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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2014 허생전, 약스압
게시물ID : humorstory_4285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반려구함
추천 : 5
조회수 : 50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1/26 11:43:20
허생은 노량진에 살았다. 곧장 수산시장 밑에 닿으면, 할리스 앞에 오래된 컵밥 집이 서 있고, 재수학원 뒤에는 원룸촌이 널렸는데, 에어컨도 없는 방은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책 읽기나 좋아하고, 그의 인 서울 비(非)상경계 출신 여친이 보험 인바운드를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여친이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씨파(CPA, 공인회계사)를 보지 않으니, 회계의 역사는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채용 전제형 인턴이라도 못 하시나요?”

“비상경계는 지원도 못 하고 정규직 전환은 본래 안 시켜 주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스타트업은 못 하시나요?”

“스타트업은 눈먼 정부 돈 받아낼 연줄과 열정 페이 받고 개발해줄 개발자가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여친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인턴도 못 한다. 스타트업도 못 한다면, 9급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융복합 인문학 소양을 쌓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고시식당으로 나가서 밥 먹던 공시생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한국에서 제일 부자요?”

이건희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이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 씨와 그 옆 이가 아들에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1조 원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1,000,000,000,000
   (1조 - 영(0)이 열 두 개)

이 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1조를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이 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유니클로는커녕 보세 야상의 주머니는 구멍 났고, 이마트 운동화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짝퉁 뉴에라 모자에 허름한 후드티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이재용과 이부진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1조를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이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면접을 보고 싶어 오는 취준생은 으레 자기 스펙을 대단히 선전하고, 포부와 비전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정 씨 사장이 사옥 짓는다고 삼성동에 10조를 쓰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중략)

이 씨는 본래 경제부총리 최경환과 잘 아는 사이였다. 최경환이 총리가 되어서 이 씨에게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이 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최경환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최경환은 정치부 기자들도 다 물리치고 이 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이 씨는 최 총리가 문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최 총리가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할리치노 그란데 사이즈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이켜는 것이었다. 이 씨는 총리를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최 총리가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최 총리는 몸 둘 곳을 모르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초이노믹스 담당 경제부총리요.”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효자동 만력제 VIP에게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최 총리는 고개를 숙이고 VIP 성질머리와 투자는 하라고 해도 안 하는 전경련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최 총리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주부들이 일하던 옛 가락이 있으나 기업들 등쌀에 못 이겨 취집을 한 뒤 대출이자 갚을 길이 없어 3D 업종에서 정처 없이 밥이나 짓고 있고 주휴일과 수당도 제대로 못 받아 먹고살기 힘들어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하고 있으니, 너는 정부에 청하여 주 40시간 근무와 6개월 출산휴가 미보장 및 퇴직 압력을 줄 경우, 기업이 휘청거릴 만한 벌금을 때려 기혼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소득세와 자산세, 법인세를 정비하여 무상급식 따위로 윤서인이 사람들 괴롭히는 만화를 그리지 않도록 재원을 확보하고, 수도권 광역교통망을 정비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인수하여 임대주택으로 전환하여 부동산 담보대출 압박을 낮출 수 있겠느냐?”

최 총리는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창조경제와 혁신을 외치려면 먼저 독점과 진입 장벽에 의지하는 대기업부터 박살 내지 않으면 안 되고 실질임금 타령이 싫으면 먼저 창렬한 과자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해외 직구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영어와 늘어지는 배송, 관세 계산의 압박으로 소비자 물가를 비약적으로 낮출 길이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바, 진실로 국내외 유통업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고 메뉴의 한글화와 배송 기간의 안정을 간청하면, 알리바바나 아마존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되지도 않는 단통법은 집어치우고 통신사가 폰팔이 짓을 못하게 하고, 고관대작들이 모범을 보여 샤오미 폰을 쓰고 수입 과자를 먹으면 대기업도 데꿀멍해 출고가와 통신비를 인하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해도 물가를 낮추지 못할 경우, 담합액의 5%를 포상금으로 세파라치를 동원해 유통업계와 식품업계, 통신 3사의 담합을 털면, 잘 되면 산업조직론 교과서에 나올 정부가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대통령 지지율 정도는 잃지 않을 것이다.”

최경환은 힘없이 말했다.

“모두 대기업 낙수효과가 없으면 나라가 망해 그리스가 된다고 하는데, 누가 해외 직구를 권장하고 법인세를 올리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대기업이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영어도 안 쓰는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글로벌 인재를 원한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사옥 지을 한 자락에 10조를 퍼붓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아파트 명예가 어쩐다는 압구정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고, 자국 소비자들이 사는 차는 내수용 저질 강판까지 따로 끼우고 옵션 장난질을 하고 해외에선 떨이 판매를 하고 있으며, 학생들 처지를 볼모 삼아 채용 전제형 인턴으로 사기나 치다 고용 늘리라고 하면 임원들이 어디서 미생이나 읽고 장그래 같은 신입이 없다며 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대체 무엇을 가지고 글로벌 대기업이라 한단 말이냐 국격이 별것이냐?

이제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만들겠다 하면서, 무상보육은커녕 무상급식 하나를 아끼고, 대기업과 땅 부자들 앙앙불락이 두려워 직접세 인상은커녕 애먼 생필품 간접세나 건드리고 단통법이나 만들어 놓고, 국가가 나서서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모자란 정규직을 충원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있는 정규직 정리해고 조건이나 완화하고 비정규직은 2년도 모자라 3년으로 늘리고 딴에 애 안 낳는다고 싱글세 물릴 궁리나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최 총리는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출처 :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3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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