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여우 누이전'을 아시나요?
아들만 셋이던 부잣집에 막냇 딸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이 딸은 이 집의 재산을 노린 백년 묶은 여우였습니다.
결국 부모님까지 해친 여우를 피해 도망치던 세 형제는, 스님이 건내준 3개의 주머니를 이용해 여우를 퇴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에겐 동화 속 주머니처럼 3개의 '대선 승리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흐름만 놓고 보면
언론을 이용한 여론 왜곡 -> 양자 토론을 통한 진보 vs 보수 구도 -> 단일화를 통한 굳히기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실패했는지를 보겠습니다.
1. 언론을 이용한 여론 왜곡
이번 대선의 변수 중 하나는 '갈 곳 잃은 보수 표심'이었습니다.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이 그 예로, 절대적 지지와 상대적 지지가 겹쳐 20~25%까지 지지율이 올랐었습니다.
그러나 3월 29일(충천권 경선일)을 기점으로, 안희정 지사는 더민주 대선후보 탈락이 굳어집니다.
그리고 이 지지는 안철수에게로 일부가 향합니다.
실제로 이때쯤부터 안철수 지지율이 4~5% 급상승하는 여론조사가 나타납니다.
<3월 29일 리얼미터 조사, 안철수 지지율이 급등하기 시작>
<3월 29일 데일리안-알앤써치 조사, 역시 안철수 지지율이 급등하기 시작>
그리고 각 당 대선후보가 확정되는 4월 초가 되자마자, 재벌(?) + 언론 + 여론조사 기관이 합세한 이상한 조사 결과가 증가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과정에서 몇 개 업체가 제재를 받은 상황입니다.
또한 모 대기업 오너의 처벌을 막기 위해 막후에서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움직인다는 썰도 있었고요.
홍석현 회장의 갑작스런 은퇴 선언 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즉,
1. 갈 곳 잃은 보수 표심이 반기문 -> 안희정 -> 황교안 & 안철수 -> 안철수로 이동하던 현실
2. 비상식적인 여론조사를 통한 안철수 띄우기
- 인터넷 앱조사나 유선 비율 50% 등 비정상적인 조사 방식,
- 다자 -> 5자 -> 4자 -> 3자 -> 양자로 줄어드는 소거법을 이용한 안철수 몰아주기
-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서 뿌려대는 긴급 여론조사
- 여론조사 시 정당이름 빼기 등
3. 언론의 안철수 띄우기 & 문재인 공격하기
의 다중 공격으로 여론 왜곡 작업이 긴박하게 펼쳐진 것입니다.
<논란의 불씨가 된 여론조사, 최초로 안철수가 문재인을 뒤집은 이 여론조사 방식은 유선면접 40%, 인터넷조사 60%>
<조선일보-폴랩의 언론지수, 안철수 긍정 뉴스는 하늘을 뚫고, 문재인 부정 뉴스는 땅을 팠다>
결국 가장 우려하던 '지지율이 지지율을 견인'하는 효과가 나타나, 10일 사이에 안철수 지지율은 20% 가까운 점프를 뜁니다.
당황한 더민주에서도 경선후보 맥주파티 등으로 화합을 과시하고, 차떼기/신천지/딸 재산/부인 1+1/포스코 사외이사 건 등 다양한 의혹을 제기(일부는 언론, 선관위와 국민의 당 내부 고발)하지만 이 황당한 지지율 점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박시영 원지코리아 부대표가 4월 9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죽쒀서 개주는 꼴'을 우려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박시영 부대표 분석으로는 4~5%p 이내로 격차가 좁혀진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리얼미터 일간 지지율, 안철수는 3월31일 - 4월10일까지 18%, 문재인은 8% 정도의 지지율 상승을 보인다>
그런데 운명을 가른 4월 11일
어이없게도 안철수 스스로 '대선 승리 주머니' 하나를 버립니다.
바로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 억제'입니다. (그 후의 '학제 개편'은 약간의 양념)
결국 4월 11일 정점으로 안철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합니다.<상단 리얼미터 표 참조>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크게 착각한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대선 지형을 지역구도, 세대구도만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구도에 묻혀있는 큰 구도. 바로 '남녀구도'입니다.
2012년의 18대 대선 여론조사 마지막주 갤럽 조사를 보겠습니다.
남성의 박근혜 vs 문재인 지지율은 42% vs 46%로 문재인이 높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50% vs 36%로 14%p 격차를 보였고, 이것이 곧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매력이 컸음도 있으나, 당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매력적인 정책이 없었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실패를 복기하고, 더민주와 문재인 캠프에서 다양한 여성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다만 이 정책이 여심을 흔들기 전에, 안철수가 여심을 박살내버립니다.
사실 '대형 단설 유치원 억제'라는 표현만 놓고보면 시나브로 넘어갈 수도 있을 이슈였는데, 초반에 '병설 유치원 억제'라고 언론이 쓰고 국민의 당에서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태가 산불마냥 겉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뒤늦게 해명을 내놓고, 오해 드립을 시전하나 되돌리기에는 늦어버린 것이죠.
(당의 대응, 해명과 안철수 후보의 반응 등을 보면 이 정책 자체가 얼마나 생각없고 단순하게 접근되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20~30대 여성 분노는 5~60대 여성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어린 자녀 교육비의 무거운 부담과, 딸의 힘든 육아를 지켜보는 할머니가 된 엄마의 감성 공유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언론이 총출동하여 안철수의 해명을 내보내며 옹호해주었으나, 성난 여론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갤럽 기준 4월 6일 문재인 vs 안철수의 남성 지지율은 40% vs 36%, 여성 지지율은 36% vs 35%로 남성보다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4월 11일 '단설 유치원 이슈'가 터지고 나서, 4월 13일 조사는 남성은 39% vs 40%로 뒤집혔는데 반해, 여성은 41% vs 34%로 급격하게 벌어집니다.
그리고 4월 20일에는 남성 지지율 39% vs 35%로 재역전되고, 여성지지율은 43% vs 25%로 10%p 차이에서 18%p로 벌어집니다.
수습에 실패한 겁니다.
현재까지의 결과론에서는 안철수의 '대선 승리 주머니' 중 하나인 '언론을 이용한 여론 왜곡'은 '단설 유치원 이슈'로 인해 실패합니다.
그리고 동화를 보신 분은 기억하겠지만, 백년 묶은 여우는 마지막 주머니만으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첫 번째 주머니인 가시 지옥과 두 번째 주머니인 얼음 지옥의 상처를 안은 상태에서 마지막 불 지옥 공격이 더해져 죽습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주머니의 실패는 두 번째, 세 번째 주머니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고, 안철수에게 이는 곧 대선 실패를 의미합니다.
다음 편에 두 번째 주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