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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압]'X 생태 보고서' 12<완>
게시물ID : panic_914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야설왕짐보
추천 : 11
조회수 : 1821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6/11/08 06: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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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 및 인물, 지명, 배경등은 사실과 무관합니다.





 

 

X생태 보고서

: 살인마, 돌아이 거기에 왜 하필 나?

 

  

<12>

 

 

   심장이 벌렁거렸다. 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성들이 손에는 하나같이 총을 들려 있었다. 누군들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바지춤이 축축해지지 않은게 다행이다 싶었다. 할 말을 잃고 멍해진 내게 여직원이 말했다.

 

왜 그러세요? 같이 오신 게 아니에요?”

? ... 그게... ... 온거죠 가... 같이...”

 

갑작스런 경찰의 출현에 뭐라 둘러대야 할지 몰라 더듬이자 상대가 먼저 의아한 듯 물었다.

 

경찰?”

. 저희가 요청한 콩고 왕자 신변보호요청 때문에 오신거 아니에요? 양쪽, 일행 아니세요?”

 

애매한 의혹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뭐라도 둘러대야 했다.

 

하하하! ... 그게 어디 서에서 오셨어요? 이거 중복으로 출동명령이 나왔나 보네 하하핫

서라뇨? 경찰청에 직접 요청했는데.”

아 그게... 청에서는 저희 서하고 저 쪽에... 각각 따로... 이렇게 뭐가 꼬였던지...”

 

내가 말해놓고도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었다. 나는 신변보호요청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몰랐고, 누가 출동하며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다급히 곁에 선 경찰 Z를 바라봤지만 녀석도 말단 순경인지라 당황한 표정만이 역력했다. 부디 이번에도 상황 모면용 거짓이 통해주기를 바랬지만, 운명의 신은 끝내 냉담했다.

 

당신들... 진짜 경찰 맞아?”

 

날카로운 질문이 폐부를 찔렀다. 숨이 탁 막혔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상황을 모면할 그럴듯한 변명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침몰을 앞 둔 배의 선장처럼 참담한 기분만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여직원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등 뒤에 선 나의 일행을 훑어 보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뒤엣 분들... 복장도 좀 이상하고... 진짜 경찰에서 나오신 거 맞아요?”

 

무릎이 꺽일 듯, 두 다리가 휘청였다. 배가... 긴 풍랑의 바다를 헤치고 여기까지 도달한 우리들의 운명이란 배가 최후의 암초를 넘지 못하고 가라앉고 있었다.

 

... 경찰 맞는데요.”

 

뒤늦게 경찰 Z가 구멍난 배의 물을 퍼내려 하지만 그의 힘만으론 너무 미약했다. 한 번 물이 새기 시작하자 배는 더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고, 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묶여버린 나의 의지는 침몰하는 배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 김 주사님! 김주사님은 왜 거기 계세요? 꼭 붙잡혀 있는 것처럼?”

 

여직원이 뒤늦게 발견하고 소리치자, 힘들여 억류한 남자직원이 주방장의 손길을 뿌리쳤다. 놔주면 어쪄냐는 원망의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이렇게 된 이상 더 잡아두는 것도 무리였다. 허탈해진 나는 고개를 떨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라는 탈출의 신호 뿐이었다.

 

다 끝났어. ... 도망쳐!”

 

운명의 침몰을 시인하는 마지막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끝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

움직이지마! 그리고 손 들어!”

 

시끄러운 총성과 함께 천장을 향해 쏘아진 시뻘건 화염, 모두가 머리를 감싸쥔 채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채 겁에 질려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란 것을...’

 

손을 들었다.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았다. 도망칠 수 없다면 순순히 협조하여 최대한 선처를 바래볼 생각이었다. 그럼 어떻게든 될 거다. 체포된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이 끝장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위로를 하고 있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은 혹여 X를 위시한 다른 일행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리곤 곧 총을 발사한 경찰이 사나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는 콩고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무장단체 ILS의 한국지부 조직원들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꼼짝하지 말아!”

 

그래... 이걸로 나의 경찰놀음도 다... ... ? 뭔 단체?’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 못 들은건 아닐까하는 의아함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제야 뒷 줄에 서 총을 내민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 몇의 피부색이 조금 짙었다.

 

모두 돌아서서 벽을 봐라! 특히 경찰들! 바람구멍이 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아직 당황이 채 가시지 않은 이마에 총구가 겨눠졌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경찰이 나타났다는 생각만으로도 긴장해 있었는데, 사실은 경찰로 위장한 테러리스트였다니... 믿기지도 않지만 한층 더 악화된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들의 목표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콩고의 분리독립과 체포된 혁명군의 석방뿐이다. 왕자를 데려가는 데 협조해준다면 불필요한 희생은 없을 것이다. 왕자는 어디있지? !"

 

인간의 마음은 왜 이리도 간사할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콩고왕자를 만날 생각에 부풀어 있던 내가 자연스레 복도 안 쪽을 가리킨다. XB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머리를 겨눈 총구가 나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했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한 마리 짐승, 아니 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토르깐! ######, ######"

"#########, ######## #######"

"###### ### ##### #####"

 

알 수 없는 언어의 대화들이 오갔다. 총을 든 두 명의 테러리스트는 곧장 복도 끝 방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안 가 머리를 웅크린 20대의 흑인 청년을 끌고 나왔다. 애띈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고, 거기엔 짙은 절망이 묻어났다. 애원에 가까운 외침이 토해졌지만 나서는 이는 없었다. 외려 머리에 개머리판 세례를 받을 뿐이었다. ''하는 비명과 함께 고꾸라졌지만 그들은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구둣발로 그의 등과 머리를 짓밟고 위협적인 고성을 내질렀다. 대면한 적은 없지만 대번에 그가 콩고왕자 나비두 토르깐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

 

또 한 번 총성이 울렸다. 겁에 질려 가장 먼저 한 일은 허둥지둥 내 몸의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콩고왕자일꺼란 예감이 들었다. 민망하게도 사람이 죽었는데 '전용기는 물 건너 갔다.'란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더 한심했던 건, 죽은 이가 콩고 왕자가 아님을 알자 '다행이다. 어휴!'따위의 말을 중얼거린 내 자신이었다.

 

"... 도와주세...... 여기... 테 테러... ..."

"꺄아아아!"

 

전화기를 두고 나와 대치했던 남자직원이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지자, 사무실 안은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찼다.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려던 거였을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수화기가 붉게 물든 채 떨어져 책상 옆에 매달렸다. 역시나 안타깝단 생각보단 미련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미 한 발의 총성이 쏘아졌다. 공항경비대가 출동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기다리며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그 순간, 죽은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생기를 잃은 몽롱한 눈에는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생의 마지막,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와의 피말리는 대치전, 그 망설임을 후회했을까? 그때 신고를 했더라면, 공항 경비대를 좀 더 빨리 불렀다면 테러리스트의 잔인한 총격은 애초에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후회가 그로 하여금 수화기를 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모처럼의 용기와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다.

여러모로 찹잡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심정을 알 리 없는 법무부 여직원은 앞 선 의심의 순간은 잊은 채 다급히 내 귀에 속삭였다.

 

"... 경찰이시니까 뭐라도 좀 해봐요 네? 흐흐흑 제발...."

 

그녀는 울고 있었다. 동료의 죽음이 슬펐을까? 아니면 자신도 죽게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순간 '그녀의 진심은 어느 쪽일까?'란 의문을 해봤다. 하지만 의미없는 고민이었다. '내가 죽었다면 저 여자는 울어줬을까?'란 회의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죽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난 경찰도 아니고 정의감도 없다. 그녀와 같은 포로신세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방관, 무기력, 자포자기, 나에겐 친숙한 감정들이었다. 그 뒤에 나를 숨기자 외려 평정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거칠어졌던 호흡도 가라앉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한 치도 상관도 없는,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상황 파악도 할 수 있었다.

 

"#####, ##########, ###(빌어먹을 자식! 왜 또 총을 쏜거야!)"

"###(... 그건)"

"####### ########## ######## ## B#####(총소리를 들은 공항 경비대가 몰려 올꺼다. 퇴각조에 연락해라 루트 B로 이동한다)"

"##### ######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것들은 어쩌죠?)"

"###### ###(상황봐서 제거해!)"

"##()"

 

신기하게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말들이 그들의 표정과 뉘앙스로 유추됐다. 어느새 거칠어진 그들의 호흡, 흘러내리는 땀방울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전해졌다. 나는 계속 속으로 중얼 거렸다.

 

'나하곤 상관없어. 내 존재따위 공기처럼 무의미하지... 그러니까 이 일은 나완 아무 상관없어.'

 

마치 아무데나 돋아나있어 존재 조차 희미한 잡초처럼, 어디에도 있는 무색무취의 산소처럼, 나는 무가치한 내 자신을 일깨우며 공포를 삭혔다. 그러자 그들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왕자를 겁박하는데 주력했다.

그 사이 나는 XB, 그리고 주방장과 경찰 Z를 향해 속삭였다.

 

"신호하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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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 및 인물, 지명, 배경등은 사실과 무관합니다.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표정으로 말했지만 사실 계획따윈 없었다. 어찌해보겠다는 복안도 없었다. 순수하게 나는 신호만 하겠단 뜻이었고, 그 뒤는 니들이 알아서 하고 나는 알 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그런 막연한 긍정론이자 대책없는 허술함이었다.

그 사이 리더로 보이는 한 명이 쓰러진 왕자의 머리칼을 부여잡았다. 아직 고통을 떨쳐내지 못한 왕자는 신음했지만 그는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왕자를 겁박했다. 순간 왕자의 얼굴에서 친숙함이 느껴졌다.

자포자기, 절망, 포기...

바람난 애인을 보듯 그가 토해낸 한숨에 질투심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왕자의 머리칼을 붙잡은 테러리스트가 그대로 내 앞을 걸어갔다. 여전히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표정이었다. 하찮은 벌레를 보듯, 언제든 밟아 죽이면 그만이라는 오만마저 느껴졌다.

왜였을까?

매일 같이 느끼던 그 감정에 문득 심술이 난 것은...

갑자기 유년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작고 마른, 힘 없는 아이였다. 모두들 나를 무시했고, 내세울 것 없었던 나는 그럴수록 더 작아져만 갔다. 학교에서 내 존재감이 빛을 발할 때는 늘 놀림감이 되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될 때 뿐이었다. 모두가 웃기만 할 뿐 도와주거나 편들어 주는 아이는 없었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머리를 때렸다. 걸을 때도 심심찮게 다리를 걸곤 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축에 속했던 난 그 때문에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누가 또 다리를 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런데 놈은 안 그랬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또렷하게 앞을 바라보며 맹수의 표정으로 걸었다.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리겠는가! 그런 말을 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더 심술이 났다.

비록 복수의 대상은 달랐지만 그 오만함에서 친숙한 복수의 대상들이 떠올랐다.

 

"###(으앗!)"

 

고함과 함께 들려온 둔탁한 소리, 내 정강이에 부딪혀 중심을 잃고 나자빠지는 꼴사나움, 당황한 사람들 사이로 나는 손짓했다.

 

"제껴!"

"으앗!"

 

X가 뛰어 올랐다. 탁자 하나를 밟고 떠오른 모양은 마치 한 마리의 새와 같았다.

B가 달려 들었다. 당황한 테러리스트 하나를 들이 받은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들소를 연상케 했다.

주방장이 칼을 던졌다. 번개처럼 날아간 식도의 파공음은 테러리스트를 한 접시의 요리로 만들어 버릴 듯 매서웠다.

경찰 Z가 넘어진 놈의 총을 빼앗아 들고는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같은 정교함이 느껴졌다.

나는 여직원 뒤에 숨었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다리를 걸고 신호를 주는 것 뿐이었다.

가장 먼저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기에 그 만한 권리(?)는 보장되야 했다.

여직원의 가녀릴 어깨를 꼬옥 붙잡으니 방탄조끼를 입은 듯 든든하기까지 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던지 나를 보며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놔 이 미...끼야!"

 

약간의 고요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직원이 버둥거리는 통에 앞을 볼 수 없었다. 긴장감에 온 몸이 떨렸다. 겁에 질려 나를 보는 여직원을 보며 '운 좋으면 나도 공무원 여자친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망상을 떠올렸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망상의 순간은 짧고 현실은 짜릿하게 돌아온다.

''소리와 함께 왼 뺨이 얼얼해졌다. 여직원이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날 이런식으로 대한 건 니가 처음이야!'라는 재벌2세들의 단골 멘트를 날려줄까 했지만 이내 오른 뺨도 얼얼해졌다. 왼뺨에 이어 오른뺨이라니, 문득 그녀가 충실한 기독교신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엔 늦잠자야해서... 미안하지만 우린 이뤄질 수가 없겠네요. 안녕 내 사랑!"

 

다시 한 번 눈 앞이 번쩍했다.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빠른 실연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우리의 Fast Love에 충격을 받은 테러리스트도 한 마디 거들었다.

 

"... 하느님 맙소사... ... 살려주세요. ... 저는 한국인입니다. ... 통역과 안내를 해주면 돈을 주겠다 해서... 그래서 따라온거에요."

 

고개 들어 바라보니 처음 내게 경찰이냐 물어 본 그 놈이었다. 녀석은 겁에 질린 채 손을 들고 투항의 의지를 보였고, 놈 옆에는 거품을 물고 쓰러진 네 명의 테러리스트가 있었다.

나의 치밀하고도 과감한 계획이 놀라운 성과를 보인 것이다. 실연의 고통마저 잊은 채 기쁨이 밀려왔다. 나의 눈부신 지도력에 묻어서 별 역할 없이 맡은 바 지시에만 충실했던 네 명도 함께 웃었다. 다들 칭찬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난 매정하고 냉정한 조련사, 배부른 짐승보단 굶주린 짐승이 더 열심히 재주를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그저 콩고행 전용기의 무료티켓을 끊어주는 일 뿐.

 

"누구... 콩고 말 할 줄 아시는 분 없어요? 통역사!“

... 제가...”

호오 좋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따라하세요. 콩고왕자! 혹시 이 친구들과 콩고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 * * * * * *

 

총성의 소재를 파악한 공항경비대가 얼마 안 가 도착했지만, 국제 사회의 도움보단 강력한 용병의 고용이 훨씬 더 효과적임을 깨달은 왕자보다 신속하지는 못했다. 그는 부랴부랴 나의 친구들을 전용기에 태웠고, 졸지에 요상한 이름으로 국적세탁을 당한 나의 친구들은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두운 밤 하늘... 그 위를 날으는 콩고행 비행기의 불빛은 그 어떤 별빛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안녕... 나의 친구들...

 

* * * * * *

 

"시원... 섭섭하셨겠어요?"

"다 큰 새를 둥지에 가둬둘 순 없는 법이죠. 하나같이 어딘가 미숙하고 어딘지 괴팍했지만 속은 순수한 친구들이었어요. 전 아직도 그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밌는 이야기였어요."

"뭘요 지루한 제 얘기 경청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사내는 나를 보며 깊게 한 숨을 지은 다음 손에 들고 있던 서류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다시 말했다.

 

"... 그럼 콩고에 가신 친구분들은 이제 영영 돌아오시지 않겠네요?"

"아마도요... 돌아오는 길도 모를테니. 하지만 또 모르죠. 콩고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땐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선물을 한 아름 싸들고 말이죠. 친구란 그런거잖아요. 조금 싸우고 멀리 떨어져도 먼 곳에서나마 서로를 그리워하고 못내 잊지 못해 안부를 묻는 애틋한... 아 이거... 갑자기 울컥하네요. 녀석들이 벌써부터 보고 싶은가봐요 하하하"

 

나의 공허한 웃음소리가 닫힌 공간 안에 울려퍼졌다.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돌아온다... 콩고에 평화가 찾아오면... 뭐 좋습니다. 이것만 해도 많은 발전이네요. 자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

 

나는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갑자기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어지럽고 세상이 다 핑핑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릎이 바닥에 닿았고 일어설 수 없었다. 왜 이런 현상이 느껴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딱히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친구들을 떠나 보내서였을까? 갑자기 격한 감정이 밀려들더니 이내 모래사장에 부딪혀 소멸된 파도처럼 텅 비며 무기력해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래... 난 이게 제일 편해... 늘 그랬어...'

 

졸리지도 않은데 머릿속이 몽롱하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웃긴건 이런 기분과 증상이 놀랍도록 익숙하다는 거였다. 흐릿한 시야너머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어디서 봤더라?'

 

그녀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과 어떤 사이였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부축하듯 끌어안으며 속삭이자 귓가를 간질이는 숨결이 말했다.

 

'법무부의... 그녀?'

"창주씨 괜찮아요?"

 

'이런 내가 그렇게 좋았나? 여기까지 찾아올만큼? 이런이런... 나는 교회에 다닐 생각이 없다니까!'

 

나도 모르게 희죽거리고 있었다. 여자들은 참 한심한 존재였다. 왜 자신을 매정하게 내친 나쁜 남자에게 더 빠져드는 걸까? 내가 쉽게 넘 볼 수 없는 마성의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싶었다. 무언가 단호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내 의사를 100% 표현할 수 있는 멘트가 필요했다.

스윗하면서도 강력한, 그래서 더 여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런 말!

물론 명석한 내 두뇌는 곧 가장 적절한 어휘들을 조합해 최고의 표현을 만들어 냈다.

 

"흐흐흐 니 년도 죽고 싶어? ? 너도 죽여줄까? 흐흐흐"

 

그녀의 얼굴에 난처함이 깃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내가 바라던 바, 의도는 100% 적중했고 나의 단호함에 빠진 그녀는 또 나를 찾게 되리라 자신했다.

그리고 사내가 말했다.

 

"... 어렵네... 이창주씨! 아니 이 환자 너무 심각해."

 

환자? 누굴 가리켜 환자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그녀에게 내가 모르는 병이라도 있는 걸까? 의아해졌다. 그리곤 깨달았다. 단호한 거절에도 그녀가 계속 나를 찾는 이유는 병 때문이었음을... 아마도 불치의 병이겠지.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생을 나로써 위로받고 싶었던 거겠지...

내가 자신의 비밀을 알게되자 그녀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선생님. 처음엔 이중인격이었다가 점차로 인격이 하나 둘 늘어 본인 포함 다섯명까지 늘어났던 환자예요. 심리치료와 약물을 병행해 그 중 넷을 지워낸 것만 해도 학계에 보고될만한 쾌거예요."

"하아... 고마워 김간호사..."

 

불쾌했다. 왜 그녀가... 내가 아닌 저 사내와 이야기하고 있는거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쳐 미칠 것만 같았다.

 

"이러지마! 내가 질투라도 하길 바라는 거야?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 밖에 없다더니 왜 저새끼하고 말을 섞어! 설마 지금 날 따돌리는 건 아니지? 그렇지? 어서 말해! 아니라고! 너까지 날 따돌리면 안돼! 존재감이 없다고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면 안된다고!"

"발작이에요 선생님"

"또 시작이군... 이 놈의 과대망상!"

"니들끼리 얘기하지마! 날 따돌리지 말라고! 나도 친구들이 있어! 어디 보통 친구들인 줄 알아? B가 얼마나 힘이 센 줄 모르지?"

"진정제 가져와 어서! 창주씨, 창주씨가 유년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였다면서요? 정신차려요 돌아이 B란건 없습니다. 학창시절의 왕따와 창주씨의 외로움이 만들어 낸 괴물일 뿐이에요!"

"어디가! ... 날 두고 가면, X한테 부탁해서 니 년을 죽여 달라고 할꺼야!"

"... 진정하세요 이창주씨! X란 연쇄 살인마도 없어요! 그건 억압받고 무시당하던 창주씨의 내면이 양들의 침묵이란 고전 영화를 보고 난 후 만들어낸 심리적 탈출구에 불과해!"

"누가 이창주냐해. 만두는 나의 모든 것이다해!"

"창주씨 힘든거 알아요! 하지만 주방장이니 사망유희니 하는 것도 사실 다 영화 속 주인 공을 본 딴 거잖아요. 진정해요!"

"거짓말 마세요. 제가 모를 줄 알고요? ... 이거 루시드 드림이잖아요. 와 이번 꿈도 진짜 같다. 하하하 오늘은 병원이네?"

"그건 사실이 아니야. 무기력해지면 안되요 창주씨! 이겨내요! 영화 인셉션과 현실을 혼동해선 안되요. 경찰 공무원 시험을 수년간 준비한 건 맞지만 창주씨는 한 번도 합격한 적이 없어!"

"드디어 만났군요. 콩고에 온 보람이 있네요. 왜 나를 버리고 의료봉사를 떠났죠?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야 이 미.친새끼야 정신차려! 니 마음속 친구들은 바라던대로 콩고에 갔잖아! 이제 남은 건 너 뿐이야 이창주! 이렇게 다시 미치면 내 논문은 어쩌라고 이 새끼야!"

"선생님 진정제 가져왔습니다."

"어서 팔에!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

"역시 그랬구나. 다른 여자가 있었어! 이 여자 때문에 이 먼 콩고까지 의료봉사를 떠난거야!"

"선생님! 더 심해진 거 같아요. 치료를 중단해야 합니다."

"닥쳐! 너까짓 간호사가 뭘 안다고 떠들어! 거의 다 치료했다고! 내가 이창주의 다중인격을 거의 다 지워냈었단 말야!"

"하지만 상태가 너무..."

"닥치고 어서 진정제나 주사해 이 머저리야!"

"거짓말! 너희는 나를 속이고 배신했어. 그리곤 날 버리고 의료봉사를 떠난다며 콩고로 도망쳤지."

"뭐하고 있어 김 간호사!"

"안돼요 선생님 멈춰야 해요!"

 

어지러웠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정신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법무부의 그녀가 주사기를 들고 있고, 앞에는 물리쳤다 생각한 테러리스트가 서 있었다. 격해진 호흡과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이 보였다. 문득 어린시절이 또 떠올랐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

이제는 내가 복수 할 때다.

 

"으악!"

"선생님!"

"이창주가 내 다리를 걷어찼어!"

 

나를 괴롭히던 유년시절의 악몽이 바닥에 넘어져 허우적거렸다. 문득 그 이후의 결말이 떠올랐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녀석은 나를 깔고 앉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흠씻 두들겨 팼다. 그리곤 내 바지를 벗긴 후 몸에 낙서를 한 후 가버렸지. 정신이 들었을 때, 나를 보며 비웃던 너희들의 표정이 난 아직도 기억이 나. 그래 너희는 벌레보듯 나를 경멸하며 징그러워했었지.

나는 그녀의 손에서 주사기를 빼았았다.

 

'그 눈빛... 내가 그걸 어찌 있겠니?'

 

더 이상 누구도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아서는 안됐다. 난 벌레가 아니니까. .신같은 머..리에 패배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제껴!"

 

신호와 함께 악몽속 괴물의 눈알에 주사기를 꽂았다. 피가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어느새 놈을 짓밟고 올라선 X에게 자비란 없었다. 피흘리는 절규하는 괴물의 눈알을 파내고,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그의 머리통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악몽의 저항은 끈질겼다.

하지만 의자를 들어 재차 머리통을 박살내자 헐떡이던 숨결은 끝내 멈추었다.

 

"... 진정하세요. ... 창주씨... ... 저 기... 김 간호사...에요. 창주씨가 좋아하던..."

이런 이런, X의 과격한 행동에 겁을 집어 먹었던지, 그녀가 넘어지며 소리쳤다. 두 손, 두 발 모아 빌며 애처롭게 애원했다. 하지만 어쩔까? 왕따라고 괴롭힘당하고 백수라고 무시받던 무기력한 나완 달리 오랜 친구인 B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니 년이야. 내 남자를 빼앗아서 콩고로 달아난 년..."

".... 무슨 말씀이세요... ... 제가 어... 언제..."

"누가 모를 줄 알고? 니 년 잡으러 내가 콩고까지 왔어! 흐흐흐!"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창주씨! 제발... ...제발...!"

"걱정마라해! 내가 당신을 맛있는 만두로 빚어주겠다해!"

 

주방장이 메스를 집어 들었다. 평소 사용하던 식도보단 작아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실력있는 주방장은 칼을 가리지 않는 법,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코를 베어냈다. 뭉클대며 핏물이 베어나왔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의 하얀 가운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주방장은 만두를 빚고 싶어 했다. 밀가루 반죽대신 껍질을 벗겨 만두피로 쓰고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한 웅큼 짓이겨 만두소를 만들 생각인 듯 했다. 이제껏 죽여온 폐지 노인들관 달리 부드러운 육질을 지닌 최상급의 고기가 아닌가?

분명 최고의 만두가 될 것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 일단... 그 가슴부터 베어내야겠다해.'

 

"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이건 꿈이다.

생생한 루시드 드림일 뿐, 절대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 난... 조금 더 즐겨야겠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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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 및 인물, 지명, 배경등은 사실과 무관합니다.

 

    [규 방송을 중단하고 잠시 긴급속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ㅇㅇ종합병원 정신과 집중 치료실에서 이미 13명의 사람을 죽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마이자 정신이상자 이창주가 담당 의사와 간호사를 죽이고 탈출했습니다. 경찰은 이를 장기간의 치료로 인해 이창주의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믿은 의사의 안일함과 병원측의 무성의한 감시가 주 원인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으며, 현재는 전 병력을 동원해 탈출한 이창주의 소재를 쫓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학계에서는 이번 이창주의 탈출을 계기로 끔찍한 연쇄살인마가 정신이상증세를 보인다 해서 형 집행을 중지하고 정신병원의 치료감호를 받게 하고 있는 안일한 현 실태를 되짚어 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금 이창주가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차가 김포 인근에서 목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창주야!"

"아 왜 또!"

"난 콩고에 갈꺼야. 거기서 꼭 내 사랑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말거야."

"B, 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가 함께한다."

"으하하하! 최고의 만두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난 어디든 좋다해!"

"이번 꿈은 왜 더 신나는 거 같죠? 저 지금 너무 흥분되서 미치겠어요. 가자 김포공항으로!"

 

'지겨운 것들... 하지만 괜찮다. 이번에야 말로 꼭 이 놈들을 콩고행 비행기에 실어 보내고야 말꺼다.'

 

나는 새로이 의지를 다졌다.

 

뒷 자석과 트렁크엔 XB가 방금 죽인 차 주인 모녀가 실려 있다. 이 놈들을 보내지 못하면 내가 그 죄를 다 뒤집어 쓸 판이다.

그래... 그럴 순 없지.

그런데 자꾸만... 무기력해진다.

김포가 코 앞인데 또 잡히는 건 아니겠지?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이창주가 탈취해 도주중인 차량은 서울ㅇㅇㅇㅇㅇㅇ번차량으로 차에는 어머니 최ㅅㅅ씨와 딸 정ㅇㄹ씨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야당은 이창주의 도주가 7시간이 경과되도록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청와대와 대통령을 비난하며 더 이상 국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지 말고 하야하라는 성명을 내 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 대표 이ㅈㅎ의원은 즉각적인 성명을 내고 '나도 종종 사람을 죽이고 싶을때가 있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비웃지마! 백수라고 무시하지도 말고, 따돌리지도 마! 니들이 만든거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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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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