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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게시물ID : lovestory_907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0/28 11:17:28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심보선, 삼십대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2.jpg

 

박진성, 귤




귤 몇 개 보도블록을 굴러떨어진다

껍질 속 열매들의 수런거림을 나는 듣는다

노을에 녹녹하게 달궈진 귤 하나 집어 들었을 때

참을 수 없어 터져 버리는 껍질 속 알맹이들의 환호를 나는 듣는다


그것들을 감추려고 귤은 보드라운 껍질 둘러메고 있었던 거다

당신의 가슴 한가운데 쭈욱 찢었을 때

오래되어서 시큼하고 맹글맹글하게 익어 있는

당신의 마음도 따라온 것이다


당신의 심장 여러 개를 주워 먹었던 거다

 

 

 

 

 

 

3.jpg

 

이기인, 몸살




늦봄과 초여름 사이 찾아온 감기가 나아질 무렵

하루 세 번 챙겨먹은 약봉지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스럭부스럭 찾아오신 어머니가 감기를 가지고서 고구마 줄기처럼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감기가 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소나기가 좀 억세게 오는 것 같다

윗목에 앉아 억세게 비를 맞고 계신 큰 잎사귀의 몸살을 본다

 

 

 

 

 

 

4.jpg

 

김원각, 까치둥지




나도

허공 한쪽에

집 한 채 짓고 싶다


땅에서

괴로운 마음

저 높이만 올려놓아도


세상일

따라오다가

절반 이상 끊어질 것을

 

 

 

 

 

 

5.jpg

 

신영배, 시인의 말




사라지는 시를 쓰고 싶다

눈길을 걷다가 돌아보면 사라진 발자국 같은

봄비에 발끝을 내려다보면 떠내려간 꽃잎 같은

전복되는 차 속에서 붕 떠오른 시인의 말 같은

그런 시

사라지는 시

쓰다가 내가 사라지는 시

쓰다가 시만 남고 내가 사라지는 시

내가 사라지고 시 혼자

컴퓨터 모니터 속 A4용지 왼쪽 정렬

글꼴 신명조 글자 크기 12에 맞춰

한 줄 한 줄 써내려가거나

유품을 수거한 비닐 팩 속에서

뿌려진 피와 함께 수첩의 남은 페이지를

쓱쓱 써내려가는

그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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