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아들이었던 사도세자는 우리에게 당파싸움에 휘말려서 뒤주에 갇혀 죽은 불행한 세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죽은 이유는 영조에 대한 반역의 혐의. 지금까지의 역사적 평가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쟁에 휘말려서 영조의 미움을 받았으며 친아들을 죽인 영조는 비정한 아버지로 보인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가 죽는 것을 허가한 비정한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 사도세자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 창경궁의 선인문 안뜰이다.
하지만 최근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광증이 심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쳐있는 상태였고 잇따라 궁궐 내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가 죽인 사람의 수는 오늘날 어지간한 연쇄살인범이 죽인 숫자보다 많다. 기록에 따르면 중관, 내인, 노속 등 거의 100명에 이르는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방법 또한 잔인했는데 직접 자신의 손으로 때려서 죽였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 밤 영조는 궁궐 뜰에 엎드린 세자에게 소리친다.
“내가 왕손의 어미를 때려죽이지 않았느냐?”
세자는 영조의 자식을 낳은 후궁을 때려서 살해했다. 심지어는 친여동생 화완옹주에게도 칼을 들이댔고 어머니인 영빈 이씨까지 죽음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사도세자의 흉악한 행각은 왜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에 등극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마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고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에 관한 기록을 없애거나 태워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은 그런 식으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