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에 북한 대표가 판문점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이후 6월에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하기로 했다.
이미 주한미군에 1000명 정도의 전쟁기획 장교가 증파되어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김영삼 대통령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때 연합사령관 게리 럭 대장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북한을 폭격하기로 한 결정을 통보받았으나 그 결정 내용에 대해 한국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당시 연합사 작전참모 프랭크스 소장은 클린턴 행정부의 전쟁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게리 럭의 지시를 받아 전쟁을 기획하면서 한국군 장교들에게 "만일 반대하는 장교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서슬이 퍼런 전쟁 분위기에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장성(육사 18기) 대장도 속수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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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부사령관과 당시 3군사령관인 윤용남(육사 19기) 대장이 이 방안을 "관철하라"고 당시 연합사 지상구성군 선임 장교로 가 있던 정경영(육사 33기)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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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에서 정 중령은 미 공군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걸 열다섯 번 주장했다. 그러나 무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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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 7공군사령부 부사령관(준장)이 연합표적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다. 이 회의에서 또 정 중령이 "연합사령부의 중요 임무는 수도권 방어"라는 점을 환기시키며 "7공군이 그 방어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자 커밍스 대령이 정 중령의 목을 잡고 "조용히 해"라고 소리쳤다. 정 중령이 "한 말씀만 더"라고 사정하며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이 주장을 들은 7공군은 경악했다. 저공비행으로 방공망이 조밀한 북한 장사정포를 타격할 경우 그 생존확률은 50%에 불과하다는 것. 이 때문에 7공군이 "절대로 못한다"며 아우성치기 시작했고 커밍스 대령은 다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날 저녁 "7공군사령부가 난리 났다"는 보고를 받은 프랭크스 장군이 자정쯤에 용산 연합사령관 공관(힐탑)으로 들어갔다 새벽 4시경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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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후 커밍스 대령이 연합사 벙커로 들어오면서 다짜고짜 의자를 발로 찼다. 그리고 정 중령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정 중령 임마(son of bitch)! 너의 명령이 받아들여졌다(your order accepted)"며 그 뒤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놈은 반드시 한국군으로 돌려보내겠다, 연합사에서 꺼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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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1664
박정권 아래 전작권 반환이 계속 지연되는 상황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라 소개합니다.
한편 중령이 자기 계급도 모르고 미군 상관들에게 말대답 한게 아니냐는 반응을 하실 수 있는데,
<게리 럭 대장, 프랭크스 소장> 이 둘이 전쟁 준비를 했고요, 한국 대통령에게 보고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군 <장성 대장과 윤용남 대장> 이 저항하려 하였으나 속수무책이라, 선임장교 <정경영 중령>에게 대안을 관철하라고 지시한 상황이죠.
정 중령이야 당연히 한국군 상관인 <장성 대장, 윤용남 대장>의 지시를 따르지, 프랭크스 소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지요. 중령이 자기 생각 말한게 아니고. 자기 위 두 대장의 뜻을 전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