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세 권이었는데 세 편으로 불어난 것은 뭐 넘어가지요
1. 조선반도사
우선적으로 조선반도사는 이병도 단독 저서가 아니라 조선사 편수회의 저서입니다, 그리고 조선반도사 = 조선사입니다.
사실 처음 이야기를 듣고 제일 당황 했던게 역주 삼국사기가 아니라 조선 반도사 였습니다.
뭐 더 할 말이 없어지니 참고할만한 링크 하나만 넣고 넘어가겠습니다.
http://contents.nahf.or.kr/files/pdf/dn/dn_023_0100.pdf
2, 역주 삼국사기
이 저서는 정확히 부르자면 국역 삼국사기로 1977년에 이병도가 삼국사기에 주석을 달아 출간한 책입니다. 원래는 41년에 처음 출판한 이래 해방 전까지 3권이 나왔으나 화재 등의 사고로 빛을 못보다 56년에 다시 출판되었지만 전체적인 주석은 77년 국역 삼국사기로 완성된 저서이지요,
아무튼 이 책은 비판받는게 사실입니다만 그 것은 식민사학적 내용에 근거한것이 아니라 오역때문입니다.
370여군데나 있다고 하니 문제는 꽤나 심각할 따름인데 문제는 식민사학적 요소는 없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번역본을 펴낸 이재호나 식민사학을 대차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한국 사신론을 저술한 이기백 모두 이 책을 읽어보았던 사람들인데 이 책을 언급할때 식민사학적인 내용은 언급조차 안됩니다.
사실 식민사학적인 측면에서 저술할수도 없는게 기존의 삼국사기에 역주 즉 주석을 단게 전부입니다.
가령
진흥왕(眞興王) 九年春二月 백제를 침입한 고구려를 공격하다 (548년 2월 미상 음력)
9년 봄 2월에 고구려가 예 인(穢人) [譯註 001] 과 함께 백제의 독산성 (獨山城) [註 001] 을 공격하였으므로 백제가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은 장군 주령 (朱玲) [譯註 002] 을 보내서 굳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공격하였는데, 죽이거나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註 001 《삼국사기》권37, 잡지(雜志)6, 지리(地理)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 조에 기록된 지명이다. 독산(獨山)은 고산(孤山)과 같은 뜻의 지명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으로 비정하고 있다
(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 407쪽 |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717쪽 주 132).
요런 식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서 삼국사기를 보시면 쉽게 찾아보시고 확인하실수 있으실겁니다.
식민사학적 입장에서 저술을 하려면 결국 원문을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고 주석을 다는데 그것도 뒤에 밝혀졌지만 연도가 틀리거나 단어를 오역하거나 하는 수준에서 무슨 식민사관적인 개입을 엿볼수 있을까요?
3. 조선사대관
1948년에 나온 저서입니다.
역시나 식민 사관과는 거리가 먼 책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릴케님과 같은 측면에 계시는 이덕일도 이거 식민 사관으로는 안봅니다. 노론의 뿌리를 잇는 증거로 보지요,
책을 부분이나마 옮긴 블로그가 있어 링크를 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http://coreai84.egloos.com/10582752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을 시쳇말로 대차게 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대의 혼란속에서 우리 민족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를 고찰하고 있지요,
추가>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3&docId=525880&mobile&categoryId=1593
조선사대관 = 한국사대관입니다. 대체적으로 어떠한 책인가를 살펴볼수 있을것 같아 링크를 가져와봅니다.
그렇게 기다려 얻은 소득이 이렇다니 이런 말은 그렇지만 겨우 이거 하나 알려주기 싫어서
내가 무슨 말했는지 말 한 내 자신도 잘 모르겠으니 자료를 모으겠다, 기다려 달라
이게 주제랑 맞는 자료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줬으니 할거 다했다, 트집잡지 말아달라,
라는 논리를 고집하셨는지 참 그렇네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이병도가 식민사학자라는 또 하나의 논리가 논파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