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으며 20년을 살아왔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12년의 노예생활이 끝나던 고등학교 졸업식날 문과수석, 이과수석이 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나머지 300명은 소수 몇 사람 명문대 보내려고 3년을 허비했다는 걸 실감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나도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기회를 짓밟고 있던 건 마찬가지였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박차고 일어날 용기도 없었던지라 그냥 대학에 왔다. 서울로 가봤자 뭘 할 건가? 어차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게 운명이라면 대학만이라도 좀 편하게 다니자 싶어 집 근처에 있는 전남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5·18민중항쟁의 진원지라는 대학교라면 '그래도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다.
취업 잘하려면 무조건 따르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지난 5월 전남대 본부 앞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모의토익) 거부 피켓시위를 벌였다. 대학본부 앞 큰 바위에 적힌 '진리, 창조, 봉사'라는 교훈은 어디로 간 걸까.
그러나 나를 맞아준 것은 정의가 아닌 토익시험이었다. 기존의 교양영어 대신 14학번부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아래 모의토익)'라는 모의토익 시험을 네 차례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취업을 잘 하기 위해서"란다. 미응시할 경우 졸업을 못할 것이란 친절한 협박도 덧붙였다.
일단 이름부터가 이상했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정말 별 고민없이 만들어진 제도라는 걸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글로벌의 정의도 의문이다. 이건 그냥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자"라는 발상이다. 인류문명 전반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학적 고찰이 결여된 무식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이 글로벌해야 하는가? 그런 건 외교나 통상을 담당하는 사람들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모의토익을 봐야 하는 것 자체는 사실 별 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제도를 그저 "윗사람들이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르라"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바보같은 주장에 내가, 내 인생이 강제된다는 게 화났다. 대학에 그나마 조금 기대가 있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시험 따윈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개강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나의 기대치가 높은 것이었음을. 대학본부를 견제할 만한 것은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를 이루는 가장 큰 집단이면서도 대학 평의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 하나 없었다. 그나마 교수로 이루어진 평의원회도 총장이 마음만 먹으면 무시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유신시대였다.
1학기 모의토익 시험 날짜가 다가왔지만 시험날짜를 잘못 알았던 나는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 대학본부에 전화해 보니 미응시자에 대한 대책은 앞으로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들을수 있었다. 졸속 행정이라는 생각을 곱씹으면서 재시험을 실시한다면 응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싸워야 할 사람은 결국 나였다
▲ 지난 5월 전남대 인문대 1호관 앞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모의토익)의 선택제 전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그들을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서 철학과 학생 한 분과 연락을 하게 되었다. 곧바로 철학과 과실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만나게 된 그들은…. 소수였다. 철학과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모인 게 아니었다. 시험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학내 곳곳에서 진행한다는 계획을 듣고 나에게도 피켓이 주어졌다. 그제야 나는 내가 더 이상 관조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음을 알았다. 싸워야 할 사람은 결국 나였다.
1학기 내내 공강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냈다. 반대서명을 받고 전단지도 배포했다. 반대 포스터도 여기저기에 붙이고 다녔다. 총장 퇴근시간에 맞춰서 다같이 피켓시위를 하고 재시험이 결정되자 아침 일찍 일어나 응시자들보다 더 빨리 시험장에 갔다. 그리고 피켓을 들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서명운동 천막을 지키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힘든 걸까? 내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대학본부 측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차례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다양한 논리로 모의토익 시험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 기저에는 결국 이런 생각이 깔려 있는 듯했다.
'대학본부는 학생을 통제해야 하며, 통제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결국 다 너희들 잘 되라고 이러는 것이다.'
대학본부는 항상 일방적이었다
▲ 지난달 22일 전남대 본부 앞에서 강제로 모의토익을 응시하게 하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 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의토익뿐만이 아니었다. 대학본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영향을 받을 당사자들의 의견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취업률이 낮아서 대학평가 성적이 좋지 않고 이것 때문에 예산지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관련기사 : 취업률 목맨 대학들, '수료자'들에게 황당한 전화). 그 와중에 피해를 입는 학생, 조교 등 학내구성원들의 의견은 무시된다.
동아리방이 있는 학생회관과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스튜던트 라운지 등도 일방적으로 통제했다. "밤늦게 혹은 주말에 개방하면 도둑이 든다",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의견,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개방시간을 축소해 버린다.
전남대 어린이집을 증축해야 하는데, 규정이 까다롭고 공사기간 동안 사용할 대체공간을 지을 예산이 없으니 어린이들에게 공사 기간 동안 무작정 나가 있으라고도 했다(관련기사 : "어린이집 증축 전남대... 아이들 쫓겨나게 생겼다"). 예산이 부족하면 어떻게, 얼마나 부족한지 공개하고 당사자들과 토의를 거친 후에 어떤 결정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나마 피해를 받는 당사자들이 뒤늦게 반발하고 나서면 대학본부는 마치 선심을 썼다는 듯 사소한 양보를 한다. 그래도 내려진 결정은 변함없이 지속된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잘 가르치고, 연구 잘 하고, 취업 잘 시키는 대학'이라는 구호가 학생회관에 박혀있는 걸 봤다. 취업 잘 시키는 대학이라는 이 구호를 누가 정한 걸까. 나는 이것에 대해 논의한 기억이 없는데, 왜 이것들이 전남대의 교훈인 '진리, 창조, 봉사'를 대신하고 있는 걸까. 대학본부가 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는지 모의토익 반대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의 숫자도 반토막이 났다.
이번 주말, 또 피켓 듭니다
▲ 지난달 22일 전남대 본부 앞에서 강제로 모의토익을 응시하게 하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시' 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본부는 우선 자신들이 밀어붙이면 몇 년 이내에 모의토익 제도가 정착될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그런 다음 성적기준을 높이며 고삐를 조일 것이고, 학생들을 저학년 때부터 토익에 특화된 상품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과거 교양영어가 정착하는 과정도 그랬다. 선택에서 강제로,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변하는 등 학생의 힘이 약해질수록 경쟁구조는 강화돼갔다.
2학기에는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약 800명의 반대서명도 대학본부 측에 전달하고, 지역사회에도 이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총학생회와 수차례 모임을 하고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비정규직교수 노동조합에도 지지를 부탁했다. 전국적으로 다른 대학교들은 필수영어과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사도 하고 기자회견을 알리는 피켓시위, 전단배포도 했다.
그렇게 한 결과 이 제도에 분노한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대학본부와 면담을 했다. 대학본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독선을 수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2학기 모의토익 시험은 강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지난주 토요일(15일) 피켓시위를 하기 위해 시험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노벨 흉상과 함께 피켓시위를 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제 11월이다. 새학기가 시작된 봄부터 이 문제로 고민했다. 여름에도 싸웠고, 또다시 가을에도 싸웠다. 수십 번의 피켓시위를 하고 대자보를 붙이면서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무관심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결국 '이 공동체의 진로가 나와는 관계없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공동체 생활이란 별로 얻을 것도 없으면서 희생만 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리 취업이 어려워도, 먹고 살기 힘들어도 결국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학이 취업률을 높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그래봤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실업자가 되는 상황에서 취업률이 해답이 될 순 없다. 나야 어쩌다 운좋게 취업할지도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 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피켓시위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게 된다. 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 나는 저들에게 있어서 사이비 종교를 설파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다가 강의시간에 몇 번 본 사람들하고 마주치면 괜히 어색하기만 하다.
대학 입학 직전, 누군가 내게 "대학에 가면 무얼 하고 싶나"라고 물었다. 나는 "연애"라고 답했다. 연애는 자유를 상징했다. 그런데 대학은 강제로 토익시험을 보게 했다. 피켓을 들다보면 또 고민이 깊어지고 그럴수록 더욱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또 피켓을 들고 모의토익이 치러지는 강의실 앞에 선다. 모의토익을 강제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실, 여전히 이 명백한 사실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또 피켓을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