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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죽게 하소서, 그렇게
게시물ID : lovestory_90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34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10/04 22:17:3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형영, 새벽달처럼




밤하늘에 구멍처럼 박혔던

달이 박힌 자리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오르고 떠오르고 또 떠오르더니

새벽달이 되어 서녘으로 사라져가듯

점잖으신 걸음걸이로 사라져가듯

죽게 하소서, 그렇게


 

 

 

 

 

2.jpg

 

양성우,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나는 내가 아니고 내 삶은 내 삶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내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마다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나를 찾아서

내가 쉬임없이 허덕일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보아라, 험하고 아득한 길 살아서 돌아온 내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고 내 눈빛은 내 눈빛이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티끌 하나 없이 온 넋을 씻고

내 마음을 모조리 비울 수만 있다면

모든 순간마다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무수한 나를

찾아서 내가 굳이 몸 던질 까닭이 어디 있겠느냐

저 소리 없는 작은 바람 끝에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처럼

내 마음의 바닥까지 맑고 밝을 수만 있다면

 

 

 

 

 

 

3.jpg

 

김원각, 그림을 그리다가




붓 갈 데 안 갈 데를 분별조차 못 하면서

마구 휘둘러 놓은 파지(破紙) 직전의 그림 한 폭

내 마음

펼쳐낸다면

아 이런 형국 아닐는지


먹물에 싸인 여백들이 더욱 희게 보이는 순간

뼛속에 와 소리치는 깨우침 하나 있다

물 안 든

나머지 마음

그거나마 잘 닦으라는

 

 

 

 

 

 

4.jpg

 

박남준, 학생부군과의 밥상




녹두빈대떡을 참 좋아하셨지

메밀묵도 만두국도

일년에 한 두 어 번 명절상에 오르면

손길이 잦았던 어느 것 하나

차리지 못했네

배추된장국과 김치와 동치미

흰 쌀밥에 녹차 한 잔

내 올해는 무슨 생각이 들어

당신 돌아가신 정월 초사흘

아침밥상 겸상을 보는가

아들의 밥그릇 다 비워지도록

아버지의 밥그릇 그대로 남네

제가 좀 덜어 먹을게요

얘야 한번은 정이 없단다

한 술 두 술 세 숟가락

학생부군 아버지의 밥그릇

아들의 몸에 다 들어오네

아들의 몸에 다 비우고 가시네

 

 

 

 

 

 

5.jpg

 

이해인, 민들레




은밀히 감겨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차라리 입을 다문 노란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바람한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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