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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906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14
조회수 : 189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9/14 20:42:51
수줍게 속삭이며 내미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연보라색 상자는 리본으로 곱게 포장되어있었다. 상자는 축축하고 얼룩덜룩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길 가다가 발견한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무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나빴다.
그 여자, 구해주는 게 아니었는데.
강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졌다.
"야, 나 충전기 좀."
"너꺼 없냐. 여러 개 있었잖아."
"고장 났스. 버려야 함."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새 점심시간이었다.
"어떤 좀 개성....있는 언니가 이거 전해주래."
가람이 노란색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우리집에선 노란색 도시락통을 쓰지 않는다.
"버려."
가람은 버리지 않았다.
"반찬 투정하니? 뭐 그 나이 될 때까지...."
"열지마!"
도시락통이 떨어졌다. 딸그락. 그 뒤에 도시락통의 뚜껑이 마저 떨어졌다. 딸그락.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선물입이다. 맛이께 드세요.]
종이쪽지도 떨어졌다. 가람은 떨고 있다가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거..... 씨발.....!"
살점이 엉겨붙은 머리카락이 뱀처럼 꾸물거렸다.
"그러니까, 한 달 전부터 이상한 여자가 붙었다고? 신고해!"
술을 들이키던 가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한숨이 나왔다. 말은 쉽다. 나 역시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신고라면 여자가 죽은 고양이를 가져다주었을 적부터 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딱히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니 그냥 넘기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야 어떤 조치도 바랄 수가 없었다.
술을 걸치고 돌아오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창문을 두들겼다. 아직 남은 레포트가 있었지만 조금은 쉬고 싶었다.
쿵.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았다. 12시 30분이었다. 어두운 것으로 보아 아직 밤이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쿵.
망할 자식들. 윗집을 향해 나지막히 욕설을 중얼거렸다.
쿵.
아닌데.
쿵.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쿵 소리는 윗집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쿵.
인터폰을 키자 건너편에서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것이 보였다. 기겁하며 물러섰다.
쿵쿵쿵.
"선물인니다."
시발. 없는 척 할걸. 인터폰을 키면 밖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쿵쿵쿵.
"선물인니다."
시이발 뭐가 선물이야.
쿵쿵쿵.
"선물인니다."
나는 버리려고 냅둔 일반쓰레기 봉투를 집어들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디. 그저 집 앞의 저 염병할 년을 쫓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문을 두드리기 전 내가 먼저 문을 벌컥 열었다. 여자는 문에 꽤나 세게 퍽하고 맞아 나가 떨어졌다. 무표정을 하고 있던 여자는 나를 보자 헤벌쭉 웃었다. 웃는 입 사이로 덜렁거리는 하얀 이가 보였다.
"꺼져, 시,발년아. 네가 꺼져주는 게 선물이다!"
나는 광적으로 쓰레기를 여자의 얼굴에 던졌다. 여자는 백치같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 나는 들어와 잠을 마저 자기로 했다.
쿵쿵. 까드득까드득
다시 소리가 들렸다. 3시 43분 이었다.
"선물인니다."
"선물인니다."
인터폰을 켜지 않고 렌즈로 밖을 보았다. 여자가 내가 보는 것을 알면 안될 것 같았다.
"선물인니다."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뒤로 물러섰다. 렌즈가 검은 것으로 가득찼다. 잠시 후에야 그것이 여자의 입 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혀가, 보였다.
까드득까드득. 즈윽즈윽즈윽즈윽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척추가 서늘했다. 술기운이 깨는 느낌이었다. 후회했다. 문 잠금장치를 몇번이나 확인하고서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쿵쿵쿵쿵!
"문 좀 열어주세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9시 32분. 남자의 목소리였다. 경찰이었다. 혹시 밤새 시끄러운 일로 신고가 들어왔었나? 나는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구경하는 사람들, 폴리스 라인, 그리고 하얀 천으로 덮인 무언가가 보였다. 시꺼먼 손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헤집어진 쓰레기 봉투와 내가 버렸던 충전기들이 이어져있는채로 복도 창문에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것도 보였다.
결론은 여자의 자살이었다. 내가 버린 충전기들을 이어 거기에 목을 맸던 것 같다. 목을 맨 위치는 바로 내 집 앞. 아마 내가 좀 더 일찍 일어났으면 바로 정면으로 그 꼴을 보았겠지. 여자는 참으로 끔찍한 선물을 내게 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 뒤에 나는 이사했다. 그곳에 살다간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직접 보지 않았었고, 가끔씩 악몽을 꾸지만 나는 완전하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죽은 고양이나 쥐의 시체가 집에 배달되는 일도, 머리카락이 가득 들은 도시락도 없는 평범한 일상.
처음에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두려워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1년의 시간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자친구도 생겼다.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다.
시각이다. 경찰에 의하면 여자의 사망 추정시각은 1시에서 3시 사이였다. 내가 두번째로 깨어난 것은 3시 43분이고 그 때 소리도 들었었다. "선물인니다." 하는 그 발음이 엉성한 소리. 나는 그때 분명히 들었었다.
아마 잘못 들었던거겠지.......? 그때는 밤이었고 술은 마신 상태에 제정신도 아니었다. 잘못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괜히 나쁜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일부러 콧노래를 부르며 편지함에 들어있던 편지를 열었다.
또그락.
축축한 봉투에서 하얗고 작은 무언가가 떨어졌다. 작은 조개 내지 조약돌 같은 무언가였다. 당황하며 발신인을 보니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꺼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분나쁜 그림과 문자가 잔뜩 그려져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도 한 문구만은 또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찾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선물입니다.]
또그락.
다시 하얗고 작은 것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봉투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천장을 보았다. 그러면 안될 것 같으면서도 나는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해서였다.
또그락
또그락
똑
똑
하얀 색 이빨들이 똑똑 떨어졌다. 여자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빈 잇몸을 보이며 여자는
"선물인니다."
손으로 입을 찢으며 헤벌쭉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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