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작고한 신해철씨의
날아라 병아리를 듣다가 옛 생각이 나서 써보는 썰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기억이다.
유년시절의 나는 남다른 가정사 덕분인지 유달리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여느 다른 아이처럼 밖에서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보다는
홀로 집에서 책을 읽거나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며 공상을 하는 시간이 참 많았다.
당시의 초등학교 앞에는 컵 떡볶이, 피카츄돈까스 등 불량식품을 비롯해
이런저런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팔았었고 때로는 이벤트성으로 솜사탕 아저씨
새끼 메츄리, 새끼 오리, 병아리를 팔았던 아줌마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오란 분말 형태의 먹이와 똥으로 범벅이된
누우런 연갈색 상자속에 한날 한시에 태어난건지
콩나물시루마냥 빼곡하게 몸을 담고 있는 작고 어린 동물들.
그 동물들은 마리당 100원에서 500원까지 각각의 가격이 매겨지어 판매되고 있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면 작고, 어여쁘고, 아련함이 드는 그 기분을
좀 더 내 마음속에 품어보고자 나 역시 병아리를 여러번 사온적이 있다.
매겨진 가격을 아줌마에게 지불하면 작은 손가락이 지목했던 노란 털뭉치는
연청색 투명 봉투에 담기고 웃돈을 더 지불하면 박스에 담겨진
병아리들이 먹고 있던 정체불명의 먹이도 한봉지 더 받아올 수 있었다.
어린 마음만큼 생각도 어려서였을까.
그렇게 사온 병아리들은 참 병약하고 오래가지 못하였다.
빠르면 하루, 이틀, 오래가면 1주일만에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이별로 아로새겨졌다.
첫 이별은 굉장히 슬펐었고 많이 울었다.
두번째 이별은 그보단 덜 슬펐었고 덜 울었다.
세번째.. 네번째.. 그 후부턴 점점 무뎌지더라.
데려와봐야 나 말곤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병아리도 행복하지 않았을텐데 어린 이기심에
적지 않은 병아리가 계속해서 우리집에 왔던 어느날
참으로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흐드러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또 그렇게
한마리의 병아리는 세상을 떠난듯 축 쳐져 굳어 있었다.
더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속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작별인사를 하게된 병아리를
평소 좋아하던 향이 나는
비누로 구석구석 칠하고 깨끗하게 씻겼다.
그리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따뜻한 햇살냄새 담아가라고
볕이 잘 드는 내방 창문가에 잠시 두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동안 tv나 보자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좋아하는 만화프로그램을 틀었다.
어느정도나 만화에 열중해 있었을까
tv속에서 흘러나오는 만화소리 너머로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놀라운 소리가 들려왔다.
"삐약 삐약"
내 눈은 만화를 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내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햇살속에서 빛나는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을
비누향기를 머금고 더욱 더 뽀송뽀송해진 노오란 털을
언제 그랬냐는듯 병아리는 두 다리로 우뚝 서서
호기심 많은 두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나는
그 날 저녁 슈퍼로 달려가 용돈을 몽땅 털어서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사다가 병아리와 나눠먹었다.
그리곤 저녁늦게 집에 돌아온 엄마 아빠와 저녁밥을 먹었고
뛰어다니는 병아리와 함께 tv를 보며 기분좋게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전날과 마찬가지로 병아리는 추욱 쳐져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죽어버린 병아리를 묻어준지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그 때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하지만 종교도 없고, 미신도 안 믿는 내게 일어난 유일한 기적을
사는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