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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도 그러했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90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0/13 10:55:36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도종환, 끊긴 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삭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밤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기억의 수첩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것들이 있을 것이다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닫고

침을 삼키듯 목 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입술 밖을 몇 번인가 서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 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2.jpg

 

오규원, 양철 지붕과 봄비




붉은 양철 지붕의 반쯤 빠진 못과 반쯤 빠질 작정을 하고 있는 못 사이

이미 벌겋게 녹슨 자리와 벌써 벌겋게 녹슬 준비를 하고 있는 자리 사이

퍼질러진 새똥과 뭉개진 새똥 사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또닥또닥 소리를 내고 있는 봄비와

또닥또닥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봄비 사이

 

 

 

 

 

 

3.jpg

 

허영자, 휠체어




늙음이니 병이니

하는 것들은

강 건너

먼 마을의 일인 줄 알았는데


휠체어

너 같은 것은

우리랑은

아무 상관없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


늙고 병든 어머니의

제일 친한 벗이 되고

제일 소중한 발이 된

휠체어

 

 

 

 

 

 

4.jpg

 

이성선, 무릎 위의 시




네팔의 한 무명 시인

그는 가난하여 설산만 쳐다보았습니다

책도 경전도 가질 수 없어

눈 속에 설산을 경전으로 펼치고 살았습니다

그 빛으로 그는 결국 눈이 멀었습니다

멀리 걸을 수 없어 앉아만 있는 그를

작은 풀꽃들이 동무하여 말을 건네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바람이 쓸어주고

세월이 와서 얼굴에 주름을 새겼습니다

그는 어느 곳도 가보지 못해

땅의 일에는 귀가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몸 안으로 뿌리내린

설산의 말씀 하나가

광막하고 고요한 그의 내부를 가득 울렸습니다

울리는 소리마다 시로 뿌려져 그를 채웠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그의 무릎 위에 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 무릎 위의 시를

달빛이 와서 읽어주었습니다

 

 

 

 

 

 

5.jpg

 

장대송, 섬들이 놀다




빈 벽에서 먼 바다의 섬들을 보았다

섬들이 놀고 있다

우울했다가 심심했다가 깔깔대다가 눈물 흘리다가

사는 게 노는 것이라고 했다

집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가 상여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가

즐겁게 노는 게 곧 비가 오려나보다

비 오면 떠날 듯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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