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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게시물ID : lovestory_908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54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0/11/01 23:21:4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나희덕, 산속에서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2.jpg

 

구상, 꽃자리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그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3.jpg

 

윤동주,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4.jpg

 

정호승, 도요새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

수차가 함부로 버려진 소금밭에

눈발이 빗금을 치고 지나가다가

무너진 소금창고 지붕 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

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염부들은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

화투나 치고 소주나 마시고

길가의 칠면조만 저 혼자 붉다

만조 때 갯벌 가득 일몰이 차오르면

쫑쫑 찡찡 쉿 소리치며

일제히 염전으로 날아오르던 나의 사랑은

언제 다시 소금으로 빛날 것인가

나는 다시 허공에 무수히 발자국을 찍는다

멀리 새만금 방조제가 가물거린다

칠산 앞바다도 수평선이 사라졌다

염전에 물을 대던 경운기도 녹슨 잠이 들고

옥구염전에 눈은 그치지 않는데

나는 몇 마리 장다리 물떼새와 함께

외로운 소금밭을 서성거린다

나의 발자국이 소금이 될 때까지

나의 눈물이 소금이 될 때까지

 

 

 

 

 

 

5.jpg

 

김광섭, 꽃 단상(斷想)




꽃은 영감 속에 피며

마음을 따라다닌다

사람이 외로우면

사람과 한방에 같이 살면서 외롭고

사람이 슬프면

사람과 같이 가면서 슬프다

이런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

사랑이 있고 하늘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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