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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회고록] 80년 5·17 쿠데타 ①
게시물ID : history_92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시보관함
추천 : 0
조회수 : 4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7 07:52:04

"군이 이대에 진입했어요" 성 기자가 전화로 쏟아냈다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는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며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정 총장을 서울 한남동 총장공관에서 강제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은 12·12 사태 다음 날인 12월 13일 군인을 실은 트럭이 도로를 지나고 있는 모습. 그 위 육교에 유엔 세계인권선언 31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중앙포토] 



1980년 4월 초순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오전 8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주재하던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석들에게 물어볼 게 있다며 말을 꺼냈다.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에 대한 의견을 구하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는 서로 견제해야 하는 정보 권력기관이다. 양쪽의 수장을 한 사람이 겸직하는 인사는 법적 문제를 떠나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의견은 분명했다.


 “법적으로 불가(不可)합니다.”


 다른 수석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회의 전체 분위기는 겸직 반대로 모아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4월 14일 전두환 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하는 인사가 신문에 났다.


 서울의 봄은 길지 않았다. 5월이 되자 ‘안개정국’ 논란이 일었다. 학생시위가 번졌다. “비상계엄을 해제하라” “정치 일정을 단축하라” “아무개는 물러나라”. 주장과 구호가 난무했다. 난 시국에 관한 건의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언론인 등 외부 인사의 의견을 주로 들었다. 각계 의견을 정리하는 일은 안치순 정무담당 비서관이 맡았다. 시국 건의서의 큰 줄거리는 이랬다.


 ‘과도기간을 길게 잡지 말고, 정치 일정을 단축하고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계엄령의 조건부 해제 기한을 발표하자. 전면 개각을 해야 한다.’


 건의서를 쓰면서 최광수 비서실장에게 구두로 두 차례 정도 내용에 대해 중간 보고를 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5월 10일부터 17일까지 8일간 일정으로 석유 외교차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순방을 떠나게 됐다. 순방 기간 중 학생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최 대통령은 예정한 일정보다 하루 빠른 5월 16일 밤늦게 귀국했다. 공항으로 대통령을 마중 나가는 최광수 실장에게 시국 보고서를 전달했다. 최 대통령이 도중에 읽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최 실장이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날 밤 11시 청와대 본관에서 최 대통령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신현확 국무총리, 관계부처 장관들, 최광수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인 나, 그리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참석했다. 신 총리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내 정세를 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회의는 30~40분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5월 17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소요는 없었다. 극에 달했던 학생시위는 소강 상태였다. 시위를 이끌던 각 대학의 학생회장들은 이화여대에 집결해 있었다. 대통령의 결단을 듣기 위해 모두가 잠시 침묵하는 느낌이었다. 오전 8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최 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내가 건의한 방향과 비슷한 내용을 최 실장이 얘기했다. 회의는 짧았다.


 청와대 신관의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전날까지 며칠 밤을 새우며 일한 정무수석실 비서·행정관들을 오후까지 붙잡아둘 순 없었다. 모두에게 퇴근해 모처럼 주말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난 청와대 신관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올려 보낸 시국 보고서에 대한 최 대통령의 평가가 궁금했다. 그런데 오후 3시가 다 되도록 청와대 본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시차 적응 때문이신가.’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매주 주말이면 청량리에 있는 아버지 댁을 찾았다. 일이 바빠서 몇 주 걸렀다. 잠깐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긴 시각, 차로 청와대를 나와 청량리로 향했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 막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성병욱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리였다. 그는 긴박한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고 수석. 지금 군이 이화여대를 덮쳤습니다. 군이 진입해서 전국의 대학생 대표들을 연행해 가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알고 있습니까. 방침이 바뀌었습니까.”



[이야기 속 사건] 12·12와 5·17

1979년 10·26 사태에 따른 정국 혼란을 틈타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80년 5월 17일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5·17 쿠데타다. 이에 반발하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363/11499363.html?ctg=1000&cloc=joongang%7Chome%7Ccar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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