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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이 식빵들에게 이야기 하는 대륙 백제 유적
게시물ID : history_9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풍림화산2
추천 : 9/13
조회수 : 152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5/13 18:03:29

중국 당대에 최고의 지식인들이 기록한 중국 정사에 기록된 대륙 백제 기록도 믿을 수 없어..

왜? 식빵이니까..

 

삼국사기의 대륙 백제도 못 믿어?

왜? 식빵이니까

 

그저 이야기 하는 것이 중국에 백제 유물 없어.. 그 정도 수준인가..

백제의 국력을 가늠해보려면 풍납토성 전체의 규모를 봐야지 어째서 어떻게 고증이 되었는지

정체도 불분명한 백제 왕궁.. 당시에 일본 왜왕들은 초가집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해야 하는건지

그런 유치한 이야기는 하기 싫고.. 식빵들의 유일한 희망..문헌에는 있지만 어쨋든 유물은 없잖아?

뭐 이런 해괴망칙한 논리가 있는지 한산도 대첩은 조선 일본 중국 여러 나라 문헌에서 기록되어 있지만

파손된 일본 전함 유물이 없으니 없던 사실이 되는건가? 나오느니 한숨이오.. 어쨋든 식빵들의 유일한 희망

문헌은 있지만 유물은 없잖아? 의 논거를 없애서 미안하지만..

 

 

중국 요녕성에는 라마동 유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중국 학자들이 처음에는 선비족 유적이라고 생각했다가

한반도 남부 김해 대성동 유물들과 여러가지로 비슷해서 부여인의 유적이라고 생각을 바꾼 것이 있지

 

아래가 그 내용 ..

 

요녕성 북표시 라마동(喇麻洞) 유적 대성동 유적과의 관계
心濟 2010.08.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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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四國)시대 정립을 위해 김해문화원에서 주최하는 가야사국제학술회의가 4월 30일(금) 국립김해박물관 강당에서 막이 오른다. 올해로 16회째인 이번 가야사국제학술회의에는 우리나라에서 4명, 일본과 중국에서 각각 2명의 전공 학자가 참석해 오는 5월 1일(토)까지 이틀간 “대성동고분군과 동아세아”라는 주제를 놓고 논문발표와 종합토론을 벌인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인 대성동고분군발굴 2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첫날인 30일에는 대성동고분군 발굴의 산증인인 신경철교수를 비롯하여, 5명의 국내·외 학자들의 발표가 있다. 그중 중국 길림대교수인 朱泓교수의 ‘라마동 삼연문화 주민의 족속 문제에 대한 생물고고학적인 고찰’이 주목된다.

 

주홍교수는 라마동 무덤을 삼연시대 모용선비의 무덤으로 보는 중국의 일반적인 학설을 부정하고 새로이 라마동 무덤의 주인을 형질인류학 등 인골분석결과를 토대로 하여 제2송화강유역에서 온 부여인으로 추정하였다. 

 

중국 북표 라마동유적은 4세기대 가야에서 출토되는 마구 를 비롯한 북방계유물의 원류 중 한 곳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라마동유적의 족속문제는 가야문화의 계보 파악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앞으로 국내외의 뜨거운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날인 5월 1일에는 국내학자 2명의 발표와 종합토론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 발표 중 대성동고분발굴의 주역 중의 한명인 경성대학교 김재우 학예실장은 ‘금관가야의 갑주’에서 대성동고분군의 갑주(갑옷과 투구) 부장이 복천동고분군보다 많고, 4세기후엽의 대성동2호에서 소찰(작은 비늘)과 소형 소찰의 부속갑을 동반하는 괘갑(철비늘갑옷) 및 소찰 볼가리개가 부착된 만곡종방판 투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대성동집단은 찰갑(가죽제 갑옷과 부속 철제갑옷을 갖춘 갑옷)과 괘갑 부장을, 복천동집단은 판갑 부장을 선호하였는데, 대성동집단은 찰갑을 실용품, 판갑을 의장용으로 사용하였고 복천동집단은 판갑을 실용품과 의장용으로 구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는 종래의 통설을 깨는 새로은 학설로 4세기말에 복천동집단이 금관가야권역으로부터 이탈하였고 이 때문에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시 대성동집단이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논문발표 이후에는 종합토론이 마련되어 있어 대성동고분군과 동아세아에 대한 밀도 있는 토론이 기대되며 이를 통해 한국 고대사를 삼국시대에서 사국시대로 개정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관심있는 일반시민·학생 등 누구나 참석 가능하며 마지막날 토론시간에는 평소 가야사에 관해 궁금했던 것을 전문학자들에게 직접 질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http://tour.gimhae.go.kr/program/multibbs/out.jsp?m=M704&gcode=M70401&idx=129

 

 

요약하면 김해 대성동 고분의 유물과 라마동 고분의 유물은 같은 게통의 유물이다

유물뿐만 아니라 형질 인류학이나 유골 분석을 하니까 한국 사람 계통이더라

 

그런데 어째서 가야 지역이냐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부여가 가야를 세웠다는 것은

무리한 가설인 것 같고

 

이런 가설을 세우는 이유는 백제가 대륙에 진평군 진평현을 세우던 전성기 근초고왕

근구수왕 시절에 실질적으로 신라를 백제 왕족이 다스리는 속국으로 만들었던 것을 간과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함..

 

 

 

양직 공도에는 왕의 자제 종족을 파견해서 다스리는 것을 담로라 하였는데 그 담도를 나열하는데 거기에 신라의 다른 이름인

斯羅가 있음. 신라왕족 출신 김부식이 적은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백제는 신라에 백제 왕족을 파견하여 통치하였고

그로 인해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부여계열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보는 것이 부여가 가야를 세웠다는 가설보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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