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도 무디기 때문에 나는 많은것을 보여주지 못했나보다.
그저 투박할수밖에 없었고 한목소리밖에 낼줄 몰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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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피 둘러맨 목도리가 흘러내리면서도 나는 발걸음을 늦출줄 몰랐나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분만실 앞에서 너를 기다린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몇번이나 되뇌였다.
10개월 간 발길질만 느꼈던 너를, 드디어 한고사리 움켜질수 있었다.
나만을 위해 살던 자존심,치기어린 위엄....이제는 모두 내려놓는다.
너만을 위해 살리라..너만을 생각하리라.
회한과 찬미 섞인 방울방울이 너의 손위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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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가 내팔에안겨 잠을 잔다
숨소리 심장의 두근거림,얼굴의 찡그림,움찔거리는눈,귀여운 몸부림
나는 아기를 들여다봄으로써 내자신을 바라본다.
나와 내이웃과 모든인간들이 갖고있는 따뜻함이 아름다움이 살아있음이
ㅇㅇ로 인해 또렷이 느껴진다.
태어나기전부터, 태어난다음 이순간까지 한해가 모두 ㅇㅇ로 부터 시작됐고
모든일이 ㅇㅇ를 통해서였다.
아기를 통해 인생의 눈은 이만큼 넓어지는가....
백일이 지났다.
바로 엊그제 배꼽에 흰붕대를 감고 쪼글쪼글한 살덩이 힘이 없어
축져진 얼굴로 시트에 누워있는 내곁에 왔던 ㅇㅇ !
소리를 지르고 눈을 맞추어 옹알이를 해대어
나를 미치게 한다...
시간은 활화산 같다.
몇일전 국민학교 입학식을 보며 훗날 내모습 (학부형이될)을
연상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그날도 멀지 않았다.
느낄수가 있다.
精.
愛.
88년 3월의 한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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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않는다.
으슬한 감기기운인지도 모를 한기에 기다림에 지쳐 일찌기 잠에 든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때아닌 식은땀과 하혈에 일어나 본다.
새빨갛게 물든 시트와 잠옷 그리고 핏덩이...
홀로 눈물과 핏물로 범벅이 된 핏덩이를 끌어안고 나는 집뒤 야산으로 향한다…
나의 아침은 핏덩이가 잠든 땅위에서 핏물과 눈물
그리고, 너를 계속 쏟아야만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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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쉬이 덮지 못하고 계속 머무른다는것은 힘든것이란다.
이젠 쉬이 보이지도 않는 두눈으로 너의 등을 쓰다듬을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단다.
너는 어떻게 살았니, 너는 무엇을 꿈꾸었니, 아직도 우린 서로 대화가 부족한지도 몰라.
애야, 그래도 항상 세상을 더 조심히 살렴, 언제나 차조심하고, 사람조심하렴,
늙그막의 나의 마음은 언제나 항상 똑같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