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가위로 자른 것과 같이 깨끗하고, 남은 건 휴지통에 툭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해왔는데 세상이 그게 아니더라.
자른 단면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비유하자면,
관계는 넓은 도화지처럼 생겼는데 거기에 진한 연필로 선을 찍찍 그어놓은 기라
난 그 앞에서 가위를 들고 허공에 헛손질 하고 있었지.
이야 다 잘랐다 했는데 어라, 아래에 연필선이 남아있네.
옆에 있던 지우개를 집어들고 선을 북북 지웠는데 잘 안되는 거야
연필선은 흐릿해져가는데 종이도 같이 뜯어지고.. 헐고.
잘못지우면 그 위에 임시로 선을 그어보는데 그건 또 너무 튀어서 눈길을 뺏기고 예전같지 않지..
웃기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우개도 터무니없이 약하고 작다.
그리고 내 도화지는 너무 많이 헐어버렸어
또 난 사람이 너무 무서워
거절하기에도 무섭고
거절당할까 무섭고
내가 지우고 새로 그린 선들을 보고 어색해할까 무섭고
내가 나와 자신 사이에 선을 그리는 자체를 싫어할 것 같아서 무섭고..
그래서 선을 그리다 말다, 너무 길면 지울까 말까, 감당이 안되면 종이를 찢을까 하는데 안찢어지니 내 가슴만 찢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