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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물] 달콤한 전생
게시물ID : readers_17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명확한정성
추천 : 1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8 22:50:58




지민과 강우는 함께 최면 치료 세미나를 다니는 사이였다. 언젠가부터 세미나가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둘의 사이에는 어떤 달콤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강우는 둘이 사귀게 될 미래를 확신하며, 고백할 기회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둘이 함께 와인을 몇 잔 한 날이었다. 나른해진 지민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서 문득 말했다.

"강우씨, 오늘 배운 것 실습해보고 갈래요?"


지민은 편안하게 침대에 누웠다. 강우는 심장이 쿵쾅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진도를 먼저 빼야 할까 고백을 먼저 해야할까...! 어느쪽이든 우선은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강우는 먼저 달콤한 음악을 틀었다. 분위기가 형성됐고 강우는 지민의 머리맡에 앉아 손을 뻗었다. 손짓으로 장난스레 최면을 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손 끝에 지민의 머리가 닿을락 말락 했고, 지민은 나른하게 웃었다. 강우는 더 웃겨주려, 최면을 걸던 세미나 강사의 말투를 과장되게 따라했다. 그러나 지민은 정말로 최면 상태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떡하지! 위기의식이 닥쳐왔지만, 동시에 강우는 자신이 배운 대로 정말 됐다는 데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지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그대로 누워있다. 강우는 침을 삼켰다. 더 될까?

“지민 씨 미안해요..! 이왕 걸린 김에 좀만 더 해볼게요..!” “괜찮아요.” 지민의 대답이다.

“앗 제 말 들려요?” “물론이에요, 최면 상태라도 들릴 건 다 들려요. 강우씨, 괜찮으니까, 더 해봐요, 우리 이러려고 들어온 거잖아요. 근데 나 궁금한 게 있어요. ” “...뭔데요?” “전생이란 건 진짜 있는 걸까요? ... 강우씨, 나를 전생으로 데려가줘요.”

강우는 왠지 망설였다. “왜 망설여요? 우리 세미나에서 배울 것은 다 배웠고, 위험할 건 없어요, 강우씨! 괜찮아요!” “... 지민씨, 전생으로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소원 하나만 들어줘요.” “..? 뭔데요?” “전생에서 깨어나고나면.... 나랑 사귀어줘요.”

잠깐의 침묵은 강우에게 천년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 좋아요.” 지민의 얼굴은 눈을 감은 채 붉어졌다. 강우는 고개를 숙여 그 입에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세미나 강사는 전생 같은 것은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상담자의 정신 세계라고 했다. 강우는 지민의 전생을 통해서 지민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었고, 그러면 지민과 곧 하게될 연애에서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모든 것은 지민과의 연애를 향한 순풍이었다. 강우와 지민은 그녀의 전생으로 들어간다.

조선시대였다. 조선시대의 지민은 발랄한 소녀였다. 소녀 지민은 바둑이가 컹컹 짖는 기와집으로 뛰어가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겼다. 지민은 말로 전해주었고 듣는 강우는 가슴이 훈훈해지며 행복해졌다. 지민이 문득 눈쌀을 찌푸렸다. “조선시대의 아빠의 얼굴에 왠지 지금의 엄마의 얼굴이 겹쳐보여요.”

강우는 놀라서 말했다. "세상에, 전생에 인연이었던 사람이 지금도 곁에 있을 때, 그 얼굴이 대입돼서 보인다더니! 지민씨의 어머니는 전생에 아버지였군요!" 최면 상태의 지민도 놀랐다. "엄마가 아빠였다니!" 이어서 지민이 조선시대의 엄마의 얼굴을 보자 삼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삼촌은 엄마였어!"

강우는 자연히 자신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자신이 겹쳐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지민은 조선시대의 사람들을 이리저리 보았다.

친구들 몇 명을 더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강우는 없었다. 실망하는 강우에게 지민이 말했다. "우린 전생에 인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덧붙였다. "운명이 아니었을지도..."


위기였다. 강우는 여자들에게 '운명'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강우는 자신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찾으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강우는 아무데도 없었다.

소녀 지민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개밥통에 부은 순간 지민이 소리친다.

"강우씨는 바둑이였어요! 바둑이!"


지민은 최면에 깨어나서도 강우의 얼굴에 바둑이가 겹쳐보이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지, 지민씨.. 깨어나면 우리 사귄다고 했던 건...” "..미안해요 강우씨.“ 강우는 절망적으로 지민을 보았다. 지민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바둑이는 전생에서 내가 정말 아끼는 개였지만... 바둑이와 사귄다는 건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지민씨! 세미나는 헛 들었어요?! 전생이란 건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러나 지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휘어질 지 결코 알 수 없는,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니든 상관없이 이렇게 영향을 받고 마는 것.... 지민은 곧 강우에게 오피스텔에서 나가달라고 말할 기세였다. 강우는 로맨스를 이런 식으로 끝맺고 싶지 않았다. 이건 너무 억울했다.

“..나도 전생으로 보내줘요.”

지민이 고개를 들어 강우를 본다. 강우는 그녀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인간은 전생을 수십개를 거쳐요. 우리는 수십번의 전생에서 수십번 마주쳤을 거고, 그 중에선 우리가 그런 바둑이와 인간으로 만나지 않은 전생이 더 많았을 거예요. 우리는 분명히 다르게 만나는 인연이 있었을 거예요. 그걸 보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내게 더 이상 바둑이만 겹쳐보이지 않을 거예요. 지민씨, 나를 전생으로 보내줘요."

그 확신에 들어찬 굳은 결심을 보자, 지민은 강우란 남자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강우의 얼굴에는 바둑이가 겹쳐보였다. “...... 그래요! 반드시 다른 전생을 보여줘야 해요!”


무인도였다. 표류 끝에 야만인 같이 되어버린 강우는 머리와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자라서 위협적인 외모였다. 강우는 나무에서 개미를 긁어 먹었고 썩어가는 사슴 시체를 구더기와 함께 뜯어먹었다. 강우는 먹이사슬에서 약자였고, 무인도에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아무도, 어떤 것에도 누구도 겹쳐보이지 않았다.  "지민씨, 시간을 더 앞으로 보내줘요."

무인도에서 10년이 흘렀다. 강우가 커다란 바나나 잎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해변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너무 놀람과 동시에 행복해져서, 보금자리에서 뛰쳐나왔다. 달리던 강우는 문득,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나버리면 어쩔까 두려워졌다. 강우는 허겁지겁 손가락을 빗처럼 구부리고 머리 정돈을 했다. 커다란 빈대가 걸려 나왔다. 강우는 손톱으로 빈대를 터뜨려 죽였다.


"세상에...! 지민씨는 빈대였어....! 지민씨!! 빈대라구요!"

".....!!!! 그럴리가 없어요...!!!! 나를 다시 전생으로 보내줘요!"

지민은 이상한 패배감에 감긴 채 최면으로 빠져들었다.

호모 에렉투스였던 지민은 매머드를 집단사냥했다. 매머드는 강우였다.


개미핥기였던 강우는 군단개미 집을 습격했다. 여왕개미는 지민이었다.


에우오플로케팔루스였던 지민은 꼬리를 휘둘렀다. 꼬리의 무거운 추에 맞아 죽은 티라노 사우루스가 강우였다.

암모나이트였던 강우가 삼킨 크릴 새우가 지민이었다.

단세포였던 지민에게 병합된 미토콘드리아가 강우였다....


더이상 전생이 없었다.

지민과 강우는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침 해가 비춰오고 있었다.

"강우씨."

"네."

"나 이제 누구든지 전생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요. 우리 실습 정말 잘했나봐요... 세상에...“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른다. 이젠 정말 어떻게 돌이킬 방법이 없다.. 누가 먼저 방에서 나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방의 자리는 예전에 강우의 둥지였기 때문이다.....


문득 강우가 입을 연다.

“지민씨. 우린 정말 인연이었군요."

"... 네?"

"우린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어요."


"......정말."

지민은 아직도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쳐다봤다.

"정말이네요..“

부드러운 침묵이 둘 사이에서 물결쳤다. 왠진 모르겠지만, 둘은 그런 물결이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다. 지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우리는 암컷과 수컷으로 만났네요."

"같은 종으로."

둘의 시선이 만난다. 둘은 키스한다.

입을 떼고 지민이 한 농담에 둘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릴새우였을 때 당신은 더 달콤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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