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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아시안게임 유감
게시물ID : sports_920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영심검
추천 : 17
조회수 : 103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09 15:01: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53&aid=0000020234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먼저 드는 생각이 ‘이런 걸 왜 하나’다.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고 생각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우선 세계가 하나 돼 돌아가는 글로벌 시대에 아시아인끼리 겨루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어떤 종목은 세계 수준과 너무 차이 나서 그렇고, 어떤 종목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어서 그렇다. 세계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메달이 무색하고, 프로와 중학생처럼 현격한 실력 차이 속에서 벌어지는 승부가 겸연쩍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라 치면 그것에 맞는 컨셉트가 있어야 할 텐데 철학은 보이지 않고 승부만 있었다. 그러니 대회 기간 내내 무색함과 겸연쩍음만 이어지고 말았다.

철학 부재는 개막식부터 나타났다. 쟁쟁한 스포츠 스타들로 이어온 성화가 마지막 연예인 손으로 점화될 때는 대회를 위해 땀 흘려온 수많은 운동선수를 한순간에 들러리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아시아에서 인기 높은 한류 스타를 오히려 천박한 상업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만든 나쁜 선택이기도 했다. 성화 점화의 영광을 직전까지 고사했었다는 이영애보다 짧은 조직위의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개막식 피날레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과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 싸이의 협연까지는 굿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열정적 연주와 춤은 선수들이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애쓰는 개회식보다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폐회식 때 더 어울릴 모습이었다.

말뿐인 화합과 배려는 필연적으로 석연찮은 판정들을 불렀다. 편파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승복하지 못한 외국 선수가 은메달을 딴 한국 선수에게 “너나 가져라” 하며 자신의 동메달을 걸어주는 사상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손연재 선수의 아시안 게임 첫 금메달도 그래서 축하만 할 상황이 못됐다. TV 중계로 경기를 본 시청자들은 한심할 정도로 수준 낮은 해설로 우롱당해야 했다. 어떤 기술을 어떻게 해서 가산점, 뭘 못해서 감점, 이런 설명 하나 없이 그저 미소천사, 빨간 공, 밝은 표정, 경쾌한 발걸음 같은 추상적 수식어로 일관한 중계와 해설은 팬들조차 눈을 돌리게 했다.

오히려 인터넷엔 경기 후 리듬체조의 각종 기술 설명과 함께 다른 선수와 손 선수의 동작을 비교한 전문가 수준의 블로그가 넘쳤다. 애석하게도 그런 블로그들은 손연재의 연기가 그렇게 압도적인 점수를 얻을 것은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게 사실이라면 화합의 잔치가 아니라 반한(反韓) 감정의 벽돌만 하나 더 쌓아 올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편파 판정으로 러시아에 금메달을 빼앗겼듯 으레 홈 텃세가 있는 거 아니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분노했다면 우리가 연 잔치에서는 더욱 공정하게 판정하는 것이 가장 큰 복수가 아닐는지.

다른 나라 선수들의 비난·조롱만 있는 게 아니다. 우승을 하고도 국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는 종목도 있다. 다름 아닌 야구다. 그야말로 최정예 프로야구 선수들이 시즌 도중 참가해 ‘얼라 팔 비틀기’를 하고 온 까닭이다. 가뜩이나 한국과 일본·대만 3개국 잔치라는 비아냥 속에 아시안게임 야구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프로선수들이 출전한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부 선수의 병역 면제용이라는 비난이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프로구단들이 기꺼이 시즌 중단을 감수하는 것도 그런 이득이 없으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하루 만에 성화가 꺼진 일이나 선수들에게 상한 도시락을 공급했던 일, 천장에서 빗물이 샌 일, 심판들까지 나서 육상 트랙의 물을 걸레로 닦아내야 했던 일 같은 운영 미숙 문제들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라 할 수 있을 터다.

모두가 아시안게임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시안게임이 왜 인천에서 열려야 하는지, 대회를 통해 아시아인들에게 인천이 어떻게 기억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지자체장의 공덕비를 세우는 차원에서 일을 도모한 까닭이다. 대회가 끝난 뒤 그 화려하고 웅장한 경기장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영할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을 것이다. 베트남이 경제난을 이유로 반납한 2018년 차기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도시다. 자카르타까지 걱정할 건 없겠지만 인천이 개최권을 반납한 하노이를 부러워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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