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박성룡, 동행
두 사람이 아득한 길을 걸어왔는데
발자국은 한 사람 것만 찍혔다
한때는 황홀한 꽃길 걸으며 가시밭길도 헤치며
낮은 언덕 높은 산도 오르내리면서
한 사람 한눈팔면
한 사람이 이끌며 여기까지 왔다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달프기도 했던 평행의 레일 위에
어느덧 계절도 저물어
가을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김영무, 반딧불
서산마루에 초승달
희미한 호롱불처럼 걸려 있어
깜깜하던 하늘 전체가
아늑한 오두막 되면
등잔에 기름 떨어져 불도 못 켜고
가슴만 졸이던 개똥벌레 한 마리
비로소 마음속에
반딧불 밝히고 길을 찾는다
정끝별, 입동
이리 홧홧한 감잎들
이리 분분히 소심한 은행잎들
이리 낮게 탄식하는 늙은 후박잎들
불꽃처럼 바스라지는
요 잎들 모아
서리 둔 마음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몸속부터 꼬숩겠지요
노향림, 개밥바라기별
고만고만한 살붙이들과 함께 개울가에 살았네
가난한 시절 마당가 개집 앞에
찌그러진 양푼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네
오늘 그 속에 가득히 뜨는 별을 보네
바람 한 점 없이 놀 꺼진 서녘 하늘
이팝꽃 핀 사이 불쑥 얼굴 내민 고봉밥별
그 흰 쌀밥 푸려고 깨금발을 내딛었다가 그만
돌부리에 넘어지고 말았네
허공에서 거적 같은 어둠 한 잎 툭 지고
아직도 마른하늘에서 굴러 떨어지는 아픈 별 하나
그 별 받으려고 나는 두 손 높이 받쳐 들고 서 있네
어머니가 차려 놓아준 하늘밥상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흰 고봉 쌀밥 한 그릇
정복여, 업동이풀
어디선가 풀씨 날아와
내 창틀 위에 자리잡았다
바람이 겨우 뭉쳐놓은 흙먼지 위애
어떻게 그 몸 심었을까
씨앗 속 흰 실핏줄 어기영차 밀어내더니
오늘 보니 작고 둥근 세계 하나
어직 누군인지 모를 저 탄생을
저 연둣잎이
뭐라고 말할 듯
두 입술 같은 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