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습니다.
그것은 미숙할 때,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죠.
그리고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우리 모두는 불길이 지나간 재를 주워 담아 다음 사랑에 대한 양분으로 삼죠.
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능숙한 범죄자에게도, 첫사랑은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든 홧김에
감정을 가누지 못했든
궁지에 몰렸거나
타인의 강요로 억지로 누군가를 해하게 됐든 간에
누군가를 처음 죽이는 순간은 반드시 우발적입니다.
처음 그 순간은, 짝사랑에게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을 꺼낸 처녀총각처럼 손이 자글자글 떨립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짜릿하고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되죠.
영원히 이 순간이, 이 감정이 계속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다섯 번째의 살인은 반드시 계획적입니다.
아니, 계획적이어야 합니다.
계획 없이 감정을 제멋대로 휘두른 살인범에게는
다섯 번씩이나 기회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ㅡ 좋은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이기도 합니다.
감정적이지만, 감정적이지 말 것.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간직하되, 자신을 태우지 않도록 할 것.
마치 옛날 아궁이의 불씨처럼, 꺼지지는 않되 부엌을 태우지는 않도록.
이 위험하지만 짜릿한 취미를 이어갈 수 있는 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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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마법 같은 일이 있을까요?
첫번째 살인은 그렇게 마법 같은 일입니다.
우연히 내 감정을 내질렀지만, 나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연애에 능숙해 질수록 그런 행운은 점점 통하지 않게 되죠.
그렇다면 학습을 해야죠. 상대방을 잘 관찰하고, 내 성향을 파악한 뒤에,
고백이란 건 일종의 세레머니라는 걸 이해해야만 성공률이 높아지잖아요?
살인도 정확하게 이와 닮았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의식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쿠팡맨이 아니기에, 절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줄이 긴 지하철 승강장에서
교통체증이 심한 성산대교 위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맛 없는 밥을 먹었을 때나
맛 있는 밥을 먹었을 때
재채기처럼 불쑥 찾아옵니다.
그럴 때 감정에만 몸을 맡겨버린다면, 절대 좋은 엔딩이 끝나지 않겠죠
오늘 날은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CCTV가 골목마다 빼곡히 있을뿐만 아니라, 누구나 녹화가 가능한 휴대기기를 들고 다니기에
영상 기록으로 남기기 편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기술은 퇴보 없이 계속 발전하겠죠.
화성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33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았던 이춘재?
요즘이었다면 한 달 안에 잡혀서 불알이 뭉개지도록 두들겨 맞았을 겁니다.
그래서 준비가,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지난한 고난 속에서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잊지 않도록
처음 그 새끼를 죽이고 싶단 생각을 잔잔하게, 끊어지지 않게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부디 명심하세요.
감정적이지만, 감정적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