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구.. 생각해보자면 지난 17년간 계속 누적된 일임.
17년전 나랑 내 아내는 어떤 아시아계 부부한테서 한 남자아이를 입양했어. 솔직히 그 부부는 아기를 가지기엔 조금 나이가 어려보였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분명해서 꼬치꼬치 캐묻지는 못 했어. 난 그냥 아들을 얻는다는 사실이 기뻣기 때문에 그 부부의 과거는 별 신경을 안썼어. 중요한건 그들이 건강하다는 것과 나에게 엄청난 선물을 준다는 것 아니겠어? .... 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X됐다는 걸 알았어야 했어.
입양절차를 받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백인 아이를 입양받는 것보다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받는게 훨신 간단하자나? (이건좀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우린 아이를 빨리 받고 싶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이 아이를 입양했지.
어쨌거나 우린 이 이쁘고,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아이를 데려왔어. 한눈에 반한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
근데 한 여덟달쯤 지나자 드는 생각이, 우리 백인가정에서 자라면서 아이가 자기 뿌리와 단절되지 않을까, 싶더라구. 다행이도 우린 차이나타운 옆에 살어. 그래서 지난 17년간 우리 부부는 우리 애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을 전폭으로 지원해줬어. 중국어 학원도 보내고 (영어랑 중국어를 5살때부터 유창하게 했다니까!) 중국인 '이모'랑 '삼촌'들도 사귀어서 여러가지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축제때 같이 지냈지. 8살때부터는 2년에 한번씩 중국에도 데려가줬어. 우리 애가 완전 중국인이 되도록 강요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애가 완전 백인이 되는건 원치 않았거든.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
우리 애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야. 단 하루도 난 우리 애를 쳐다보고 미소를 짓지 않은 적이 없어. 난 우리 아들을 정말 사랑해...
하여튼 우리 애가 17살이 되고, 대학원서접수랑 장학금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아빠로써 이것저것 도와주게 됬어. 그러다가 서재로가서 오래된 파일들이랑 입양서류들을 찾고 있었는데....
하...
눈깔을 뽑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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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의 친부모들 성이.... 박 이랑 김이야. 씨발. 씨팔. 씻팔!
혹시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설명하자면... 그건 한국인들 성이야. 내 아들은 중국인이 아니었어. 좁쌀만큼도.
걔는 한국인이야.
항상 중국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살아서 그랬나, 그냥 지레짐작해버린거야. 모든 동양인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왜 내 애한텐 그랬을까? 난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 아들을 데리고 있는거야.
다시보니까, 우리 애는 완전 한국인이랑 똑같이 생겼어! 구글에서 찾아본 한국 남자들이랑 비교해도 그래. 각진 턱에, 그리 작지 않은 눈이며, 등짝이 넓은 것 하고. 어떻게 이 생각을 못했지? 근 이십년간 난 내 아들에게 자기 뿌리도 아닌 것을 네 것이라고 들이밀고 있었던거야.
모든게 엉망이야. 완전 좆됐어. 난 진짜 완전 상병신에 개병신이라고 해도 모자라. X도 모르는 백인 자유주의자 꼴이지나. 씨발...
아직 내 아들이나 아내한테는 이 얘길 안 꺼냈어.
솔직히 말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