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금연을 한 이유
예전, 하루에 담배 1갑도 우습던 시절에 이야기이다.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취를 시작할 정도였으니.
당시의 난 별 되지도 않는 핑계로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 근처에 방을 얻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정신 나간 골초 생활이 시작 되었다.
더 이상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몇 개를 피우던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건 자연스럽게 흡연 량을 늘리는 것에 기여했고, 덕분에 내 흡연 량은 하루 1갑에서 어느덧 2갑으로 늘어나있었다.
“히야~ 이 좋은 걸 대체 왜 끊으라는 거야?”
그날 역시 난 자취 방 앞 골목에 나와 흡연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와 시시콜콜한 여자 이야기로 통화를 하며 막 다섯 개째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이었다. 무심코 바닥을 훑던 난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분명 다섯 개째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음에도 방금 전까지 피웠던 꽁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자리를 이동했던 것도 아니고 계속 이곳에 서서 피웠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내가 피웠던 꽁초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함도 잠시, 난 수화기 너머 친구의 재촉에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통화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무의식중에 아무데나 던져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먹고 늦은 밤 귀가하고 있을 때였다.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휙 던지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분명 꽁초를 던졌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질 않은 탓이었다. 무슨 그깟 미세한 소리에 신경을 쓰냐고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주변은 그 미세한 소리가 거친 파도소리처럼 느껴져야 정상일 정도로 쥐죽은 듯 고요했다. 순간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뒤를 돌아본다면 분명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최대한 태연한 척 ‘형, 나왔어!’ 라며 연기까지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자취하는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고 TV를 킨 채 이불속에 들어가 숨을 죽이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눈을 뜬 난, 전날의 내 행동을 돌이켜보며 너무 과민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날이 밝은 탓에 공포심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덕분에 고작 작은 꽁초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쫄았던 전날의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스무 살도 넘은 남자새끼가 참….”
난 피식 웃으며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익숙하게 현관 도어락에 손을 올리는데, 뭔가 발에 밟히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헉!’
난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 했다. 바닥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것도 모두 내가 피우는 디스마이너스의 꽁초들. 그길로 난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들은 특별한 침입의 흔적이 없어, 그저 이 구역 순찰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결국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는 밝혀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어찌할 방도도 없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전부 내가 피웠던 꽁초라는 점에서 질책 아닌 질책을 당하는 입장이었으니.
그날 저녁, 난 친구와 술 약속을 잡아 밖으로 나왔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으니 불안감은 차츰 사라져 눈 녹듯 없어져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친구를 집에 데려와 같이 잘 생각이었으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솔직히 그깟 담배꽁초가 뭐라고, 애초에 죽일 마음이었다면 칼을 들고 찾아왔을 터. 난 꽁초를 넣은 의문의 녀석은 분명 찌질한 놈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고작 그런 놈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 났다. 그렇게 술의 힘을 빌려 공포가 분노로 완전히 바뀌었을 때, 난 자취방으로 향하는 익숙한 골목 앞에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어제와 비슷한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난 망설임 없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일부러 보란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소리까지 질렀다.
“어디 한 번 나와 볼 테면 나와 보시든가! 그딴 찌질한 짓 하지 말고!!”
조용한 골목 안이 내 술에 취한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러다가는 그 놈보다 동네 주민의 신고가 먼저 들어올 것 같았기에, 난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놈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심 안도의 한 숨을 쉰 난, 대문을 지나 자취 방 앞에 서서 반도 타지 않은 꽁초를 아무렇게나 휙 던졌다. 꽁초가 손을 떠난 순간 ‘아차’ 싶었지만, 역시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난 본의 아니게 또 꽁초가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집중했다. 허나 역시 꽁초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간 어제와 마찬가지로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뒤에서 누군가의 탁한 시선이 느껴졌다. 문득 예전 들었던 귀신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필을 뒤로 던졌는데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건 귀신이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 정말이지 그런 잊고 있던 시답잖은 이야기는 꼭 이럴 때만 구체적으로 떠오르더라. 속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결판을 내야한다! 이런 마음이 불처럼 일었다. 취기역시 한몫했다. 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소리치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 한 번 해…. 응?”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휑하니 열린 대문만이 반복적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난 제법 큰 허탈감에 긴장감이 쫘악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었다. 난 열려있는 대문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자취방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난 그 자리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자취방 앞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의 말라붙은 손에는 좀 전에 내가 던졌던 꽁초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난 쉽사리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건 노인의 모습이 주변에 비해 너무도 이질적이라 마치 이 세상사람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고개는 들지 않은 채였다. 머릿속에선 아까부터 계속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지만 몸은 마치 내 몸이 아닌 듯 손가락 하나도 가딱할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천천히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걸어온다기보다 허공에 뜬 채 날아온다고 표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속으로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하고 외치며,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간절했을 때, 이윽고 노인이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섰다. 노인과 나 사이는 불과 담배 한 개비 길이의 공간만이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그제 서야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난 정말이지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말라비틀어진 볼품없는 가죽만이 앙상한 뼈를 덮고 있는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의 얼굴은 참으로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피투성이의 만신창이 얼굴이 덜 무서울 것만 같았다. 순간 어디선가 음식물 쓰레기가 썩어 들어가는 듯, 고약한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이내 내 시선은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듯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노인의 목 중앙 커다란 검은 구멍에 고정되었다.
그때였다. 검은 구멍 안에서 지금까지의 악취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악취와 함께 썩어 문드러진 살점들과 크고 작은 담배꽁초들이 한데 뒤섞여 핏물처럼 꾸역꾸역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더럽고 소름 돋는 것들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나와 노인이 서있는 바닥을 뒤덮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무릎, 허리를 지나 목까지 쌓여갔다. 그리고 목을 지나 얼굴마저 덮기 시작했을 때, 난 그 질척이는 시야 안에서 노인의 건조한 입 꼬리가 비틀어져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 다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자취 방 앞에 쪼그리고 앉은 채, 잠들어 있던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의문의 노인과 마주친 건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덕분에 난 그 일이 현실이 아닌, 내가 너무 술에 취해 꿈이라도 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날 뒤로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에 손이 가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담배를 입에 물면 그날 맡았던 그 고약한 악취가 진동을 하는 것이 이유였다. 충격적인 꿈 때문에 심리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병원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문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뒤로 난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고, 현재 금연센터의 과장으로 수많은 흡연자들에게 금연을 권유하며, 치료를 돕는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담배 하나 마음 놓고 피우겠다고 독립까지 하던 놈이 금연 한 것도 모자라, 이런 직업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우연히 담배로 인한 질병 관련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낯이 익은 누군가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40년 동안 담배를 하루 2갑씩 태우셨던 할아버지. 성대를 들어내는 대수술 끝에도 결국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영상 속에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흡연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그날 내가 보았던 그 노인의 모습과 일치했다.
지금도 이따금씩 그 노인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생각하곤 한다.
‘그는 죽어서도 그렇게 구천을 떠돌며 많은 흡연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일까?’
‘그만큼 후회스러웠던 걸까?
라고 말이다. 그가 왜 굳이 내게 나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감사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난 아직도 골초로 살아가고 있거나, 심하면 그의 전철(前轍)을 밟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이 글을 보는 많은 흡연자들이여,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끔찍한 모습에, 오히려 담배를 끊게 되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