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의 사회경제발전단계로 보면 원시공산사회-고대노예제사회-중세봉건제사회-근대자본주의사회-현대공산주의사회로 이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서양의 경우이고 우리의 경우 서양식의 노예나 농노의 개념이 없음. 노비을 노예로 보면 조선시대까지 고대이고 노비 역시 솔거노비와 외거노비로 인해 시대구분이 모호한면이있습니다.
우선 고대의 시대구분은 삼국~통일신라말까지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원삼국~통일신라까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북한의 연구는 역사~삼국이전까지로 보며 그 이유로 하호(하호는 그리스로마의 노예와 같은 고대 아시아적의 노예로 보는 입장과 중세 농노와 같은 존재로 보는 입장등이 있음)가 나타난다고 함. 일본은 삼국시대~무신난까지로 보면서 토지공유문제로 시기를 늦췄음.
중세는 북한의 경우 4~6세기의 삼국시대를 중세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 시기에 우경의 본격화와 철제 농기구의 보급으로 농업경영의 자립화가 진전 되었으며 토지소유를 확대시켜 나갈수 있었던 부호농민층과 여기에서 소외된 빈농층으로의 농민내부에서의 계층분화가 일어났다고 봅니다. 또 이시기에 생산력의 증가로 소국이나 읍락단위의 부의 연합을 기반으로 했던 삼국이 중앙집권화 하였고 때를 같이하여 통치이념으로서 불교를 공인한데서 이때를 중세사회의 성립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사회경제사적 측면에서 백남운은 중세봉건제사회는 생산과정에서 개인적인 성격을 갖는 소경영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대토지소유제를 경제적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사회로 보며 그는 삼국통일을 계기로 토지 국유제 파탄, 노예공급중단 등이 일어나 고대노예제 사회에서 중세농노제 사회로 전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토지 소유론을 기준으로 한 많은 이견들이 있는데 사적토지소유의 성립시기를 고려중기이후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인정의 다과에 따른 노동자체의 수탈(인두에 따른 세)과 토지를 매개로 한 수탈(토지소유에 따른 세)의 단계를 각각 고대와 중세로 구분함.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지배세력의 존재형태를 통해 한국사의 흐름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나 왕조별 시대구분법과 3시대 구분법을 편의적으로 조합하였다는 비판에 지배세력 중심의 기준을 탈피하여 지방행정체계의 변화라는 기준을 세워 중세사회의 특질을 파악. 신라가 삼국간의 격렬한 상쟁을 거쳐 통일전쟁을 마무리한 시기인 7~8세기를 중세사의 성립기로 보는 시각인데 이는 4~6세기에 농업 생산력의 향상으로 계급분화가 촉진되고 인신적 지배방식에서 토지를 매개로 한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긴 했지만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발전하면서 지배층에 대한 경제적 급부가 식읍분급에서 수조권 지급으로 바뀌어 이것이 확립된 시기는 7세기 이후라고 보는 것임. 다른 주장으로는 9~10세기(나말여초)시기를 중세의 성립기로 보는 견해. 이들은 고대사회를 친족집단의 친족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족장세력의 정치지배시대로 규정하고 이들의 해체에는 신라말의 호족세력의 대두, 선종교단의 등장 유교적 소양으로 무장한 육두품세력의 대두에 있다고 보면 골품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세워지는 나말여초 시기를 중세의 성립기.
사상사적 측면에서는 중세의 시작을 승정의 제도화로 인한 종파성립을 내세워 고려로 보는 견해, 불교대중화 문제를 거론하여 여러 종파가 성립된 삼국통일 전후시기로 보는 견해, 불교가 통일전쟁 와중에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하여 통일신라로 보는 견해등이 존재.
이처럼 이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시대구분은 없습니다. 원시-고대-중세-근대-현대 구분 자체가 서양사적 측면에서 완성된 이론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 학설이 쏟아지지만 이거다할만한 것이 없는것이죠. 그나마 현재 정론이라고 한다면 고대(고려이전)-중세(고려)-근세(조선)-근대(개항)-현대(광복) 이 순 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