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팟캐스트 [In the Dark]과 위키에 기초해 작성된 창작글임을 밝힙니다.
* RIP Jacob Wetterling
사진 속 소년은 제이콥 웨털링(Jacob Wetterling), 미국에서 1994년에 성범죄자 또는 유괴 전력이 있는 자의 주소를 등록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주정부에 촉구하는 내용의 '제이컵 웨털링 아동에 대한 범죄 및 성폭력 범죄자등록법'(이하 웨털링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된 1989년 10월 22일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납치, 실종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당시 나이는 11세.
1989년 10월 22일 일요일,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 조셉에 살고 있던 11세의 소년 제이콥은 오후 9시가 조금 넘어산 시각 자신의 동생 트레버(10), 자신의 친구 애런(11)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비디오를 빌리러 편의점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1.5마일 정도로 옥수수밭이 있었으며 코스는 거의 직진인,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소년들은 돌아오는 길에 짙은 파란색의 차를 지나쳤습니다.
제이콥의 동생 트레버는 옥수수밭의 옥수수 줄기들이 부딛히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오후 9시 20분). 검은 마스크를 쓰고, 총을 들고 있었죠. 그는 아이들을 멈춰 세운 후 자전거를 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버리자 이번엔 도로에 얼굴을 대고 누우라고 한 후,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나이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가장 어린 트레버에게 숲 속으로 뛰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뛰지 않으면 총으로 쏘겠다고 위협도 했습니다. 트레버가 도망치자 남자는 남겨진 두 소년에게 얼굴을 보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얼굴을 본 후 남자는 제이콥을 선택했고 애런에게는 트레버에게 했던 위협을 반복했습니다. 애런과 트레버는 정신없이 그 장소에서 50-75 야드를 뛰어 벗어나고 나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와 제이콥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이콥을 본 것도 그것이 마지막이었죠. 아이들은 다시 뛰어 웨털링 가족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이콥과 트레버의 부모님인 제리, 페티 웨털링은 파티로 외출 중이었기 때문에 웨털링 아이들을 베이비시팅 중이었던 이웃 저작 씨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연락해 웨털링 가족의 집으로 오게 했고, 저작 씨는 바로 911에 납치 신고(오후 9시 32분)를 하고 7분 후 보안관 브루스 베치톨드가 도착합니다. 그리고 오후 열시 정각, 헬리콥터와 경찰견들이 동원된 수색이 시작되지만 다음 날 새벽 세시 정각,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수색이 중단됩니다.
여기까지가 제이콥 웨털링 납치, 실종사건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그 후의 이야기들-- 이 사건에 대한 수색이 미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수색 중 하나였다던가, FBI까지 동원되었다던가-- 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제 사건이었으니까요. 미네소타 주 전체가 제이콥의 납치, 실종에 슬퍼했고, 1989년 후반 지역 라디오는 제이콥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던 Red Grammer의 , The Missing Children's Song 이라고 불리는 로 채워졌습니다. 제이콥과 비슷했던 연령대의 아이들과 그 아래 연령대의 아이들은 제이콥의 이름을 듣고 자라났고, 미국은 아동 납치,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이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쪽으로 찬성이 몰리게 됩니다.
이 사건은 1989년 이후 2016년 지금까지, 27년간 미제 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의 그 누구도 이 사건이 해결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는 같은 지역, 제이콥이 납치당하기 9개월 전에 일어났던 12세 소년 성폭행 사건이 DNA 분석을 통해 범인이 밝혀지면서 부터였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제러드 샤이럴씨는 1989년 제이콥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그를 성폭행했던 남자와 제이콥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일 것이라고 확신했던 경찰들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다 잡은 물고기를 두 번 놓쳤고(제러드씨의 사건, 제이콥 웨터링 사건) 범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도 불구하고 27년간을 자유롭게 살게 됩니다.
제러드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이콥 사건을 들은 후부터 그는 그 사건이 자신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했고, 수 년이 지난 후 한 블로거의 접촉으로 그 때 그 시절 자신과 제이콥이 살던 지역에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한 소년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콜드 스프링(제러드 씨 사건이 일어난 지역), 세인트 요제프(제이콥 사건이 일어난 지역), 페인즈빌(나머지 사건들이 일어난 지역), 총 세 지역이었죠. 그는 점과 점들을 연결하며 피해자들을 만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만의 수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제러드 씨의 노력으로 경찰은 피해자의 옷에서 검출된 DNA로 범인을 잡게 됩니다. 대니 하인리히, 페인즈빌에 살았던 53세의 노인이었죠.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사건으로는 하인리히를 잡아들일 수 없었던 경찰은 그의 집에 쌓여 있던 아동 포르노물로 기소했고, 그에게 제이콥 사건의 범인이냐고 취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27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은 범인이 쉽게 범죄를 인정할 리 없죠. 끝까지 자신의 죄를 부정하던 하인리히는 제이콥 살해에 관해서 죄를 묻지 않겠다는 딜을 경찰 측에서 제시하고 나서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법정에서 그 날의 범죄를 고백합니다.
27년 만에, 소년은 그 날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이콥은 그 날 대니 하인리히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총으로 살해당했습니다. 대니 하인리히는 제이콥의 사체를 이웃(댄 래시어)의 사유지에 묻었고, 수 년 후에 다시 돌아가 바람과 동물들에게 파헤쳐져 제이콥의 점퍼와 뼈가 보이자 좀 더 깊게 구멍을 파 다시 묻었다고 자백했습니다.
경찰은 여러 번이나 대니 하인리히를 잡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이나 그를 놔주었죠. 경찰서에 불러 취조를 하고 피해자(제러드)가 여러 명의 남자들의 사진들 중 용의자로 지목한 후에도 말입니다. 그의 짙은 파란색 차를 수색하고서 피해자의 진술 중 스캐너가 있었다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말이죠. 그리고 그를 잡지 못한 27년 간, 가장 중요한 목격자였던 댄 래시어를 제이콥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십년간을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게도 했습니다. 자백조차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를 눈감아 주겠다는 딜을 제시하고 나서야 받아낼 수 있었죠.
같은 시기, 가까운 세 지역에서 남자 아이들이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했던 사건들이 한 두 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그 사건들을 연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건 중 하나의 피해자가 나선 후에야 실마리를 잡아 오래된 미제 사건을 풀 수 있었고, 제이콥은 27년이 지난 후에야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7년만에야 이루어진 그의 장례식엔 수천명이 모여들었고, Red Grammer가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노래인 을 불렀습니다.
웨털링 가족은 27년간 이어진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제이콥이 편안히 잠들기를, 웨털링 가족에겐 행복을 빕니다.
대니 하인리히는 최대 20년을 교도소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나이가 50대 초반이니 분명 죽은 채로 교도소를 나오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에게 딜을 제시했던 검사는 자신의 결정이 최대한이었다고, 그를 잡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말합니다.
만약 경찰이 27년 전, 다 잡았던 물고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미국은 대니 하인리히에게 제이콥 웨털링 살해에 대한 죗값을 물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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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대한 민간 수사를 진행중인 팟캐스트 에선 이 사건을 굉장히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이 글에선 팟캐스트의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담았지만 모든 것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