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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와 함께.. 겸손히 조언아닌 조언을 구해봅니다.
게시물ID : gomin_12766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시아이디b1
추천 : 0
조회수 : 35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2/03 01:59:35
제 느낌을 위해 ~다 체로 가겠습니다.

먼저 지금은 대학교 2학년 이후 2년간 휴학중이며 여러모로 핑계를 대고 방황하는 중입니다.

그럼. 시작!

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 대한 꿈을 정했다. 연세대.. 꿈이 높아야한다는 자기계발 서적의 말만 미련하게 믿었다.

하지만 공부는 그저그랬다. 기본적으로 평준화가 되지 않은 고등학교에 내신을 따기 위해 왔고, 여기서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만 내신 3등급에 나름 특반이였기에 서울권에 도전해보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다 떨어지고 지방의 사립대에 왔다.

고등학교 3학년..부끄럽지만 그 때 처음 진로를 생각해보았다. 정치외교.. 솔직히 취업보다는 학과 자체가 마음에 들었고 다른 생각은 아예 없이 정치외교학과만 지원을 했다. 

대학 O.T.. 그곳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이 없다. 아니 사실 그때를 잊고싶다.. 내가 이런학교에서 뭘하고 있는거지... 자괴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닥치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학과에서 차석, 수석을 한번씩 했고 누구도 공부로 나를 따라올 수 없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아싸처럼 공부했기 때문에..

늦게 시작한 공부가 좋았다. 힘들지만 재밌었다. 시험의 성적을 위해 내 전부를 걸었고 사실 이러한 도전에도 낮은 점수가 나오면 나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공동과제는 혼자했다. 무임승차자들을 끌고 가려 했다. 모든 짐을 다지려고 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과제 또한 내게는 공부라는 양식이기에 남들에게 주고싶지 않았다. 다행히 공부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이었고 나는 모든 과제를 혼자 했다. 결과는 실패적이었지만 나는 개인과제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기에 같은 조 조원들보다 월등히 앞선 성적을 받았다.

앞서 말했던 차석과 수석은 내 피와 살을 담보로 얻은 것이었으며 장학금을 한번도 놓친적이 없었다 2학년까지..

지금은 2학년을 마친지도 2년째다.. 사실 2학년때부터 이 방황이 시작되었다. 혼자라는 느낌.. 공부로는 채울 수 없는 내 마음속 공허함.. 아무래도 나는 나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휴학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열심히 했으니까 좀 쉬고싶어요^^.."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죽을만큼 괴로운 외로움과 앞날에 대한 막막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것... 그래 난 어릴때부터 태권도를 좋아했다... 선수부를 한적도 있었고 땀을 흘린 후에 오는 만족감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꾸준히 태권도를 다녔다. 뭐랄까.. 자기만족이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괴감에 대한..

그리고 휴학했다는 것을 관장님께 말씀드리고 사범이 되고싶다고 했고 사범이 되었다.

이것이 내 첫 사회생활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이 사범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고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돈도번다. 이것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잠시동안은 성공에 취해있었다. 내 자신이 멋있었다. 자랑스러웠다. 장학금보다도 더... 사실 장학금은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한다는 마음에 앉아서 돈번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게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해해주지 않았다.. 나를 오히려 나무랬다. 미래가 없다고.. 바보같이 힘들어했다.. 매우매우 괴로워했다...

또 첫 사회생활은 실패적이었다.  그때는 유연함을 몰랐고.. 그렇게 나는 꺽였다.

태권도를 그만한 것은 아니었다. 관장님이 주신 사범이라는 타이틀만 빼았겼다. 나는 바보같이 그 때도 내방법만 고집했었다.

이래저래 나를 부려먹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후회하고 있다. 그때 좀더 좋게 헤어질 수도 있었는데..라며...

그 일이 있은후 나는 히키코모리처럼 방안에 쳐박혀있었다. 나는 오히려 자유로웠다.. 아무런 속박이 없다는게.. 시험이 끝난 대학생의 하루같았다.. 매일매일이.. 

부모님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일터에 나가게 되었다.

나는 억지로 나갔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얼마안되는 돈을 벌었다.....

지금 생각해도 바보같은건 이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물론 힘든 아르바이트 (이마트 정직원)였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마트 직원들에겐 그들의 인생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바보같았다..

그렇게 고통만 받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고 일을 관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정신병을 핑계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병 아닌 병을 상담으로 치유하려고 애썻다.....

몇달을 요양하듯이 외할머니댁에서 지내고... 지금.. 현재는 아빠 회사를 다니고 일아닌 일을 하고 있다.. 

정신을 좀 차린건지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고 아빠 회사의 직원들과도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화이팅을 하고 있다.
사장 아들이기 때문에...하지만   정작 내 앞길은 캄캄하기만하다..

벽은 높아져만 가고 꿈은 크게 가지고 있고.. 하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방황하는 청춘이다....... 나는 이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깨달은 것은 좀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것..?

지금 우리들의 고민은 우리들 윗 세대들과는 너무너무 틀리다. 예전엔 가능성이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바늘구멍같다.. 필요로 하는게 너무 많지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놓쳐버렸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살아남을 자만 살아남는.. 희박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어디를 가야하는 것인가 ㅠㅠ 내 고민은 과연 어디서 끝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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