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님께 답변 드린 첫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8956&s_no=8956&page=8
1.
체질 인류학은 크게 보자면 인간생물학과 진화생물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현재 언급하는 것은 전자인 인간생물학입니다.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이 학문은 집단의 혈통 문제를 밝혀내고, 이주에 관한 복잡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왔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조선이 우리 역사라는 것을 다룰때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단순하게 통계적인 모수가 부족하다고 해서 대표성이 떨어진다 보기는 어렵고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게 현실이나 홍산문명 내지 문화의 거주민들과 우리 한국인들의 선조 사이에 관련성이 극히 적은것 역시 사실이라고 판단하는게 좀 더 낫겠지요,
구체적으로는 고고학 유물과 유골로 남은 인간생물학과 유전자 인류학 즉 유전자를 통해서 생물학적 정체성을 살펴보는 방법만이 있는 현실속에서 고고학 자료는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있고, 유사한 출토 유물이 인구이동에 의한 것인지, 문화전파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니 유전자인류학 데이타와 체질인류학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해볼수 있는데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인골을 살펴보자면 요서지역에서 홍산 문화를 건설했던 집단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 지역에 주로 거주했거나 이 지역을 정복 통치했던 유목민 집단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는 체질인류학 연구를 통해볼때 mtDNA에 따른 지역별 차이보다는 Y염색체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과 연구 표본이 지극히 부족한 점과 유전자 인류학의 유전자 채취 문제 등을 생각해본다면 더 나아갈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나 어디까지나 우리와 관련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뿐이지 이들이 한국인과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2.
채도 문화는 중국 문명을 다룰때 매우 중요한 부분중 하나입니다, 마치 우리가 비파형 청동검을 다루듯 말이지요, 중국의 문명의 시작은 화북 지대에 형성된 이른바 황하 문명으로 이 들은 모계 중심의 사회임과 동시에 농경과 목축을 하며 움집에 살며, 토기와 직물 그리고 간석기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채도 즉 채색토기 혹은 채문토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 것은 황하 문명과 연관된 문명을 다룰때 요긴한 판단 요건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유적,유물, 문화등의 유사성은 민족의 이동이 아닌 무역 혹은 문화 전파등을 통하여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제시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채문토기는 비파형동검처럼 다른 수많은 것들중 하나의 요긴한 공통점에 불과합니다.
그 자체가 판단기준이 아니라 말이지요, 물론 옥과 같은 귀금속 가공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보자면 홍산 문화는 작게 보자면 홍산에서 발견된 기원전 4000년 전후의 신석기 문화이지만 그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신석기 문화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홍산 문화는 앞서 소개해 드린 황화 문명과의 연관성부터 신러 문화나 자오바오거우 문화등에서 볼수 있듯이 황화문명과 비교할만한 새로운 고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여러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아직까지 연구 성과는 갑론 을박인게 사실입니다, 물론 동북공정을 통한 정부의 이념적 개입이 우세한것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요,
다만 중요한것은 확실하게 고고학적으로는 우리와는 관련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라 시대에 요하에 있었던 것은 샤자뎬 하층문화입니다, 홍산문명 내지 문화는 문헌으로 추적 가능한 범위 밖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드렸지만 문헌 사학계가 손댈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사실 터놓고 말해 매우 간단한 이야기인게 신석기 시대에 문헌이 있을리가 없는데다 홍산문화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나온 하나라도 전설속에서나 나올뿐 아직은 하나라를 현실이라 보기는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