TV http://www.minjutv.kr/new/index.html?include=&mode=view&gid=px-com-01&id=234&&&&gid=px-com-01

가장 가까이서 함께 그 사람을 겪은 사람에게서 이만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노무현 대통령님은 '문재인을 친구로 둔 자신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까지 말씀 하셨었지요.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어린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이를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 위에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눈물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오늘도 돕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오늘도 수고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함께 사랑을 나누고 함께 노력하는 우리들의 지도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저 말씀 속에,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다 담겨 있습니다. 
노무현이 자랑스러워한 친구 문재인. 우리가 문재인과 함께 하는 건 노무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문재인과 함께 나아갈 세상이 곧 열립니다. 그 길 위에 우리가 뿌릴 축복은, 문재인을 향한 압도적인 지지입니다. 언제나 사람이 먼저였던 문재인에게, 세상을 바꿀 힘을 주십시오. 

 
출처 http://blog.naver.com/sunfull-movement/22099998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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