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과는 관련 없는 비전문인이 쓰는 세종시대의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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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5C 과학사
과학사에서 15C는 근대과학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서방 라틴의 문화는 아직 부족하였고, 아랍의 문화는 차츰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 중국 과학기술은 송.원 시대의 창조적 발전을 정점으로 차츰 기울어지다 명에 이르러 그 발전이 거의 멈추었다. 이런 시기에 우리나라는 세종이라는 희대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1-2. 세종시대의 과학
세종의 시대라 함음 1418년(태종 18년)에 시작되어 1450년(세종 32)에 막을 내릴 때까지 32년간을 말한다. 21세의 젊은 학자인 세자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면서 조선왕조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수준 높은 학문과 과학문화 그리고 기술이 꽃피었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훌륭한 발전을 보여주었고, 서방세계는 물론 아랍세계와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성과가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진 적은 우리나라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 이것은 조선의 독창적인 과학기술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15C 전반기의 과학기술사에서 세종시대와 같은 유형의 발전은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로 주목을 받을만 하다.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은 송.원 시대의 중국과학을 모델로 한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그 시기에 앞서 있던 송.원 시대 과학기술의 성과를 적극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세종시대의 문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원나라의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널리 알려졌듯이 원대의 과학기술은 아랍과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징기스칸의 대제국 건설로 인하여 원나라에는 아랍 과학자들이 많은 이슬람 과학문헌들을 가지고 들어와 있었고, 그중에는 과학기술 관료로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아랍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그 내용 중에는 이집트.그리스.로마 시대에 축적된 과학기술도 담겨 있었다. 특히, 천문역법 분야는 세종시대 과학자들을 매료시켰다.
세종시대의 과학자들은 이런 원나라에 스며들어 있던 아랍의 기술들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아랍의 과학문명은 사그라들어 가고 있었다. 당시 원나라의 기술을 이어받은 명나라가 과학적인 면에서 많이 앞서 있게 되었고, 조선은 이런 명나라의 기술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다시 만들어 내었다. 새롭게 구축된 새로운 과학기술의 탄생을 이끌어낸 것이다.
1-3.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이 15C에 끼친 영향력
세종 때에는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집적된 과학기술을 결산함으로써 자주적 성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종시대의 과학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독자적인 문화를 전개해나갔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런 세종시대의 과학과 기술이 아랍과학처럼 외부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상당히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곤 하였는데, 이는 세계적으론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동아시아 과학기술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고려시대부터 발전해온 청동활자 인쇄기술은 조선조에 들어서 더 크게 발전하게 된다. 이런 발전은 16, 17C 일본의 청동활자 인쇄기술을 일으키게 했고, 중국의 인쇄문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서방의 인쇄술보다 몇 십년이 앞선 기술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세종시대의 과학은 동아시아를 제외한 나라에는 그다지 많은 영향을 주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알려지지도 못하였다. 이는 세종시대의 과학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세종 이후 다른 지도자를 왕으로 세우며 지내온 조선의 역사에서 과학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쇠퇴기를 거치며 뒤떨어져 갔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어 가자 우리나라 학자들조차 세종시대 인식에 한계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종시대의 과학은 외국 학자들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다. 세종시대의 과학은 1930년대 이후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서 크게 각광받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과학적 업적으로 높이 평가된 과학기술로 인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아주는데 성공을 했음에도, 그에 대한 학문적 고증이나 과학사의 연구방법에 의한 객관적인 평가와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하게 되었다. 다만, 자랑스러운 우리역사의 하나로 우리 책 속에서만 빛나는 것이다. 분명히 이 부분은 보안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 특히나 자랑할 만한 것들은 많이 알려야 한다. 이것은 민족적 자긍심 부분에서 중요한 것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를 세계 속에 광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을 계속 우리들의 영웅으로만 남게 하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있다.
어찌되었든 이후 세종시대의 과학은 동아시아 과학기술사와 의학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연구 과제론 떠오르게 된 것은 사실이다. 1944년과 1946년 홍이섭의 [조선과학사]에 이어 1960년대 이후 전상운의 연구(세종에 대한 서적에 전상운씨의 저서가 많이 존재한다.)가 외국학계에 발표되면서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의견과 평가는 학계의 공감을 얻었다. 다른 나라 학자들이 우리의 과학과 역사에 작은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후 이도오, 야마다 등의 [과학사기술사사전]은 세계 과학기술사 속에 세종시대의 창조적 성과를 부각시킴으로써 우리는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확인 받을 수 있게 되었다.
p1. [과학사기술사사전]에서 그들이 작성한 연표에 따르면,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주요 업적으로, 동아시아에서 29건, 중국이 5건, 일본이 0건이며,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이 28건으로 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세종시대 과학기술이 15C에 이루어진 다른 모든 나라의 성과를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호, [조선과학인물열전] (휴머니스트, 2003년)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의 과학문화재]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 2004년)
전상운, [한국과학사] ((주)사이언스북스, 2000년)
전상운 외,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 (해나무, 200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세종시대의 문화] (태학사,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