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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참여를 막는 전략적 봉쇄소송
게시물ID : sisa_79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물뚝심송
추천 : 11
조회수 : 5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3/04 12:13:46

소송이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최후의 보루이며 사회의 도덕성을 지키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비용은 사회적으로도 막대하고,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일단 소송 비용이 많이 들고,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척 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민주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민간의 공공참여입니다. 자발적인 의지로 결성된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기업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것이며, 그렇기에 정부도 다양한 NGO에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금을 주고 활동을 장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론과 타협의 문화가 성숙되지 못하거나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경우, 이런 활동들은 언제나 분쟁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무단으로 폐수를 방류하고 있는 것을 환경단체가 발견하면 이를 기업에 알려 수정요구를 하게 되지만, 적절한 대응조치가 없을 경우 고소고발을 하게 되고, 이 경우 기업은 상당한 손실을 감수할 수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업측에서는 옳고 그름 이전에 어느 쪽이 이익인가를 따져보게 됩니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특히나 기업 대표자 출신의 대통령을 두고, 전 사회가 마치 기업처럼 움직이는 그런 정부라면 더욱 그렇죠. 

결국, 민간의 공공참여를 방해하기 위한 활동이 있게 마련이고, 그 방법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공 참여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 슬랩)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소송비용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는 공공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대상을 괴롭히고 위축시키기 위해" 진행하는 소송을 의미합니다. 

이 슬랩이 횡행하면, 공공참여는 부진해지고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런 슬랩을 제한하기 위해 Anti-SLAPP 법안을 만들기도 합니다. 즉, 슬랩에 해당되는 소송이라고 판단되면, 일반 민사소송에 비해 원고의 의무를 더 무겁게 만들고 피고를 위해 소송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등, 여러가지 제한점을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공공참여를 하는 주체인 피고의 책임을 경감시켜 주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물론 국가는 사실상 이 문제에서 비켜서 있는 것이 맞습니다. 민간단체가 국가의 잘못을 지적할 떄, 국가가 나서서 전략적 봉쇄소송을 걸어 버리면, 국가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의 안티슬랩 법안은 주로 민간 기업과 개인간의 문제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종류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293

그러니까, 기자의 보도 내용에 의해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의원이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했고, 검찰에 의해 무혐의 판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한 경우입니다. 해당 기자는 이 사건을 슬랩으로 간주하고, 검찰에 역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즉, 국회의원이 자신을 상대로 전략적 봉쇄소송을 했으며 이에 자신이 받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한 것이죠. 

물론 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안그래도 언론의 자유 문제로 인해 언론이나 언론에 소속된 기자들은 일반 민간인들에 비해 좀더 폭넓은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명예훼손 문제에 있어서도 언론은 훨씬 더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어느정도 슬랩이라고 인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보통 슬랩이라고 판단될만한 소송의 상당수가 국가에 의해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비판적인 시민세력들에게 법적인 처벌이나 행정조치를 가할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편법으로 슬랩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원순변호사에 대한 소송이 그렇습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정부에 불리한 발언을 한 민간인을 거액의 민사소송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경우입니다. 

결국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국내에도 안티슬랩 법안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찾아 봤더니, 바로 나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이미 안티 슬랩 법안을 준비한 적이 있더군요. 당시에 발단이 된 사건은, 김문수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많은 언론사가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적었던 사건입니다. 나중에는 허위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 사건을 이유로 대통령이 개인의 자격으로 김문수 외 4개 언론사를 상대로 30억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개인 자격으로 소송을 걸었다 해도 현직 대통령이 이런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그리 옳은 행동은 아닌 듯 싶습니다. 물론 이 소송은 길게 가지 않고 중단되었습니다만, 이 사건을 놓고 한나라당에서는 바로 이 안티슬랩 법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안은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에 와서는 정부에 의한 슬랩이 보다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도 엄청난 양의 슬랩 사건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이 흘러간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참여는 씨가 말라 버리겠죠. 시민단체 사람들, 월 백만원 수입도 제대로 못 올리는 사람들이 헌신하는 곳이 태반인데, 소송 한방에 몇억씩 빚지고 나면 패가망신할 겁니다. 한두번만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누가 감히 무서워서 나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또 망가지는 겁니다. 

지금 이 글은 노무현이 잘했고 이명박이 나쁜 놈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한 사회를 움직여 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민간의 공공참여를 어떻게 해서든 활성화 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돕지는 못할망정 슬랩을 걸어 방해하는 것은 사회 정의에 부합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훼손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현재의 정부가 이런 공익을 위한 원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유모차 끌고나온 엄마들을 고발하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고발하고, 노조를 고발하고, 시국선언한 교사들을 고발하고, 전교조를 고발하고....

완전히 사냥개가 되어버린 검찰을 동원해서 조금이라도 정부에 비판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검찰 기소사건의 무죄판결율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소송 과정의 부담을 지우려고 하는 목적이니까 그렇게 되는 거겠죠. 

정말로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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