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김혜순, 죽은 줄도 모르고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황급히 일어난다
텅 빈 가슴 위에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메마른 머리칼에
반듯하게 기름을 바르고
구더기들이 기어 나오는 내장 속에
우유를 쏟아 붓고
죽은 발가죽 위에
소가죽 구두를 씌우고
묘비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먼지를 털며 돌아온다
죽은 여자의 관 옆에
이불을 깔고
허리를 굽히면
메마른 머리칼이 쏟아져 쌓이고
차가운 이빨들이 입 안에서 쏟아진다
그 다음 주름진 살갗이
발 아래 떨어지고
죽은 줄도 모르고 그는
다시 죽음에 들면서
내일 묘비에 새길 근사한
한 마디 쩝쩝거리며
관 뚜껑을 스스로 끌어올린다
김종삼, 형(刑)
여긴 또 어드메냐
목이 마르다
길이 있다는
물이 있다는 그곳을 향하여
죄가 많다는 이 불구의 영혼을 이끌고 가 보자
그치지 않는 전신의 고통이 하늘에 닿았다
허영자, 마침표
어머니의 일생은
늘 느낌표였는데
어느 결에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다른 이의 기쁨에도
동행하시고
다른 이의 슬픔에도
함께 우시던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느꺼운
감격의 느낌표
이제는
말줄임표
말없음표를 거쳐
한 점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차한수, 날아다니는 나무
나는
네가 그리울 때면
눈을 감는다
일생을 한 자리에 선 채
미동도 할 수 없는 가슴
양팔 휘저으며
눈빛 빛나는 이슬
오색 무지개 뿌리 채
뽑아 들고
두 손 꼭 잡고
날아가는 나무야
땅이 그리워 그리워도
뿌리 내릴 수 없는
적막함을 꼭 안고
허공에 떠 있는 나무야
나는
네가 그리울 때면
하늘을 바라본다
박성우, 몸부림
나의 지독한 몸부림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가령
물고기가 튈 때다
해질 무렵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은
붉고 고요한 풍경에 격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비늘 안쪽으로 파고드는 기생충을 털어내기 위한
물고기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농부가 해지는 들판에서 땅에게 깊게 허리를 숙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
농부는 엄숙하고도 가장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풍경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앞다투어 빛나는
학교와 도서관과 공부방 또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