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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약19] '불완전한 사육'
게시물ID : panic_91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45
조회수 : 7098회
댓글수 : 67개
등록시간 : 2016/12/20 21: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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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사육.jpg
 
 
 
불완전한 사육
 

#하진의 이야기
 

흐흐 가만히 있어, 그래... 옳지! 속살이 진짜 보드랍구나 너어...”
아저씨가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야. 외로워서 그래 흐흐흐
찌찌가 진짜 귀엽네 크흐흐흐
 

그것은 치욕의 밤이었고, 유린의 시간이었으며 절망의 순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친구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은 마치 꿈인 듯 망막 저편으로 사라지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닫힌 문과 몸을 구속하는 쇠사슬 그리고 흉측한 모습의 벌거벗은 사내뿐이었다.
 

납치...’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내 목덜미를 움켜쥔 채 급히 차에 태웠다. 저항하며 발버둥쳐 보았지만 성인 남성인 그의 완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는 겁에 질린 나를 비웃으며 차를 몰았다. 비명을 내지르고 구원의 외침을 거듭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직 잔인한 폭력 뿐이었다.
 

아가리 싸물어! 재수 없게 질질 짜기는... 이제부턴... 흐흐흐 내가 니 주인이야!”
 

그렇게 끌려온 곳이 바로 이 곳...
그의 집, 구석진 골방이었다.
 

엄마... 아빠... 보고싶어.’
 

낯선 장소가 주는 생경함이 나를 옥죄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창문엔 촘촘한 창살이 쳐져 있고, 벽은 온통 두꺼운 헝겊이 드리워져 울음소리마저 잡아먹었다.
 

꼬르륵
 

배가 고팠다. 벌써 하루 반나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다. 그는 나를 능욕한 뒤 사라졌다. 마치 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듯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탐욕스런 그의 손길이 내 몸에 와 닿고, 마치 나를 제 것인양 유린하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나았다.
순간 그 밤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끔찍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왜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지?
난 여기 있는데... 여기... 갇혀 있는데...
 

 

 

 

 

#창주의 이야기
 

것은 매우 원초적인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외로움 그리고 배신감 같은... 보편적인 감정 말이다.
 

이 대리님! 이창주 대리님은 왜 연애 안 해요?”
?”
여자 만나는 거 한 번도 못 본거 같아서요
에이 미스 장도 저 같은 놈을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키도 작고... 얼굴도...”
왜요! 전 이 대리님 괜찮은데. 여자들이라고 다 외모만 보진 않아요. 중요한 건 마음이죠. 마음! 이 대리님은 마음이 따듯한 분 같은데, 왜 여자들이 몰라 볼까요? ...”
... 그래 보여요?”
물론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 과 비품 조금 비는데 조금 가져가도 될 까요?”
하하하핫! 물론이죠! 얼마든지! 하하하! 마음... 하하 마음...”
 

그때의 나는 웃고 있었다.
감히 내색은 하지 못 했지만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건 그녀가 다른 사람도 아닌 평소 짝사랑 해 오던 경리팀의 미스 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따듯한 분...’ 그녀가 갑자기 왜 내게 그런 말을...
많은 생각들이 오갔고, 수많은 의미가 부여됐다. 깊은 갈등과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
마치 서툰 내 감정을 응원하듯,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라는 인간을 옹호하듯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예쁜 여자가 왜 날...”
하지만...”
 

 

왜요! 전 이 대리님 괜찮은데. 여자들이라고 다 외모만 보진 않아요. 중요한 건 마음이죠. 마음! 이 대리님은 마음이 따듯한 분 같은데, 왜 여자들이 몰라 볼까요? ...”
 

 

서른 일곱살의 봄, 참으로 주책 맞은 일이었다.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덥수룩한 머리도 자르고, 요즘 친구들이 쓴다는 왁스도 처음 사 보았다. 생전 가볼 일 없던 화장품 가게에선 점원의 입바른 소리에 녹아 고가의 남성용 화장품을 세트로 샀다.
어디 그 뿐인가? 내친김에 향수도 하나 골랐다.
지출은 컸지만 미스 장을 생각하니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키 작고, 못 생기고, 주변 머리도 없을뿐더러, 말로 다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인간이다. 그런 내가 아름다운 미스 장 곁에 서려면 최소한 창피는 주지 말아야 했다.
소심하지만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었다.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진...
 

하진 언니 정말이에요?”
뭐가?”
자재부 이창주 대리님이 언니 좋아한다면서요? 이거 이거! 일 나는 거 아녜요?”
!”
?”
재수 없게 그 아저씨 얘긴 왜 하니?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나서 스트레스 받는데! 그 때문에 기미 생긴 것 좀 봐!”
... 하긴... 그쵸? 저는 언감생심 그 자타공인 노총각 대리님이 언니만 보면 발그레해진 다길래 웃겨서! 미안해요. 사실 그럴 것 같긴 했어요.”
웃길 일이 따로 있지. 나는 끔찍하다 얘! 표정도 어둡고 칙칙해보여서... 또 사무실 비품 좀 얻어 쓰려고 적당히 한 마디 해줬더니... 넘 볼 걸 넘 봐야지! 미치겠다 진짜! 꼴에 지가... 나를? 지나가던 개가 웃지. 솔직히 난... 그 사람 눈빛만 봐도 소름 끼쳐. 바퀴벌레 같은 인간! 생긴 건 꼭 쥐새끼 같아가지고...”
키키킥 쥐새끼? 딱 이다 딱... 시궁창 속 쥐새끼!”
! 지금 밖에 누구 있지 않았어?”
? 밖에요? 에이 설마... 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여직원 휴게실을 누가 엿봐요. 큰 일 나려고!”
하긴... 그렇지?”
 

긴 시간, 나는 늘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왔다.
세상의 편견, 외모지상주의, 내가 가지지 못한 부유함 거기에 천식이란 오래된 지병까지... 숱하게 많은 경멸과 야멸찬 말들이 내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다시 패배했다.
갈갈이 찢긴 채... 순박한 서른 일곱의 풋사랑을 또 다시 접어야 했다.
 

그래... 내 주제에 어떤 여자가 날...”
 

술을 마셨다. 엎드려 한 참을 울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달려와 줄 친구조차 없었다.
 

정말 정말 외롭고... 힘들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나만을 바라봐 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의 편견으로 인해 상처 받지 않고, 언제고 따스히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마침 교외의 외진 곳에 위치한 내 집엔 빈방도 하나 있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집이다. 그 곳이라면 조금 소란스러워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들이 뒤엉켜 나를 일으켰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느새 나는 웃음 짓고 있었다.
 

 

 

 

 

 

#하진의 이야기
 

이익
흐흐흐 오빠 왔다. 나이가 한참 차이 질 텐데. 오빠는 좀 그런가? 에이! 아무렴 어때! 내 맘이지
 

그가 돌아왔다. 또 다시 밀려온 두려움에 온 몸의 털들이 쭈뼛하게 서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그 원초적 본능이 나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제시켰다.
 

배가... 배가 고파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려하자 때마침 그도 달라붙은 내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가 고픈가보지? 좋아! 내 말만 잘 들어 그럼 먹을 것도 주고, 편하게 지내도록 도와줄게 알겠어?”
 

그의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움켜쥐었다. 아팠다. 하지만 뿌리칠 힘이 내게는 없었다.
 

이 줄... 잠깐 풀어 줄 테니까. 얌전히 굴어야 돼? 도망칠 생각일랑 말고!”
 

그가 먹던 것으로 보이는 차가운 밥 한덩이가 국에 말아 내어졌다. 허기에 등 떠밀려 혀를 대어 봤지만 역시나 내키진 않았다. 제대로 된 것을 먹고 싶었다. 그가 먹다 남긴 것이 아닌... 진짜 음식...
미적거리며 경계의 눈빛으로 쏘아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하진이로 하자. 장하진... 그런 눈으로 보지마. 누구 대용이긴 해도... 딱히 나쁜 이름 아니잖아? 알았지? 이제 너는 장하진이야. 경리팀 미스... !”
 

장하진, 그 이름 석 자를 말하는 그의 눈빛이 조금 매섭게 느껴졌다. 허기로 인해 잠시 잊었던 두려움이 다시금 밀려왔다.
그리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그의 억센 손이 다가와 미적거리고 있던 내 머리를 밥그릇에 처박았다.
 

안돼... 으읍
..! 쳐 먹으라고 좀! 사무실에서처럼 깨작거리지 말고! ?”
 

웃길 일이 따로 있지. 나는 끔찍하다 얘! 표정도 어둡고 칙칙해보여서... 또 사무실 비품 좀 얻어 쓰려고 적당히 한 마디 해줬더니... 넘 볼 걸 넘보야지! 미치겠다 진짜! 꼴에 지가... 나를? 지나가던 개가 웃지. 솔직히 난... 그 사람 눈빛만 봐도 소름 끼쳐. 바퀴벌레 같은 인간! 생긴 건 꼭 쥐새끼 같아가지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밥그릇에 처박힌 콧 속으로 연신 식은 된장국이 스며들었다. 차가운 밥풀이 온통 얼굴을 뒤덮었다.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는 힘이 엄청나게 셌다.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사이, 허벅지 한 켠에 낯선 손길이 느껴졌다.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미안! 미안... 오늘 내가 좀 과격했지? 날 원망하지 말고, 그 년을 원망해. 장하진. ..! ! 피곤하다. 좀 쉬고 있어. 씻는 건 조금 이따가 하자. 룰루룰~”
 

욕망을 채운 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하지만 씻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닫힌 문은 밤이 새도록 열리지 않았다.
늦은 밤, 창 밖으로 달빛이 스면들었다.
여긴 어딜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엄마...
 

 

 

 

 

 

#창주의 이야기
 

가는 무슨 장가예요. 나 같은 걸 누가 거들 떠 보기나 한데?”
창주야. 엄마는 이제 바라는 거 없다. 직장도 있겠다. 이젠 너도 많이 건강해졌겠다. 그저 참한 아가씨 하나 만나서 알콩 달콩 사는 거... 그거 뿐이다.”
아 거 참... 됐다니까 그러네...”
그러지 말고... 선이라도 봬 줄까?”
됐어요. 누가 선 같은 걸... 괜히 기분만 상하지 그리고 나... 지금...”
너 설마... 요즘 만나는 사람 있니?”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엄마는 알까?
이것이 거짓말을 할 때면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란 걸...
 

조금 앙칼지지만 착하고 어린 아가씨 하나... 요즘 만나고 있어요.”
정말?”
헤헤헤 그럼요. 가끔 와서 방 청소도 해주는걸요?”
아이구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엄마가 매일 같이 새벽기도 나가는 보람이 있구나 하이구 다행이다.”
그러니까 엄마도 더는 걱정하지 마시고 잘 계셔요.“
그래 창주야! 엄마는 이제 한 시름 놨다. 제발 싸우지 말고, 남자는 그저 여자한테 져주고 아껴주고 그래야 하는거야 알지?”
...”
! 근데 그 아가씨 이름이 뭐니?”
 

꿀꺽
 

하진이요. 장하진... 경리 팀에... 미스... !”
어쩜 하진이 이름도 예쁘네 호호홋! 경리 팀이면 사내커플이네? 이게 웬일이야. 능력도 있고, 엄마 빨리 가서 옆집 짱구 엄마한테 자랑해야겠다.”
엄마는!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자랑이우!”
왜 자랑이 아니야! 내 아들이 연애를 한다는데! 호호홋!”
 

엄마가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본 것이 대체 얼마만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창고로 쓰던 골방으로 향했다.
비록 같은 건 이름뿐이지만 이 허망함을... 엄마를 속인 죄의식을...
장하진, 그 년을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풀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흐흐흐...
 

 

 

 

 

 

#하진의 이야기
 

칠이 더 지났을까? 나는 매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울고 소리치고 또한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제발 놓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은 어김없이 심한 매질로 돌아왔다.
배를 때리고 무참히 걷어찼다.
그의 무자비한 폭력에 나는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고, 두려움은 뼈마디에 새겨졌다.
그 날도 그랬다.
배고픔과 슬픔에 젖어 울다 잠든 나는 스멀거리며 밀려오는 불쾌한 감정에 이끌려 깨어났다. 그리곤 곧 그것이 내 몸을 어루만지는 추악한 손길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켰지만 앙상하게 말라버린 내 몸은 그의 완력을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가슴을...
그리고 그 곳을...
그가 더듬는다.
웃는다.
말한다.
이제는 흡사 그것이 본디 내 이름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진아... 하진아... 너는 너무 예뻐.... 하악... 하악... 흐읍...”
 

거칠게 위 아래로 버둥이던 더러운 손길이 갑자기 다가와 내 얼굴을 잡아 끌었다. 이미 몇 번이고 당했던 일이다.
 

강제로 잡아당겨 입을 맞추는 것,
흉측한 것을 가져다 내 몸에 부비는 것.
 

버둥거려봤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다. 매질만 더 심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 즈음의 나는 악에 받혀 있었다. 때 마침 흥분한 그의 얼굴 뒤로 반 쯤 열린 문이 보였다.
 

엄마...’
 

나는 그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아악!”
 

힘으론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손톱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방심하고 있던 그의 얼굴을 훅! !
뜻밖의 고통에 그가 얼굴을 감싸 쥔 채 나뒹굴었다.
덕분에 신체의 자유를 속박하던 우악스런 손길도 멀어졌다.
나는 재빨리 몸을 추슬린 후 달려나갔다.
 

됐어! 이제 나는 자유야! 풀려났어!’
 

간절한 외침을 되 뇌이며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몸을 내달렸다.
이제 엄마와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창주의 이야기.
 

그런 식이었다. 내게 관심이 있는 척, 나를 좋아하는 척, 최소한 싫지는 않은 척.
하지만 늘... 그 끝은 배신 아니면 소위 말하는 뒤통수였다.
경리 팀 미스 장, 아니 장하진 그 년도 그랬고...
순한 척 알랑방귀를 뀌던 이 년, 골방 안 장하진도 마찬가지다.
 

아아악... 으으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쓰라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못 난 얼굴, 흉터까지 지게 생겼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사과는 커녕 열린 문틈 사이로 냅다 도망치는 그 년을 보니 역시나 여자는 믿을 게 못 된다. 여자랑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흠씻 두들겨 패줘야 한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 니가 가봐야 어딜 가겠니?
문이라면 내가 다 잠가 놓았으니 말이야.
웃음이 났다.
 

어딜 가... 넌 내꺼야. 흐흐흐
 

 

#하진의 이야기.
 

황스러웠다. 겨우 그의 손아귀에서 도망쳤다 생각했는데, 밖으로 향하는 현관은 굳게 잠겨 있었다. 급히 주변을 돌아보며 창문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촘촘한 철망이 가로막고 있어 탈출구로 쓰기엔 여의치 않았다.
두리번거리는 사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발 소리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내게 겁을 줄 생각일까? 의도적으로 발을 구르는 그 둔탁한 소리가 두렵게만 느껴졌다. 상처가 나 온통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이 망할... 암 코양이 년... 기껏 도망친 게 거기야? 흐흐흐
 

한 걸음 물러섰고, 그가 다가왔다.
또 한 걸음 물러섰고, 그가 무언가를 풀어 손에 감는다.
 

장하진 이 망할 년... 먹여주고 재워주고...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 비품도 나눠줬는데 내 뒤통수를 쳐? 너 오늘 잘 걸렸다.”
 

!’
 

시끄러운 소리가 귓청을 때렸다.
찢어지는 통증 또한 밀려왔다.
 

! 이 벨트... 크크크 채찍이 따로 없네... 하지만 어쩌겠어! 은혜를 모르는 너 같은 짐승은 좀 맞아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
짜악!’
 

처절한 고통의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그의 손에서도... 내 입에서도...
밤이 새도록...
 

 

 

 

 

#창주의 이야기.
 

간과 짐승의 차이는 뭘까? 말을 하는 것? 아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차고 있던 벨트를 도구 삼아 예의를 가르치니, 매일 밤 집에 가고 싶은지 찔찔 짜며 보채던 그 년이 처음으로 조용하다. ‘끙끙앓는 소리가 조금 들려오긴 했지만 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편이 아닌가.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순 없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때 마침 거울에 비친 내 몰골도 영 말이 아니다.
 

앙칼진 계집... 날 이 꼴로 만들고 네 년은 성할 줄 알고? 하아 씨.! 사무실에 장하진 그 년을 이렇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아쉬운 대로... 오늘은 너다. 어쩌겠어? 이게 다 날 만난 네 팔자인걸... 흐흐흐...”
 

연장통을 뒤지니 빨간 손잡이가 달린 뺀찌가 보인다.
 

흐흐흐흐흐흐
 

약간의 광기였다. 살아오면서 당해온 무시와 멸시에 대한 보상심리랄까?
이제껏 한 번도 누굴 해 하거나 다치게 해 본 적이 없는 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무도 모르고 방해할 사람도 없다. 그 년은 완전히 내 통제하 있었고, 누가 뭐래도 완벽한 내 소유물에 다름없었다.
적어도 그 년에게 있어 나는 신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신의 분노란 때로... 잔혹 할 때가 있는 법.
 

 

 

 

 

#하진의 이야기.
 

팠다. 그에게 밤새도록 맞은 후, 온 몸이 불에 데인 것처럼 쓰라리고 고통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끼니까지 걸러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것이 언제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은 듯 홀쭉하고 뼈마디가 드러나 온 몸이 앙상했다.
 

이대론 죽는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벽을 머리로 세게 들이 받았다.
아프다.
아프다.
나는 곧 깨달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 그가 들어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채 손에는 빠알간 손잡이가 달린 쇳덩이를 들고 있었다.
 

흐흐흐... 그게 끝인 줄 알았어? 벌을... 받아야지... 제대로!”
 

그가 갑자기 쇄약해진 나를 꽁꽁 묶기 시작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섬뜩한 웃음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흐흐흐흐!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창주의 이야기.
 

야기는 많이 들었다. 영화로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안기부에선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아가씨들을 그런 식으로 다뤘다지?
 

꽁꽁 묶고선, 뺀찌로... 흐흐흐
 

마치 안기부의 고문기계 이근안이 된 기분이었다.
뺀찌를 대기 전부터 겁에 질려 버둥거리는 모습 또한 가관이다.
하긴 나도 놀랐으니까. 내가 이렇게나 잔인한 인간이 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후회는 늦다.
... 아무리 빨라도 말이다.
마치 내가 장하진 그 년을 좋아하게 되고 또 끝내 후회했던 것처럼...
내 얼굴을 이따위로 그어 놓은 네 후회 역시...
늦다!
 

겁 먹지마. 곧 끝나. 참을 수 있지? 아 이런! 깜빡했네... 입에 재갈을 물렸으니 대답은 못 하겠네. 괜찮아. 그냥 손톱 하나 뽑는 거야. 정말 그것 뿐이야. 별 거 아니지? 자 그럼... 뽑는다? !”
“!!!!!!”
 

피가 튄다. 미친 듯이 발광한다. 이제야 겨우 참회의 눈빛이 보이는 듯 했다.
 

이제 시작인데, 제대로 뽑히지도 않고 단지 반쯤 뜯겨져 나와 덜렁거리는 것뿐인데,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이근안 선생님 말씀마따나, 역시나 매에는 장사가 없다.
학생 운동을 하던 젊은 여대생들도 처음엔 완강히 버텨냈지만 끝내 다 불었다지?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면서 말이야.
그래... 쉬워, 벌을 받고 그렇게 타협하는 거야.
나에 대한 순종으로...
 

겨우 하나 뽑았는데 벌써 뻗어버리면 어떡해? 김빠지게... 이제 겨우 시작이야! 그런 각오도 없이 내 얼굴을 이 따위로 만든 거야? 그래?”
왜 이제야 좀 겁이 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꺼 같아? 열 개 다 몽창 뽑아 볼까?”
 

고개를 도리질 친다. 온몸을 정신없이 뒤튼다. 허기져 힘이 없는 척 하더니 역시나 거짓말이었다. 힘이 넘치다 못해 가희 역동적이다. 이제는 궁둥짝까지 흔들며 들썩이지만, 이미 나는 판결을 내린 뒤였다.
두 개...
적어도 양쪽에 하나씩... 그 정도는 뽑아야 제대로 된 벌이 될 거라고.
나는 엄숙한 법의 집행자였다.
단호하고 엄정한 집행이야 말로 규율을 바로 세운다.
그리고 내 집에 끌려온 이상... 내가 법이다.
 

... 반대쪽도 가자!”
 

길게 돋아난 것이 바르르 떨려왔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붉게 물든 뺀찌 집게로 그것을 잡아 든다.
꾸욱누르니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 느껴졌다.
웃었다.
그리곤 어금니를 악물었다.
 

“!!!!!!!!!!”
 

 

#하진의 이야기.
 

몽을 꾸었다. 커다란 괴물이 나타나 내 손톱을 뽑아내는 끔찍한 꿈이었다.
놀라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몸 전체가 시큰거린다.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다.
말라붙은 핏물이 내 몸을 뒤덮었다.
그제야 알았다.
꿈이 아니었단 걸...
 

나는 단지 의식을 잃었을 뿐이었다. 기고 또 기어 몸을 앞으로 밀어냈다.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내 것 같지 않은 팔과 다리를 버둥여 한참을 나아가니 겨우 물그릇에 닿았다.
차가운 물을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지만 그 한기에 잇몸까지 시려왔다.
이내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못내 원망스러웠다.
 

왜 죽지 못했을까?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하는데
 

울먹이며 작게나마 불러보았다.
엄마의 이름을...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문다. 내 울음소리를 들은 그가 다시 날 찾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도망치던가...
아니면... 죽는 것이 옳았다.
 

딱 두 개 뽑으니까... 좀 나아졌네... 순종적인 태도 좋잖아! 흐흐흐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보다 순종적인 태도로 그를 대했다. 하지만 마음은 늘... 언젠가 찾아올 최후의 탈출을 그리고 있었다.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을...
 

 

 

 

 

#창주의 이야기.
 

빠 그건 뭐야? 포장도 예쁘게 했네?”
선물...”
왠 선물? 오빠 여자 친구 있구나?”
여자친구? 크크큭... 뭐 그런 셈이지... 24시간 나만 바라보고 내가 원할 때면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뭐 그런... 흐흐흐
! 오빠 나쁘다.”
뭐가?”
그런 착한 여자 친구까지 있으면서 이런 업소엘 왜 와?”
 

보너스를 받은 날이었다. 늘 그렇듯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 전엔 안마방, 속칭 오피스텔에 들르곤 했다. 그건 일 년을 하루 같이 무시당하는 나를 위한 작은 포상이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질 하겠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욕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못나고 형편없는 인간에겐 더 잔인한... 죄악!
그것은 인간은 본능이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치밀지만, 그것을 마음껏 풀 수 있는 인간은 한정 되어 있다.
 

소위... 잘 나신 양반들...’
 

그에 반해 나 같은 인간은 수음(手淫) 외엔 풀 곳조차 마땅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시내 곳곳에 안마방, 오피스텔 따위의 윤락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곳은 공평했다.
만인에게 평등했다.
그 녀들은 돈 만 내면... 잘 생기나 못 생기나 똑같은 서비스를 한다.
 

! 오빠 나쁘다.”
뭐가?”
그런 착한 여자친구까지 있으면서 이런 업소엘 왜 와?”
 

물론 돈 받고 몸 파는 창녀 따위에게 윤리교과서에서나 들을 법한 훈계를 듣는 것은 마뜩치 않았지만, 그 날은 뭐랄까?
나도 소위 잘 난 놈들 행세를 하고 싶었다.
 

너는 어떻게 맨날 집 밥만 먹고 사나? 가끔 외식도 해야지... 크크크 집에 있는 그 년은... 뭐랄까? 조금 질렸달까? 흐흐흐 이 언니 다 알면서 왜 이러실까?”
키키킥! 오빠 완~전 나쁜 남자네?”
크크크 그런가? ... 나쁜 남자? 하긴 요즘 그게 대세라며? 나쁜 남자!”
 

그랬다. 나는 나쁜 남자였다.
두둑히 찔러 준 팁 덕분인지는 몰라도 매력있다.’ ‘귀엽다창녀의 입바른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어깨가 우쭐해졌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집에 돌아온 순간... 발견한 뜻하지 않은 방문객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하진의 이야기.
 

스럭소리가 났다. 그가 돌아왔을까? 아니, 조금 달랐다. 좀 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였다. 이곳에 온 후 처음 듣는 발소리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아님을 깨닫고 몸을 웅크렸다.
 

살려 달라, 나를 놓아 달라 외칠까?’
 

깊은 고민이 밀려왔다. 하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못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낼 때마다 행해졌던 폭력과 고통의 시간, 나는 어느새 길들여져 있었다.
그 악마에게...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주야 엄마다! 창주야! 엄마 왔어! 얘가 집에 없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마치 죽은 듯 웅크리고 있기로한 선택이 옳았다.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를 도울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는 점차로 부산스러워졌다.
 

이 놈! 이 놈! 사내 혼자 산다고 청소도 안하고... 이 먼지 좀 봐! 어휴... 냉장고는 또 이게 뭐야! 죄다 상하고 날짜가 지나서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내 이럴 줄 알았지. 김치도 다 떨어졌잖아! 보내 줄테니 연락하라니까 얘도 참...”
 

두려웠다. 그래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상황을 주시했다. 상대는 내가 이 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물론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 의외성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출
 

몇 번이고 실패했지만, 그 단어는 사라지지 않고 내 가슴 속 깊이 박혀 있었다. 저주받은 이 방을 떠나 집과 가족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 꿈을 어찌 잊을까?
아픈 몸을 버둥이며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평소 굳게 닫아놓던 문 때문인지 나를 속박하던 줄은 헐거워져 있었다. 장애물은 오직 두 개의 문 뿐이었다. 방문을 열고 뛰쳐나간 다음, 밖으로 향하는 현관을 여는 것, 그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숙제였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런 생각만으로 숨죽이고 있던 차였다.
 

 

 

 

 

#창주의 이야기.
 

금 당혹스러웠다. 원래 외삼촌이 살던 집이었다. 사정이 생겨 지방으로 내려가셨고, 잘 팔리지 않는 허름한 집을 내가 대신 쓰고 있었다.
소위 왕따인 나는 친구가 없으며, 이웃과의 왕래 또한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방문 따위가 있을리 없는 것이다.
그런 내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도둑이... 들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치밀었지만 이내 사그라 들었다. 돈이라면 모조리 적금을 들어 두었다. 집이라도 사 두면 여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귀중품이나 금붙이 따위의 패물이 있을리도 만무했다.
하다못해 냉장고조차 텅 비어 있는 집이다.
도둑이 들었다가도 훔치기는커녕 침을 뱉고 갈 집인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생각을 멈출 수 없던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문 앞에 섰다.
그때 문득 간 밤에 꾸었던 묘한 꿈이 떠올랐다.
 

이 대리님... 아니 창주씨. 미안해요. 그 날 일은 오해에요. 총무과 미스 최가 자꾸 놀리듯이 이야기 하길래 제 마음을 들키기 싫어 유난을 떨었다고 할까요? 사실 전... 꽤 오래전부터 이 대리님 좋아했어요. 제 마음 받아주시면 안돼요?”
... 미스 장...”
미스 장이 뭐예요. 장하진.... 하진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우리 결혼해요.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제가 극진히 모실께요 네? 이번 명절에도 함께 내려가고요.”
하진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저도요 창주씨... 사랑해요.”
 

급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진 꿈속의 망상은 서른일곱의 노총각으로 하여금 팬티를 빨아 입게 만들만큼 황홀했지만, 어디까지나 꿈일 뿐,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바로 어제 청첩장을 받지 않았던가?
 

이 대리님. 아시죠? 경리팀 하진 언니 이번에 시집가는 거. 키 크고 돈 잘 버는 은행원이라나? 뭐 일설에는 이 대리님이 하진 언니를 은근히 짝사랑을 했다나 어쨌다나 뭐 그런 얘기가 돌고 그러던데... 푸풋... 뭐 그건 됐고. 쫌생이 말고 멋진 남자로 남고 싶으시면, 그때 그 감정만큼 묵직한 축의금, 어때요? 키킥... 기대할께요!”
 

그 말을 전하며 총무과 미스 최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것은 축하와 기쁨의 전달보단 멸시와 조롱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난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적어도 좋아는 했으니...
더러운 창녀의 몸을 더듬고 뒹굴다 온 참이지만, 내 안에 남은 순수함이 차가운 가을 바람마냥 가슴을 파고 든다.
 

.....’
 

하지만 그런 하잘 것 없는 감정에 기댈 때가 아니었다. 뜻밖의 방문자,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야 했다. 나는 거칠게 문을 열었다.
행여라도 길을 잘 못 든 도둑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걱정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뜻 밖에도... 어머니였다.
 

엄마! 엄마가 여길 왜...”
명절이면 열차 표 구하기도 힘들고, 고생하는 너를 명절이라고 시골까지 내려오라 하는 것도 염치없어서 이번엔 이 애미가 올라왔다. 이 참에 너 만난다는 그 하진인가 뭔가 하는 아가씨도 좀 만나고! 여튼 겸사겸사! 호호홋!”
아니! 그럼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음 내가 역으로 마중이라도 나가잖아!”
! 내가 올라온다하면 니가 퍽이나 반기겄다. 뭘 올라 오냐고 됐다고 쿠사리나 주기 십상이지. 암튼 나 이번 추석 연휴 끝날때꺼정 여기 있다 갈 참이니까! 너는 그저 그 하진인지 뭔지 하는 아가씨하고 자리나 한 번 맹글어 봐라! 히히 얼마나 참한 아가씨인가 내 한 번 봐야겄어. 네가 그래도 우리 이씨 집 안 2대 독잔데. 아무나 만나서야 되겠니?”
! 엄마... ... 그게... ... 하진이는... 그러니까 미스 장은... 그게...”
어허! 자고로 여자는 엄마가 봐야 알어. 여시 같은 년인지 아님 암코양이 같은 살림꾼인지. 엄마는 딱 보면 안다니까! 참고로 엄마는 곰처럼 묵직허고 든든한 처자가 좋긴 헌데... 그건 요즘 젊은 애들 취향은 아니지?”
! 엄마!”
 

차라리... 도둑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너는 그저 그 하진인지 뭔지 하는 아가씨하고 자리나 한 번 맹글어 봐라!“
 

작게 시작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 엄마는 정말로 내가 경리팀 미스 장과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는 터였다.
 

... 애인대행이라도 불러야 하나?’
 

그렇게 문 앞에 선 채, 선뜻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고민에 빠져 있던 찰나, 갑자기 엄마는 굳게 닫힌 골방 문 손잡이를 붙잡으며 말씀하셨다.
 

너 없을 때 내가 청소 다 했다. 이제 이 방만 하면 돼!”
 

그 순간, 불현 듯 떠올랐다.
골방 안... 내가 숨겨둔 것...
사무실의 장하진이 아닌 또 다른 장하진...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엄마 안돼!”
뭣이! 엄마가 깨끗하게 다 치울게! 으헉! ! 이게 뭐다냐!”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진의 이야기.
 

렸다.’
 

눈을 부릅떴다. 방안으로 스며든 빛, 그것은 탈출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그 희망의 빛을 잡아야 했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달음질 쳤다.
빼꼼히 열린 문 틈 사이, 그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탈출구였다.
 

뭣이! 엄마가 깨끗하게 다 치울게! 으헉! ! 이게 뭐다냐!”
 

엄마 안돼!”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중년의 여성이 놀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충분히 절박했다. 놀라 허우적대는 그녀를 지나쳤고, 곧장 거실까지 뛰쳐나왔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괴성이 들려왔다.
 

창주야! 너 이 자식아! 이게 다 뭐냐!”
안돼 엄마! 저거 잡아! 잡아야 돼!”
 

최후의 난관, 활짝 열린 대문 앞, 나를 망가뜨린 괴물이 문 앞에 버티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두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의 큼지막한 손이 나를 붙잡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왔다. 금방이라도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심했다.
 

평생 여기에 갇혀 있느니, 붙잡혀 얻어맞더라도 나간다.’
엄마... 엄마 곁으로 갈게...’
 

나는 달렸다.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그의 험악한 손길이 나를 향해 뻗어왔지만 내 가진 모든 힘을 다해 뛰쳐나갔다.
 

안 돼!”
 

그가 내지른 악다구니가 귓청을 찔러왔다. 움찔하는 사이 그의 손끝이 내 몸에 닿았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밀려오는 절망사이... 버둥이는 나를 향해
그의 엄마가 소리쳤다.
 

창주야! 너 이 자식! 천식 때문에 고양이 같은 거 절대 키우면 안 된다고 엄마가 말 했어 안 했어! 당장 그거 내다 버려! 어서!”
 

 

 

차가운 밤바람이 가슴을 스친다.
날카로운 발톱을 잃었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했다.
저 언덕 너머, 곧게 뻗어진 담길을 지나면 꿈에도 그리던 엄마와 친구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
 

누가 나를 사육하는가?
내 이름은 장 하진이 아니다.
누군가의 보살핌 따윈 필요없다.
누군가의 길들여짐 역시 필요 없다.
나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속박 받아서는 안 되는 독립된 객체이다.
나는 나이다.
그래도 나를 키워보고 싶은가?
 

 

불완전한 사육
()
 

 
글쓴이의 말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예전 제가 쓴 글의 리메이크 입니다.  
2년 정도 된 거 같은데, 그때는 이런 류의 반전물이 인기가 좋았답니다.
그때의 감성으로 읽어주시길 바라요.
아울러 나름 떡밥을 많이 뿌리기도 했지만, 반전의 은폐가 너무 조약해
초반부터 너무 쉽게 결말을 예상하셨다 하시는 분!
그래요 바로 당신!
그냥 님께서 유달리 눈치가 빠르고 총명하신 걸로 합시다.
절대 글이 조약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걸로... 네! 그럽시다.
그래줍시다.
그래야 저 같은 글쟁이들 힘이 납니다.
혹 끝까지 몰랐다 하시면 감사하구요.
즐거운 한주 되세요. (꾸벅)
 
p.s 혹 재미있으셨다면 이것도 봐주세요.
 
저주를 부르는 눈 - 귀안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54197
 
출처

블로그도 합니다. 시간 되면 놀러 오세요. 별 건 없어요.
http://blog.daum.net/ozthe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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